2005년 05월 12일
[단상] 두발자율화
누나의 조카가 집에 놀러와서 놀다가 말을 잘 안듣고 말썽 부리자 누나가 그 녀석을 혼을 낸다. 그 정도로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한 조카의 한 마디.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해?"
누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 녀석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고, 그 녀석은 자신의 필살기 '미소'를 녀석의 엄마에게 날려보냈다. 그 녀석에겐 외할머니인 어머니가 누나에게 가끔 "너는 그 맘때 어땠는지 알아?"라고 농담투로 타박하는 말을 그 녀석이 놓치지 않았던 게다.
어쩌다 초중고생으로부터 대학생(그 가운데는 4,50대들도 있다)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다보니 학생 시절의 마음을 더 잘 알아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온통 모든 것이 '억압'으로 다가왔던 고등학교 시절의 "고민"과 "갈등"을 이제는 잘 기억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객관적이려고 최대한 노력한 채 요즘(?) 아이들을 보면, 나의 중고등학생 시절보다는 훨씬 자유로워 보인다. 일부 학교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학교의 두발 기준은 나의 학창시절에 비해 상당히 자유로와진 편이다.
내가 가르치던 고등학생 한 녀석이 이런저런 이유로 머리카락을 꽤 짧게 자르고 난 뒤였다. 그날 내내 투덜대면서 짜증내며 수업을 받던 녀석은 자신의 짜증의 원인은 바로 '머리'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빠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잘랐는데 학교에서 애들이 다들 '귀두머리라고 놀릴 것'이라며 짜증냈다. 스포츠형 머리도 아니고, 그저 단정해보이는 그 머리 모양에 왜 그런 이상한 이름이 붙었는지는 이해되지 않지만, 내 스스로 잠시 후 더 놀란 것은 "왜, 단정해보이고 이쁘구먼."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나의 말 때문이었다. 사실은 그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어느덧 나는 학생들의 머리는 그러해야 마땅하다는 기성 세대의 관념을 여지없이 받아들이게 된 것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 학교는 주변 학교에 비해서도 엄격한 두발 기준을 갖고 있었다. 매일 아침 정문에서는 복장과 두발 검사를 했었다. 아마도 중학교 때와는 달리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 '국기에 대한 경례'를 붙이는 골 때리는 행동은 하지 않았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 없는 것이 교문을 들어서며 '경례' 붙이던 행동이었다. 이 행위는 일제시대 학생들에게 일제가 강요하던 행위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리고 한달에 한 번 정도는 수업을 진행하는 도중에 '학생부' 선생님들이 벌컥 뒷문을 열고 들어와 기습적으로 두발 검사를 실시했다. 몇몇 선생님들은 자신의 수업이 중단되는 상황에 불만이 있었던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 '기습 두발 검사'는 계속 실시되었다. 문제는 그 검사가 '검사'로 그치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가위를 들고 와서 고속도로를 내거나 '빵구'를 내고 갔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나 자신도 한 번 정도 '빵구'가 난 적이 있었다. 폭풍처럼 학생부 선생님들이 휩쓸고 가고 나면, 간신히 운좋게 '폭력'을 피한 학생과 '난도질'을 당한 학생들 사이에 희비가 교차했다. 두발 검사가 있을 것이라 소문난 날이면, 아예 결석을 해버리거나 양호실로 대피하는 '잔머리파'도 있었다. 수업이 중단된 채 아이들의 참혹한 모습을 바라보던 선생님은 "그래도 너희는 S고교('두사부일체'와 '말죽거리잔혹사'의 소재가 된 바로 그 학교다)보단 낫잖아"라고 되지 않는 위로를 해주기도 했었다.
고3 어느날의 두발 검사는 유난히 참혹했다. 특히 바로 옆 반의 참상은 더욱 심각했다. 나름대로 스포츠 머리였던 친구의 머리에도 '빵구'가 나 있었고, 거의 한 반에 절반 이상의 학생이 가위질을 당했던 것이었다. 주변 다른 반 아이들이 그 반의 참상을 보고는, '저 반에서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서 우리가 이득을 봤나보다'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 다음날 점심 시간, 운동장 철봉대 근방으로 예닐곱명의 아이들이 모였다. 그날 이후로 지하조직처럼 몇차례 모인 우리들은 '우리의 목소리'를 표출하기 위한 몇가지 전략이 도출되었고 최종적으로 한 가지 방안을 실행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미 몇차례 새벽 시간을 틈타 유인물을 뿌려놓았지만, 학생들에게 전달되기 전에 일찍 발각되어 불태워지기 일쑤였었기에, 이번 계획은 좀 더 치밀하고 강력할 필요가 있었다. (유인물 하나 만들기도 사실 쉽지 않았던 시절이라, 멀리 K대학의 대학생 형들의 도움까지 얻어가며 만든 유인물이었다.) '교무회의' 시간을 틈타 본관 건물 한 층으로 고2,3 학생들을 모아놓고, 양쪽 철문을 잠그기로 했다. 말하자면 '점거농성'을 계획한 것이다. 그리고는 우리의 주장 두가지를 요구하기로 한 것이다. 하나는 '두발 자율화' 혹은 '두발 검사 폐지'였고, 또 하나는 '학생회장 직선제 관철'이었다.
우리의 계획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미 몇 명의 아이들이 '불안감'에 이탈해나갔지만, 다행히 '결사 당일'의 거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생각보다는 아이들이 일시에 움직여주지 않아서 철문을 모두 잠글 때까지 많은 학생들을 모아들이지는 못했지만, 철문을 안쪽에서 걸어잠그는데까지는 성공하였다. 만약을 대비해, '또다른 K대학에 진학한 선배들의 지원'과 'H신문사의 취재'까지 요청해둔 상태였다. (지원과 취재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이들을 복도에 앉히고 구호를 외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내가 맡았던 지역은 본관의 서쪽편이었는데, 갑자기 반대쪽이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에 의해 지명된 어용 학생회장이 합류하지 않고 밖에 있다가 "나야, 문열어줘"라고 하자, 한쪽 문을 지키던 친구 하나가 무심코 문을 열어준 것이었다. 그 순간 학생부 선생님들은 마치 시위 현장을 급습하는 백골단 마냥, 이리저리 몽둥이를 휘두르며 아이들을 해산시켜버렸다. 막 주먹을 들고 구호를 외치려다가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놀란 나는 내 교실로 도망쳐버렸고, 내 자리에 앉아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결국 그 날의 시위는 실패로 돌아갔다. 주동자 색출 작업으로 두 명의 친구가 정학처분을 받게 되었다. 감금이나 다름없었을 그 기간에도 두 친구를 다른 아이들의 이름을 불지 않아주었고, 하여 나는 '무사'했다.
그런 기억에도 나는 지금 아이들의 '두발자율화'로 대표되는 '인권'의 외침을 기성 세대의 시각으로 바라보려 하고 있으니, 나의 지금의 마음이 참담하다.
다음은 그 사건이 있었을 무렵, 당시 우리 고등학교 한 윤리/철학 선생님이 쓰셨다는 시의 내용이다.
부활을 꿈꾸며
참 처참하게도 / 범죄자의 머리 마냥 / 머리 깍이더니 / 아이들은 숨어서 / 마치 독립 운동하는 우리 할배처럼 / 유인물 혹은 우리 교감 선생님 말씀대로 / '삐라'를 뿌렸다 / 우리 손으로 우리 회장을 뽑게 해 달라고 / 더 이상 노예처럼 머리 깍지 말아 달라고 / 보이지 않는 고사리 주먹 한껏 흔들며 / 숨어서 숨어서 외친다
아이들 외침이 뭐가 그리 부끄러웠는지 / 접고 접어서 가슴 품고 교실 들어 갈라치면 / 선생님, 선생님도 외쳐보세요 / 들리지 않게 눈 올려다 보는 / 저 맑은 이 시대의 희망
은혜는 '스승'을 찾고 / 대신 자유의 권리는 '학생'으로 묶다가 / 아이들 배은망덕한 놈 만들지 않으려는 각별한 노력 / 1000원 걷어 스승의 날 선물 주는 / 이 하릴 없는 풍토에서
민주 사회의 개념을 편리하게 떠들고 / 직원 '회의'에서 지시 사항 열심히 적어보는 / 하하 어줍은 21세기 민주 시민의 양성자여
눈 부신 5월의 하루 하루 / 스승과 가정의 날은 있어도 / 노동절, /11월 학생의 날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 이 빌어먹을 풍토에서
3학년 윤리 보충시간 / 노동절 메이데이의 의미를 떠들어보는데 / 너희가 만들 참세상 / 순간순간 그려보라 쥐어보는데
상식이 닿지 않는 세상 / 눈 또옥바로 뜨면 괴로운 이 세상에서
우리 되찾아야할 몸부림 / 실천의 춤은 어디쯤에서 부활되는 것일까 / 다시 되묻는 이 우매함의 끝에 / 이제 우뚝 서고 싶은 도마 群들.
서로의 가슴으로 / 자신의 십자가 삼고 / 서로의 눈빛으로 / 자신의 부활을 지어
이제 우뚝 서야 한다, 배워야 할 도마의 群들. / … 세상은 너희의 / 아니 우리의 어깨 위에서 호흡한다
이번주 일요일은 '스승의 날'이다.
엊그제 강의를 마치고 나오던 한 대학의 강의실에서는 '스승의 날'을 앞두고 돈을 모으자는 이야기가 한 학생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물론 나 같이 하찮은 보따리장수와는 무관한 이야기겠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괜히 씁쓸해졌다.
이번주 토요일에는 고등학생들이 '두발자율화'를 주장하는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자유화'가 아니라, '자율화'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해?"
누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 녀석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고, 그 녀석은 자신의 필살기 '미소'를 녀석의 엄마에게 날려보냈다. 그 녀석에겐 외할머니인 어머니가 누나에게 가끔 "너는 그 맘때 어땠는지 알아?"라고 농담투로 타박하는 말을 그 녀석이 놓치지 않았던 게다.
어쩌다 초중고생으로부터 대학생(그 가운데는 4,50대들도 있다)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다보니 학생 시절의 마음을 더 잘 알아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온통 모든 것이 '억압'으로 다가왔던 고등학교 시절의 "고민"과 "갈등"을 이제는 잘 기억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객관적이려고 최대한 노력한 채 요즘(?) 아이들을 보면, 나의 중고등학생 시절보다는 훨씬 자유로워 보인다. 일부 학교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학교의 두발 기준은 나의 학창시절에 비해 상당히 자유로와진 편이다.
내가 가르치던 고등학생 한 녀석이 이런저런 이유로 머리카락을 꽤 짧게 자르고 난 뒤였다. 그날 내내 투덜대면서 짜증내며 수업을 받던 녀석은 자신의 짜증의 원인은 바로 '머리'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빠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잘랐는데 학교에서 애들이 다들 '귀두머리라고 놀릴 것'이라며 짜증냈다. 스포츠형 머리도 아니고, 그저 단정해보이는 그 머리 모양에 왜 그런 이상한 이름이 붙었는지는 이해되지 않지만, 내 스스로 잠시 후 더 놀란 것은 "왜, 단정해보이고 이쁘구먼."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나의 말 때문이었다. 사실은 그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어느덧 나는 학생들의 머리는 그러해야 마땅하다는 기성 세대의 관념을 여지없이 받아들이게 된 것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 학교는 주변 학교에 비해서도 엄격한 두발 기준을 갖고 있었다. 매일 아침 정문에서는 복장과 두발 검사를 했었다. 아마도 중학교 때와는 달리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 '국기에 대한 경례'를 붙이는 골 때리는 행동은 하지 않았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 없는 것이 교문을 들어서며 '경례' 붙이던 행동이었다. 이 행위는 일제시대 학생들에게 일제가 강요하던 행위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리고 한달에 한 번 정도는 수업을 진행하는 도중에 '학생부' 선생님들이 벌컥 뒷문을 열고 들어와 기습적으로 두발 검사를 실시했다. 몇몇 선생님들은 자신의 수업이 중단되는 상황에 불만이 있었던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 '기습 두발 검사'는 계속 실시되었다. 문제는 그 검사가 '검사'로 그치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가위를 들고 와서 고속도로를 내거나 '빵구'를 내고 갔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나 자신도 한 번 정도 '빵구'가 난 적이 있었다. 폭풍처럼 학생부 선생님들이 휩쓸고 가고 나면, 간신히 운좋게 '폭력'을 피한 학생과 '난도질'을 당한 학생들 사이에 희비가 교차했다. 두발 검사가 있을 것이라 소문난 날이면, 아예 결석을 해버리거나 양호실로 대피하는 '잔머리파'도 있었다. 수업이 중단된 채 아이들의 참혹한 모습을 바라보던 선생님은 "그래도 너희는 S고교('두사부일체'와 '말죽거리잔혹사'의 소재가 된 바로 그 학교다)보단 낫잖아"라고 되지 않는 위로를 해주기도 했었다.
고3 어느날의 두발 검사는 유난히 참혹했다. 특히 바로 옆 반의 참상은 더욱 심각했다. 나름대로 스포츠 머리였던 친구의 머리에도 '빵구'가 나 있었고, 거의 한 반에 절반 이상의 학생이 가위질을 당했던 것이었다. 주변 다른 반 아이들이 그 반의 참상을 보고는, '저 반에서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서 우리가 이득을 봤나보다'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 다음날 점심 시간, 운동장 철봉대 근방으로 예닐곱명의 아이들이 모였다. 그날 이후로 지하조직처럼 몇차례 모인 우리들은 '우리의 목소리'를 표출하기 위한 몇가지 전략이 도출되었고 최종적으로 한 가지 방안을 실행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미 몇차례 새벽 시간을 틈타 유인물을 뿌려놓았지만, 학생들에게 전달되기 전에 일찍 발각되어 불태워지기 일쑤였었기에, 이번 계획은 좀 더 치밀하고 강력할 필요가 있었다. (유인물 하나 만들기도 사실 쉽지 않았던 시절이라, 멀리 K대학의 대학생 형들의 도움까지 얻어가며 만든 유인물이었다.) '교무회의' 시간을 틈타 본관 건물 한 층으로 고2,3 학생들을 모아놓고, 양쪽 철문을 잠그기로 했다. 말하자면 '점거농성'을 계획한 것이다. 그리고는 우리의 주장 두가지를 요구하기로 한 것이다. 하나는 '두발 자율화' 혹은 '두발 검사 폐지'였고, 또 하나는 '학생회장 직선제 관철'이었다.
우리의 계획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미 몇 명의 아이들이 '불안감'에 이탈해나갔지만, 다행히 '결사 당일'의 거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생각보다는 아이들이 일시에 움직여주지 않아서 철문을 모두 잠글 때까지 많은 학생들을 모아들이지는 못했지만, 철문을 안쪽에서 걸어잠그는데까지는 성공하였다. 만약을 대비해, '또다른 K대학에 진학한 선배들의 지원'과 'H신문사의 취재'까지 요청해둔 상태였다. (지원과 취재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이들을 복도에 앉히고 구호를 외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내가 맡았던 지역은 본관의 서쪽편이었는데, 갑자기 반대쪽이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에 의해 지명된 어용 학생회장이 합류하지 않고 밖에 있다가 "나야, 문열어줘"라고 하자, 한쪽 문을 지키던 친구 하나가 무심코 문을 열어준 것이었다. 그 순간 학생부 선생님들은 마치 시위 현장을 급습하는 백골단 마냥, 이리저리 몽둥이를 휘두르며 아이들을 해산시켜버렸다. 막 주먹을 들고 구호를 외치려다가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놀란 나는 내 교실로 도망쳐버렸고, 내 자리에 앉아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결국 그 날의 시위는 실패로 돌아갔다. 주동자 색출 작업으로 두 명의 친구가 정학처분을 받게 되었다. 감금이나 다름없었을 그 기간에도 두 친구를 다른 아이들의 이름을 불지 않아주었고, 하여 나는 '무사'했다.
그런 기억에도 나는 지금 아이들의 '두발자율화'로 대표되는 '인권'의 외침을 기성 세대의 시각으로 바라보려 하고 있으니, 나의 지금의 마음이 참담하다.
다음은 그 사건이 있었을 무렵, 당시 우리 고등학교 한 윤리/철학 선생님이 쓰셨다는 시의 내용이다.
부활을 꿈꾸며
참 처참하게도 / 범죄자의 머리 마냥 / 머리 깍이더니 / 아이들은 숨어서 / 마치 독립 운동하는 우리 할배처럼 / 유인물 혹은 우리 교감 선생님 말씀대로 / '삐라'를 뿌렸다 / 우리 손으로 우리 회장을 뽑게 해 달라고 / 더 이상 노예처럼 머리 깍지 말아 달라고 / 보이지 않는 고사리 주먹 한껏 흔들며 / 숨어서 숨어서 외친다
아이들 외침이 뭐가 그리 부끄러웠는지 / 접고 접어서 가슴 품고 교실 들어 갈라치면 / 선생님, 선생님도 외쳐보세요 / 들리지 않게 눈 올려다 보는 / 저 맑은 이 시대의 희망
은혜는 '스승'을 찾고 / 대신 자유의 권리는 '학생'으로 묶다가 / 아이들 배은망덕한 놈 만들지 않으려는 각별한 노력 / 1000원 걷어 스승의 날 선물 주는 / 이 하릴 없는 풍토에서
민주 사회의 개념을 편리하게 떠들고 / 직원 '회의'에서 지시 사항 열심히 적어보는 / 하하 어줍은 21세기 민주 시민의 양성자여
눈 부신 5월의 하루 하루 / 스승과 가정의 날은 있어도 / 노동절, /11월 학생의 날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 이 빌어먹을 풍토에서
3학년 윤리 보충시간 / 노동절 메이데이의 의미를 떠들어보는데 / 너희가 만들 참세상 / 순간순간 그려보라 쥐어보는데
상식이 닿지 않는 세상 / 눈 또옥바로 뜨면 괴로운 이 세상에서
우리 되찾아야할 몸부림 / 실천의 춤은 어디쯤에서 부활되는 것일까 / 다시 되묻는 이 우매함의 끝에 / 이제 우뚝 서고 싶은 도마 群들.
서로의 가슴으로 / 자신의 십자가 삼고 / 서로의 눈빛으로 / 자신의 부활을 지어
이제 우뚝 서야 한다, 배워야 할 도마의 群들. / … 세상은 너희의 / 아니 우리의 어깨 위에서 호흡한다
이번주 일요일은 '스승의 날'이다.
엊그제 강의를 마치고 나오던 한 대학의 강의실에서는 '스승의 날'을 앞두고 돈을 모으자는 이야기가 한 학생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물론 나 같이 하찮은 보따리장수와는 무관한 이야기겠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괜히 씁쓸해졌다.
이번주 토요일에는 고등학생들이 '두발자율화'를 주장하는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자유화'가 아니라, '자율화'다.
# by | 2005/05/12 16:02 | 談話 ::: 기고/생각들 | 트랙백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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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옷! 첫 화면.. 첫 방문부터 Text의 압박이! ^0^/
링크신고 합니다. ^^
간만에 텍스트 위주의 포스트를 올렸는데.. 헤헤 *^^*;;
무슨 제국의 발톱에 짓눌린 식민지 국민들처럼 살던 시기...ㅡ.ㅡ;;
고등학생들의 시위가 성공(?)하길 바랍니다.
재경 고교동문 체육대회에 갔었습니다.
마침 동기의 아이들 중에 제 아들과 같은 중3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들 녀석에게 둘이 이야기 좀 하라고 했는데, 계속 지켜보아도 서로 딴청만 하고 있는 겁니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으니 아들녀석이 친구아들의 머리를 보고는
'쟤 귀두컷이야 밥맛 없어'라고 했더라는 겁니다.
제 아들은 최신유행 샤기컷에 아디다스 JUDO 츄리닝을 입었거든요. 이거 참 별꼴이라고 해야하는 건지?
샤기컷 하고 다니다가 학교서 가위질 당했는데, 선생님이 솜씨가 좋으셔서 잘 다듬어 주시고 보냈더군요. 요즘은 분위기가 그런지?
늘꿈속/ 선생님 솜씨가 좋으시군요. ^^; 근데 그 귀두컷은 뭐고 샤기컷은 또 뭔지... 쩝 ㅡㅡ;
너무 낮춰도 그저 아찔아찔 하답니다.
눈높이 맞추기는 그저 헛된 이상같기도 하구....
니야/ 저흰 당시 스포츠형 머리였는데 그 말이 애매해서...(당시 최고 인기 스포츠선수는 긴머리를 휘날리며 야생마 같이 뛰던 축구선수 김주성 선수였지요.)
늘꿈속/ 늘꿈속님처럼 노력하신다면, 아드님도 그 마음만은 다 알거예요.^^ (나중에라도..)
그날 의미도 모른채 단순히 순간의 점거를 즐기며 아무생각 없던 우리들이란.... 참... (머리를 그렇게나 난도질 당했었어도...)
그나저나 선생을 준비하는 나로써도 어떤 느낌을 가져야 하는건지 참으로 혼란스럽다....
youngjune/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는 한, 훌륭한 선생님이 될 수 있을거라 믿네. ^^ (이게 말이 되는건가?)
(그날 바들바들 떨며 교실로 돌아와 앉아 있던 날 기억 못한다면 다행...)
(하지만 정작 저도 잘 모르겠고, 다만,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잊어선 곤란하다는 얘길 하고 싶었을 뿐이랍니다.)
(신세한탄이나 합리적인 제안이니 말고, 1500명 '마음 모두'를 모아 행동을 해볼 생각은 없는지도 묻고 싶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