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5월 01일
오월의 노래
5월은 계절의 여왕이다. 그리고 '가정의 달'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몇가지의 좋지 않은 기억들로 얼룩져있는 게 바로 5월이다.
심지어 입대를 한 것도 10년전 5월이었으니.
그리고 또 우리나라의 근대사에서 5월은 더욱 참혹한 계절이다.
5월의 첫날, 바로 오늘 메이데이(May Day). 즉 '노동절'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렀던가. (제 날짜만 차지했을 뿐, 충분한 의미 부여는 여전히 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5.16.
1961년 5월 16일. 이성계가 1392년에, 그리고 일제가 20세기 초에 '무력'을 앞세워 권력을 차지했듯, 한 줌의 군인들이 이땅을 차지해버렸다. 그날 이후로 무려 '십팔'년 동안 검은 선글라스의 '군발이'는 이땅의 제왕으로 군림했다.
그가 심복의 총에 사라진 뒤 맞이한 다시 5월.
1980년 5월은 '피'의 오월이었다.
하여, 5월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는 바로 다음의 노래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겨울연가"에는 바로 이 노래가 '최지우'의 테마로 쓰였었다. 이루마의 피아노 연주곡으로 말이다. 제목은 "When the love fall". 이 곡은 루시엥 모리스(Lucien Morrisse)를 추모하여 미셀 뽈나레프(Michel Polareff)가 1971년 작사·작곡한 샹송 "누가 할머니를 죽였는가?(Qui A Tue Grand'Maman)"를 번안한 노래라고 한다. 박인희가 이 노래를 "사랑의 추억"이란 제목으로 번안하여 부른 적이 있지만, 이른바 '5월가'라고 불리는 위의 노래가 더 익숙하다. (개봉 예정인 김혜수 주연의 <분홍신>에도 테마로 사용된 듯.)
사실 80년 광주는 꽤 오랜 세월동안 비밀 아닌 비밀로 남아 있었다.
광주의 현장을 목격하고 얼토당토하지 않는 '충격의 르뽀'를 써갈긴 건 조갑제 옹이었고, 핏빛 현장에서 살아남아 서울로 올라온 후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남기고 기독교회관에서 몸을 내던진 것은 서강대학생이었던 김의기 군이었다.
그리고 서슬퍼렇던 1981년. "5월의 노래2"에 나오는 '대머리'가 대통령 자리에 올라 희희낙락하고 있을 당시. MBC 대학가요제 대상은 정오차가 부른 '바윗돌'이 차지했다.
이 노래의 노랫말은 그저 대학생다운 평범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정오차는 대상을 수상한 직후, 한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광주에서 죽은 친구를 생각하며 만든 노래"라는 말을 하였고, 당연히도(?) 이 노래를 꽤 오랫동안 방송에서 들을 수 없게 되었다.
1985년 무렵 큰 인기를 모았던 김원중의 "바위섬"(배창희 작사/곡) 역시 광주를 소재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노래다. 이 노래는 당시 완전히 고립되어 외부로 소식을 알릴 수도 없고, 정보를 들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죽음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던 광주의 현실을 상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약간의 반론도 있다.)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정없던 이곳에
세상사람들 하나둘 모여들더니
어느 밤 폭풍우에 휘말려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바위섬과 흰 파도라네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다시 태어나지 못해도 너를 사랑해
이제는 갈매기도 떠나고
아무도 없지만 나는 이 곳 바위섬에 살고싶어라
광주 출신의 정오차, 김원중의 두 노래 이상으로 충격적인 노래는 인순이에 의해 불려졌었다. 1984년 광주 MBC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인순이는 자신의 당시 인기곡 "여기가 어디냐"를 불렀다. 당시 방송을 듣던 광주 시민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서슬퍼렇던 시기에 인순이는 분명 "광주 광주 다시보자"를 외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노래의 공식적인 버전에는 물론 '광주 광주 다시보자'라는 가사 대신 '한줌 한줌 다시보자'라는 것으로 대체되어 있다. 인순이라는 가수가 그저 광주를 찾아간 김에 일회적으로 라이브에서 '가사 바꿔 부르기'를 한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 노래의 오리지날 가사는 분명 '광주 광주'였다고 하니, 놀라울 수밖에 없다.
인순이가 비감에 차 외치던 '광주 광주'를 과연 우리는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지.
(광주 영령들이 깃든 곳에서 서울'특별'시의 시장님께서 정황이야 어쨌든 파안대소하셨단다.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모두가 힘들잖아요" 그리고 바로 어제, 광주의 피를 밟고 만들어진 5공 출신 인사를 공천했던 여당은 재보선에 참패하고 말았다. 한마디만 하자. 둘다 하핫~ 즐.)
이상은 아래의 두 글을 다시 정리하면서 만들어진 글입니다.
관련글1 : 새벽길님 미디어몹 블로그
관련글2 : 디오티마님 이글루
내 개인적으로는 몇가지의 좋지 않은 기억들로 얼룩져있는 게 바로 5월이다.
심지어 입대를 한 것도 10년전 5월이었으니.
그리고 또 우리나라의 근대사에서 5월은 더욱 참혹한 계절이다.
5월의 첫날, 바로 오늘 메이데이(May Day). 즉 '노동절'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렀던가. (제 날짜만 차지했을 뿐, 충분한 의미 부여는 여전히 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5.16.
1961년 5월 16일. 이성계가 1392년에, 그리고 일제가 20세기 초에 '무력'을 앞세워 권력을 차지했듯, 한 줌의 군인들이 이땅을 차지해버렸다. 그날 이후로 무려 '십팔'년 동안 검은 선글라스의 '군발이'는 이땅의 제왕으로 군림했다.
그가 심복의 총에 사라진 뒤 맞이한 다시 5월.
1980년 5월은 '피'의 오월이었다.
하여, 5월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는 바로 다음의 노래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겨울연가"에는 바로 이 노래가 '최지우'의 테마로 쓰였었다. 이루마의 피아노 연주곡으로 말이다. 제목은 "When the love fall". 이 곡은 루시엥 모리스(Lucien Morrisse)를 추모하여 미셀 뽈나레프(Michel Polareff)가 1971년 작사·작곡한 샹송 "누가 할머니를 죽였는가?(Qui A Tue Grand'Maman)"를 번안한 노래라고 한다. 박인희가 이 노래를 "사랑의 추억"이란 제목으로 번안하여 부른 적이 있지만, 이른바 '5월가'라고 불리는 위의 노래가 더 익숙하다. (개봉 예정인 김혜수 주연의 <분홍신>에도 테마로 사용된 듯.)
사실 80년 광주는 꽤 오랜 세월동안 비밀 아닌 비밀로 남아 있었다.
광주의 현장을 목격하고 얼토당토하지 않는 '충격의 르뽀'를 써갈긴 건 조갑제 옹이었고, 핏빛 현장에서 살아남아 서울로 올라온 후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남기고 기독교회관에서 몸을 내던진 것은 서강대학생이었던 김의기 군이었다.
그리고 서슬퍼렇던 1981년. "5월의 노래2"에 나오는 '대머리'가 대통령 자리에 올라 희희낙락하고 있을 당시. MBC 대학가요제 대상은 정오차가 부른 '바윗돌'이 차지했다.
이 노래의 노랫말은 그저 대학생다운 평범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정오차는 대상을 수상한 직후, 한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광주에서 죽은 친구를 생각하며 만든 노래"라는 말을 하였고, 당연히도(?) 이 노래를 꽤 오랫동안 방송에서 들을 수 없게 되었다.
1985년 무렵 큰 인기를 모았던 김원중의 "바위섬"(배창희 작사/곡) 역시 광주를 소재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노래다. 이 노래는 당시 완전히 고립되어 외부로 소식을 알릴 수도 없고, 정보를 들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죽음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던 광주의 현실을 상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약간의 반론도 있다.)
세상사람들 하나둘 모여들더니
어느 밤 폭풍우에 휘말려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바위섬과 흰 파도라네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다시 태어나지 못해도 너를 사랑해
이제는 갈매기도 떠나고
아무도 없지만 나는 이 곳 바위섬에 살고싶어라
광주 출신의 정오차, 김원중의 두 노래 이상으로 충격적인 노래는 인순이에 의해 불려졌었다. 1984년 광주 MBC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인순이는 자신의 당시 인기곡 "여기가 어디냐"를 불렀다. 당시 방송을 듣던 광주 시민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서슬퍼렇던 시기에 인순이는 분명 "광주 광주 다시보자"를 외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노래의 공식적인 버전에는 물론 '광주 광주 다시보자'라는 가사 대신 '한줌 한줌 다시보자'라는 것으로 대체되어 있다. 인순이라는 가수가 그저 광주를 찾아간 김에 일회적으로 라이브에서 '가사 바꿔 부르기'를 한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 노래의 오리지날 가사는 분명 '광주 광주'였다고 하니, 놀라울 수밖에 없다.
인순이가 비감에 차 외치던 '광주 광주'를 과연 우리는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지.
(광주 영령들이 깃든 곳에서 서울'특별'시의 시장님께서 정황이야 어쨌든 파안대소하셨단다.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모두가 힘들잖아요" 그리고 바로 어제, 광주의 피를 밟고 만들어진 5공 출신 인사를 공천했던 여당은 재보선에 참패하고 말았다. 한마디만 하자. 둘다 하핫~ 즐.)
이상은 아래의 두 글을 다시 정리하면서 만들어진 글입니다.
관련글1 : 새벽길님 미디어몹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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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뜻 깊게 지내보렵니다.
(게으름 피다가 광화문도 못 갔습니다. ㅡㅡ;)
창피하게도 이젠 이런것도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네요.
분명히 열린당의 문제가 있지만 역시 한나랑당이 싹쓸이하는 꼬락서니 조차 눈에 심하게 밟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