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3월 15일
<혈의 누>와 한승조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이라 알려져있는 이인직의 <혈의 누>.
1906년 <만세보>에 연재되었다가 1년 후, 광학서포에서 단행본으로 발간.
그 도입부분 일부를 옮겨 적어본다.
일청전쟁의 총소리는 평양 일경이 떠나가는 듯하더니, 그 총소리가 그치매 사람의 자취는 끊어지고 산과 들에 비린 티끌뿐이라.
……(중략)……
당초에 옥련이가 피란 갈 때에 모란봉 아래서 부모의 간 곳 모르고 어머니를 부르면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난데없는 철환(鐵丸) 한 개가 넘어오더니 옥련의 왼편 다리에 박혀 넘어져서 그날 밤을 그 산에서 목숨이 붙어 있었더니, 그 이튿날 일본 적십자 간호수가 보고 야전병원으로 실어보내니 군의(軍醫)가 본즉 중상은 아니라, 철환이 다리를 뚫고 나갔는데 군의 말이, '만일 청인(淸人)의 철환을 맞았으면 철환에 독한 약이 섞인지라 맞은 후에 하룻밤을 지냈으면 독기가 몸에 많이 퍼졌을 터이나, 옥련이 맞은 철환은 일인(日人)의 철환이라 치료하기 대단히 쉽다'하더니, 과연 삼 주일이 못되어서 완연히 평일과 같은지라.
출처 : <한국신소설선집1> (권영민 외 공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3)
<혈의 누>의 여주인공 옥련이 청일전쟁 와중에 총탄에 맞아 다쳤는데, '일인의 총에 맞은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다'는 저 일본인 군의관의 말은, 근래 화제가 되었던 모氏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인직은 이완용의 지원하에 <만세보>를 인수, 이완용 내각의 선전도구 역할을 하게 되는 <대한신문>을 창간하고 스스로 사장이 되었다. 그리고 한일합방을 전후로는 조선과 일본을 오가면서 모종의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축복" 발언의 역사는 뿌리 깊고도 강고하다.
1906년 <만세보>에 연재되었다가 1년 후, 광학서포에서 단행본으로 발간.
그 도입부분 일부를 옮겨 적어본다.
일청전쟁의 총소리는 평양 일경이 떠나가는 듯하더니, 그 총소리가 그치매 사람의 자취는 끊어지고 산과 들에 비린 티끌뿐이라.
……(중략)……
당초에 옥련이가 피란 갈 때에 모란봉 아래서 부모의 간 곳 모르고 어머니를 부르면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난데없는 철환(鐵丸) 한 개가 넘어오더니 옥련의 왼편 다리에 박혀 넘어져서 그날 밤을 그 산에서 목숨이 붙어 있었더니, 그 이튿날 일본 적십자 간호수가 보고 야전병원으로 실어보내니 군의(軍醫)가 본즉 중상은 아니라, 철환이 다리를 뚫고 나갔는데 군의 말이, '만일 청인(淸人)의 철환을 맞았으면 철환에 독한 약이 섞인지라 맞은 후에 하룻밤을 지냈으면 독기가 몸에 많이 퍼졌을 터이나, 옥련이 맞은 철환은 일인(日人)의 철환이라 치료하기 대단히 쉽다'하더니, 과연 삼 주일이 못되어서 완연히 평일과 같은지라.
출처 : <한국신소설선집1> (권영민 외 공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3)
<혈의 누>의 여주인공 옥련이 청일전쟁 와중에 총탄에 맞아 다쳤는데, '일인의 총에 맞은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다'는 저 일본인 군의관의 말은, 근래 화제가 되었던 모氏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인직은 이완용의 지원하에 <만세보>를 인수, 이완용 내각의 선전도구 역할을 하게 되는 <대한신문>을 창간하고 스스로 사장이 되었다. 그리고 한일합방을 전후로는 조선과 일본을 오가면서 모종의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축복" 발언의 역사는 뿌리 깊고도 강고하다.
# by | 2005/03/15 20:28 | 文學 ::: 문학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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