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 <현대문학> 50주년

어제는 현대문학상 시상식이 있었다. 한 다리 건너 아는 분이 수상을 하기도 했지만, 문단 행사에 참석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나는 후배에게 연락이 온 김에 겸사겸사 잠시 참석하게 되었다. "현대문학"이라는 잡지는 현재 우리 문단에서 아마도 가장 오래된 문예전문지다. 게다가 계간지도 아닌 월간지라는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그 역사만으로도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작년 12월호가 통권 600호였으니, "현대문학"의 역사는 실로 그 자체로 '한국현대문학' 역사라고 해도 큰 비약은 아닐 것이다.

이번 시상식은 "현대문학"의 50주년 기념 행사와 겸한 행사였다. 아직까지는 풋내기 평론가인데다가 그다지 사교적인 성격도 되지 못하여 아는 이라고는 거의 없는 행사였지만, 사진으로만 접했던 상당수의 문인들을 실물로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되었다.

S는 꽤 지루한 삶을 살고 있는 표정이었고, 도도한 매력이 엿보이는 C의 미모는 '그녀의 책의 반은 사진으로 팔린다'는 말이 허튼 말이 아닌 듯 느껴졌다. 또다른 C는 여전히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니고 있었고, K는 의외로 조용하고 다소곳하게 한켠에 서 있었다. 여기저기를 둘러보다보니, 문단의 주력이 60년대 초반생들로부터 60년대 말~70년대 초년생들로 넘어오고 있다는 느낌도 새삼 받게 되었다.

한때, '추천' 제도로 인하여 '문학권력'을 장악한 바 있었던 "현대문학"의 권위와 영향력은 예전만 같지는 못하겠지만, 어제 행사의 규모는 역시 만만치는 않은 수준이었다. 함부로 건드리기 민망한 수준으로 꾸며놓은 음식물들은 시간이 없어 맛보지조차 못해 아쉽긴 했지만, 그리 먹음직스럽지는 않아 보인 게 어쩌면 다행이었을지도.

그런데 문득 든 생각은,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끼리끼리"만 뭉치는 풍토 탓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수백명의 문인들이 모인 곳에서 '존경'의 인사 세례를 받는 '선생님'들이 과연 객관적으로 존경을 받을만한 분들인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수와 행사 규모가 '문학 위기의 현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소 세련되지 못한 발언이었고 본심이 뭐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 노무현 대통령이 "맨날 공무원들이 강남 사람들만 만나서 점심 먹고 하는 게 문제"라고 말한 것은 꽤나 중요한 지적이었다. 의사들끼리 모여 대화하다보면 월 3,4백 버는 의사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좌절을 느끼기 마련일 것이다. 서울 유명대학 출신들끼리 모여 있으면 좀 전까지 무사히 취업을 했다고 만족하며 살던 사람도 자신의 비전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될 지 모른다. 부동산으로 돈 꽤나 만져본 사람들끼리 모여 있으면 이헌재 전 부총리의 문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결론 날 것이며, 부동산의 '부'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면 26년 전에 산 땅이든 2년전에 산 땅이든 부동산으로 수억을 벌었다는 부총리를 쫓아내라고 성토하는 게 당연할 것이다.

원래는 멀쩡했던 사람인데 정치판에 뛰어들더니 변했다느니, 높은 자리에 오르더니 변했다느니하는 이 많은 것은, 그들이 갑작스럽게 악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노는 물'이 고정되어갔기 때문일 수 있다. 특히, 바쁘고 부지런히 살아가고, 그 생활에 빠르게 '적응'해나가는 사람들일수록 떠 빠르게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그들의 삶에는 다른 곳을 돌아볼 '여유'가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원에 갓 진학했을 무렵, 그러니까 석사 1,2 학기를 다닐 때의 '나'는, 지금 생각해도 정상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대학원 생활에 적응하랴, 공부하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랴, 조교일을 하랴, 정말 정신 없이 바빴었고, '대학원 바깥'의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못하고 살았다. 그 당시 나의 문제는 바로 그 점이 원인이었던 듯하다.

디지털 시대가 오고, 전방위적 개방 사회가 되면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삶과 고민"에 대해 많이 알고 이해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별로 그렇지 않은 듯하다. 자신의 삶이 그만큼 복잡해졌기에,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배려할 여유는 여전히 없는 듯하다. 문제는 자기들만의 '리그'와 '우물' 속에서만 허우적대느라 세상을 보는 시야가 점점 협소해져가는 사람들이다. 더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그 '좁은 시야'로 세상을 더욱 깝깝하게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by 갈림 | 2005/03/12 07:14 | 文學 ::: 문학 | 트랙백 | 덧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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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반달 at 2005/03/12 07:25
하.. 저거 현대문학 시상식 포스터인가요? 아니면 50주년 기념판 표지가 저 따위인지.. 어떻게 우리나라 문학을 대표하는 잡지 중 하나가 지들 50주년을 기념하는 데 한글 하나 없이 선전을 할 수 있는지.. 문학하는 자들의 정신머리가 의심됩니다
Commented by 늘꿈속 at 2005/03/12 09:54
일단, 반달님의 날카로운 지적에는 백만표를 던집니다.

'좁은 시야'란 말씀에 겨드랑이가 찔끔합니다.
앗, 미모도 작가의 또다른 힘이군요:-)
Commented by 갈림 at 2005/03/12 11:16
반달 / 저도 소위 "문학하는 자들"인데 좀 뻘쭘하군요. ㅡㅡ;;
이미지는 '현대문학 50주년'을 기념하는 '아트북'의 표지입니다. 책 제목이 "50 years Hyundae Munhak"입니다. 가격은 무려 8만원.....(아무도 돈 주고 살 사람은 없을듯.) 표지 디자인을 한 사람은 세계적인 그래픽 아티스트 마쌩(Massin)이라는 분이라는군요. 저 디자인 속에 보이는 작은 책 이미지들은 그동안 "현대문학"의 표지 이미지들이구요.....
꼭 외국 디자이너에게 기념 아트북 디자인을 맡겨야 했는지는 잘 모르겠고 그 발상이 누구로부터 나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디자인 때문에 "문학하는 자들의 정신머리"가 동시에 일반화되어 욕 먹어야한다는 데는 동의할 수 없군요.
Commented by 갈림 at 2005/03/12 11:19
늘꿈속 / 외모가 '경쟁력'으로 작용하지 않는 분야가 이 사회에 어디 있겠습니까. 더 희한한 것은 이 사회가 자신의 외모가 경쟁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한 사회라는 거지요. ㅡㅡ;; (아, 그리고 작가의 미모는 연예인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Commented by at 2005/03/12 13:42
헐... '반달'님의 부분적 표현에 대해서는 너무 기분나빠 할 필요는 없는 듯... 한글이 없는 부분은 그냥 누구나 쉽게 지적할 수 있는 문제임에는 분명하니까.. 그냥 그정도로 이해해도..

'문학을 한다는 사람들'도 보통사람한테 따지고 보면 '끼리'이니까.. 그 밖에 있는 사람들이 상식적인 시각에서 해당 '끼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뭐 좀 있겠지..

그나저나 이런 행사에도 참여한다고 하니 이제 정말 문인친구라는 느낌이 드는군... 축하하이...^^;
Commented by 갈림 at 2005/03/12 14:15
류/ 당연히 '너무 기분 나쁜' 정도는 아니라구. ^^
반달님이 뭘 지적하시려고 하는 지는 충분히 알고 있다구 ^^;
(안다면서 왜 발끈한 것이냐...... ㅡㅡ;;)
Commented by b at 2005/03/13 01:49
음... 광화문 건널목에 길을 건너러 갔다는 건 정말 사실이었군요 --;; 저의 참석 후기를 들은 너구리는 "꼭 18, 19세기 사교계 같군"이라고 말하더라구요. 저 같은 사람은 패트롱이 없는 갓 상경한 시골 아가씨 정도 될까 ㅋㅋ 여하튼 갔다오고 나서 뭔가 두루뭉실 찝찝하다가 만 그것이 오빠의 글을 읽고 나니 좀 더 명쾌하게 이해되네요. 괜히 가자고 했나 미안해 하고 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던 듯.
Commented by b at 2005/03/13 01:52
아..그래서 '전방위적 개방사회'에 걸맞는 글쓰기를 하기 위해서는 스티븐 킹처럼 가상의 인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둘이 히히덕 거리며 모의해 봤어요.
Commented by 갈림 at 2005/03/13 02:08
b/ 내말을 안 믿었었던가보구먼.. 흐흐. 하긴 뭐...
그러고보니, 진짜 무슨 18,9세기 사교계 같은 거였나?
근데, 그때도 밥 못 얻어먹고 나와서 '죽' 먹는 사람 있었을까... (허모양 얘기로는 8시반인가에 시상식이 끝났다는....)
Commented by seal at 2005/03/13 11:13
먹으러 한번 가볼까, 생각은 있었는데 그렇게 늦게야 밥을 줬다니 안 가길 잘했네-_-

참고로 다른 분들이 착각하실까봐, 저는 '문학'이랑 별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Commented by 갈림 at 2005/03/13 11:45
seal/ 어엇, 자네도? @..@;;
Commented by b at 2005/03/15 02:01
ㅎㅎ 스티븐 킹이 아니라...앨러리 퀸이었어요...뭔가 이상하다 싶더니.. 뭐 킹이나 퀸이나...
Commented by 갈림 at 2005/03/15 11:02
b/ 나도 뭔가 이상하다 싶더라... ㅡㅡ;;
굳이 말하자면, 우리쪽에도 '듀나'가 뭐 비슷한 경우 아닐까...
아님, 류철균/이인화도?
(뭐 그렇게 보자면 문정혁/에릭이나 정지훈/비도? 쿨럭......)
Commented by 반달 at 2005/03/18 20:01
아, 이제사 봅니다.
'문학하는 자들'이라는 표현이 너무 두루뭉술했군요.
정확히 꼬집자면 현대문학 담당자들입니다.
너무 당연한 말인가요?^^
Commented by 갈림 at 2005/03/19 01:34
반달/ 괜시리 제가 부끄러워지는군요. ^^;;
반달님의 글들을 (슬쩍) 잘 보고 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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