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3월 09일
[생각] 박정희와 독도, 한승조
지난달 올블로그를 비롯하여 블로그 세계에서는 '박정희' 논란이 이어졌었다. 물론, 그 출발점은 '그때 그 사람들'이란 영화였을테고, 발화점은 Genesis님의 글이었을 테다. 이제는 불씨가 잦아들 무렵, 다시 박정희를 생각해본다. 이 글의 발화는 ozzyz님의 글에서 "또한 아쉬웠던 것은 평소 뜻을 함께해왔으나 정작 논쟁에 이르러서는 침묵했던 몇몇 지인들의 태도였다. 그들과 더불어 안방 좌파, 술자리 좌파를 지양하자던 구호가 처참하게 찢어발겨 흩어졌다."라는 문구를 발견한 것에서 촉발된 것이었다. 물론, ozzyz님이 이 하찮은 마이너 블로그의 주인을 겨냥하고 말했을리는 만무하건만, 이 참에 나의 박정희에 대한 생각의 일부를 스스로 정리해두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새 시간은 벌써 몇주가 흘러갔다. 그 동안 '독도' 문제와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한승조씨의 '축복' 발언이 이어졌었다. 이 문제들을 함께 아우르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겠으나, 게으른 탓에 그냥 몽땅 뭉뚱그려 생각해보고자 한다. (잡설이 길었다. 요컨대, 이 글은 약 3주 기간에 걸쳐 찔끔찔끔 쓰여진 잡글이란 얘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정희 유령, 혹은 신화의 실체는 다름 아닌 "민족주의"다. "민족주의"의 강력한 포스를 걷어내지 못한다면, '박정희' 논쟁은 늘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불행히도, "민족주의"는 2005년 한국 사회에서 가장 "건전"하고도 무서운 '깡패'의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더, 불행한 예견은 아마도, 당분간, 그 추세는 이어질 것이고, 그 '깡패'는 그 누구도 쉽게 덤비지 못할 공력을 유지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1970년대에 학창시절을 시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외웠을 것이고, 적어도 19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또렷이 기억을 할 "국민교육헌장"의 첫 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 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박정희가 경제성장의 신화를 세운 영웅이냐, 혹은 깡패같은 독재자였느냐의 판단은, 못마땅하긴 하지만, 누구나 자의적으로 내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판단이 어느쪽을 향하든 간에, 박정희는 196,70년대 대한민국에서 살아간 사람들, 혹은 그 시절을 기억하려는 사람의 '뇌'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아이콘이자 권력이 되어있다는 점이다. 역시 못마땅하지만, 그건 분명 박정희의 '힘(혹은 폭력)'이었다.
196,70년대를 지나면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민족"은 5천년만에 처음으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났는지도 모른다. 그때를 항간에서 "민족 중흥"의 시기였다고들 하는 이유다.
박정희의 과오가 그 성과를 덮을 수 있는지, 성과가 과오를 덮을 수 있는지 여부는 잠시 접어두자고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박정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고 하더라도 196,70년대의 경제 성장은 당연히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말하는 시각도 일단은 논외로 해보자. 그렇다면, 어찌되었건 196,70년대가 "민족 중흥"의 시대였다는 것만큼은 어김없는 사실이 되어버린다.
대단히 미안하지만, 이 위의 두 단락을 인정하는 순간, "박정희"는 "영웅(Hero)"의 자리에 안착한다. 젊은 세대들마저 박정희 '팬'으로 커밍아웃하게 만든, 쓰레기 베스트셀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박정희가 "민족주의 영웅"이란 이미지를 확고히 얻도록 도와주었다. "민족주의 영웅"이 갖는 공력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에 대한 가장 명확한 사례는, 안타깝게도 박정희 매니아들이 그토록 증오하는 북쪽의 김씨 부자들의 사례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쪽의 '민족주의 영웅'은 '경제 성장'의 공덕으로, 한쪽의 '민족주의 영웅'은 세계 최강 미국에 맞짱뜰 뱃심 하나로 수십년 세월을 버텨오고 있다. 심지어 사후(死後)에도 계속.
박정희 정권 당시, 대중들을 기만하기 위한 목적으로 내세웠던 정권 차원의 화두는 단연 '국가 발전'과 '민족 중흥'이었다. 그런데, '국가'와 '민족'은 일반 민중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었다. 고문과 탄압으로 괴롭혔다는 의미가 아니다. 당시의 이데올로기는 개개인들을 '발전과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난 '액션 서브-히어로'로 자리매김해주었다. 가슴이 벌렁벌렁해질만큼 감격적인 순간이다. 이땅의 민중들이 '국가 발전'과 '민족 중흥'의 "주인"으로 우뚝 서는 순간이 온 것이다. 이땅의 민초들이 '민족'과 '국가'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그렇게 한 것은 아마도 5천년 역사 이래, 개화기 무렵 '국채보상운동'과 '3.1 운동' 외에는 처음 있던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 학교에서는 매일 같이 "주인정신"과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교육을 받았으며, 마을에서는 "우!리!모!두! 잘 살아보세!!"라는 노래가 메아리쳤다. "너거들"이 아니라 "우리"가 "잘 살아보자"는데 몸바쳐 일하는 건 별로 아까운 일이 아니었다.
'발전'과 '중흥'의 "주인"이 되었었던 그들에게는, 그 성장의 대가가 그 개개인들에게 돌아갔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대가'를 받았는지, 그것을 누가 가로챘는지를 따지는 것 자체는 스스로의 명예를 짓밟는 행위였다. 박정희 시대의 '성과'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개개인이 주인이 된 그 감격적 순간"을 부정하려는 시도로 받아들여지기 충분하다. 이땅에 '암약' 중인 박정희 팬클럽은 박정희 개인에 대한 팬클럽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에 대한 서포터즈의 성격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들로 하여금 박정희를 비판하는 이들을 '철 없는 아이들'로 간주하도록 만든 것은 그들의 무지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세뇌당했던 '국가/민족 이데올로기'의 탓이다. 다만, 그들의 '무지'는 자신들의 희생을 담보로 이루어진 '성장'의 결실을 누가 가로채어갔는지, 그리고 그 '성장'이 얼마나 위험한 성장이었는지 아직까지도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심각하다.
'민족'이란 것은 오묘한 용광로여서, 온갖 잡것들을 다 한 데다 쓸어넣고 "하나"로 "화합"시켜버린다. 보다 기묘한 것은 그 용광로에 일단 빠져들면 '자신의 (성/계급/지역/인종 등등) 정체성'을 망각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대놓고 친일 행각을 벌였던 신문지 뭉치들이 "민족 정론"을 운운하는가하면, 만주군관학교 출신 박정희가 '민족 중흥'을 중얼거리는 한편으로 '한일수교'를 빙자한 뒷거래를 했음에도 "민족의 영도자"로 받들어 모셔지는 현실은 그 '기묘함'의 증거다.
"국가/민족" 이데올로기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아니, 점점 더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며 강력해지고 있다. '오노' 사건, '월드컵', '김선일씨 사건'을 거치면서 다양한 공감대를 형성했던 그 힘은 '독도'와 '고구려' 문제를 맞이하여 더욱 비이성적인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느낌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박정희를 둘러싸고는 (아마도 反박정희가 양적으로는 많을 듯 싶지만) 지루한 논쟁을 벌이곤 하지만, 중국이 제기한 '고구려 문제'나 일본이 제기한 '독도 문제'를 둘러싸고는 "논쟁"보다는 "욕지거리"로 대꾸하는 게 상책이라 여기는 듯하다. '민족 감정'의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다원적 입장은 불필요한 태도이거나 매국적 태도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이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해서, 그렇다고 '파시즘'의 조짐이라거나 '모든 민족 논의는 악(惡)이다'라는 식으로 과잉 반응을 하는 것도 적절치는 못하다. 김규항님의 말처럼 세상이 '계급'에 의해 나뉘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민족'이나 '국가'에 의해 나뉘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민족'과 '국가'라는 개념이 가지는 "현실적 파워"를 깡그리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월드컵 때 "Be the Reds" 티셔츠를 입었던 8백만명이 '반공' 이데올로기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되거나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지는 못했던 것처럼, 8백만명이 "파시즘이나 국가주의의 노예"가 되었다고 보는 것도 오산이다.
김규항님은 같은 글에서 '이건희가 나와 같은 민족인가'에 의문을 가져보라고 말했건만, "이건희가 돈을 벌었을 때와 이데이 노부유키가 돈을 벌었을 때, 어느 쪽이 '나'에게 눈꼽만큼이라도 더 이익이 돌아올 가능성이 높은가"를 따져보면 이건희쪽을 응원하는 게 그나마 낫다 싶은 기분이 안 들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이것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부득이하게, "민족"이나 "국가"라는 현실적 경계 내부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vanDal님의 글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한승조 교수의 발언의 경우, 이 발언은 "친일"의 문제보다 더 강고한 "반공"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한씨 할아버지가 일제 강점을 '축복'이라고 한 것은 "러시아 지배 -> 공산화"를 피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다행스럽다는 의미만을 생각하고 내뱉은 수사(修辭)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어찌보면 '민족'의 문제는 '반공'의 문제보다도 앞선 문제가 된다. 한씨 할아버지류들이 '반공'에 목매는 이유는 '공산주의'가 싫어서가 아니다. 사실, 그들 대다수는 '공산주의'가 정작 무엇인지 모르거나, 혹은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공산주의는 "같은 민족에게 총부리를 겨눈 자들의 사상"일 뿐이다. 그들에게 '공산주의'는 '反민족'이며(이건 사실, 팩트다), '민족주의'는 '반공'이다. 오죽했으면, 해방 직후의 정치 현실을 일컬어 '민족 계열'과 '사회주의자'들의 대결 구도라는 엉터리 구도를 만들어 수십년간 현대사 교육을 이어오고 있을까.
이 자들의 이 엉뚱한 '구획'과 '편가르기'는 80년대 이후 "민족주의"를 내세운 "용공(사실은 친북)주의자"들이 등장하면서, 응당 혼란에 빠져들더니, 기어이 "좌파=민족주의=반미자주=친북"이라는 기상천외한 구도까지 창작해내기에 이른다. 사실, 이렇게까지 황당한 구도가 나타나게 된 것은 "민족"을 내세우는 지배세력들이, 사실은 그때 그때 다른 '강자(强者)'는 몽땅 "우리편"임을 주장하는 '친일' 경력의 '친미주의자'들, 보다 정확히는 "기회주의자"들이라는 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그분들의 "민족"은 그분들 마음 속에(만) 있는 건데…….
"반공"이란 막강한 이데올로기가 실존했었으나 '공산주의'의 정체는 알려고 들지도 않았고, "민족"이란 막강한 이데올로기는 현존하나 '민족'에 대한 성찰은 없었던 우리의 역사가 이 모양 이 꼴의 냄비들을 만들어 낸 셈이다. 그러니 박정희를 '민족 중흥'의 영웅이자, '핵개발'로 자주국방까지 꿈꾸었던 '민족주의자'라 믿으며(무궁화 어쩌고 하는 소설을 사실로 믿는 인간들이다), '핵보유' 선언한 북한 김정일은 "미치광이"라 쏘아붙이며, 독도나 고구려를 들먹이는 쪽바리나 되놈들에게는 욕지거리를 일삼는 행위가 '하나의 인간 개체'로부터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조장된 거다. 그러고보면, 한일 회담 당시, '그까짓 바위섬(독도) 폭파시켜 버리자"라고 일갈한 바 있는 JP 형님은 분명 지조 높으시고 일관성 있으신 개 틀림없다.
* 마지막 문장에 오타 없음.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정희 유령, 혹은 신화의 실체는 다름 아닌 "민족주의"다. "민족주의"의 강력한 포스를 걷어내지 못한다면, '박정희' 논쟁은 늘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불행히도, "민족주의"는 2005년 한국 사회에서 가장 "건전"하고도 무서운 '깡패'의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더, 불행한 예견은 아마도, 당분간, 그 추세는 이어질 것이고, 그 '깡패'는 그 누구도 쉽게 덤비지 못할 공력을 유지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1970년대에 학창시절을 시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외웠을 것이고, 적어도 19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또렷이 기억을 할 "국민교육헌장"의 첫 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 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박정희가 경제성장의 신화를 세운 영웅이냐, 혹은 깡패같은 독재자였느냐의 판단은, 못마땅하긴 하지만, 누구나 자의적으로 내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판단이 어느쪽을 향하든 간에, 박정희는 196,70년대 대한민국에서 살아간 사람들, 혹은 그 시절을 기억하려는 사람의 '뇌'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아이콘이자 권력이 되어있다는 점이다. 역시 못마땅하지만, 그건 분명 박정희의 '힘(혹은 폭력)'이었다.
196,70년대를 지나면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민족"은 5천년만에 처음으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났는지도 모른다. 그때를 항간에서 "민족 중흥"의 시기였다고들 하는 이유다.
박정희의 과오가 그 성과를 덮을 수 있는지, 성과가 과오를 덮을 수 있는지 여부는 잠시 접어두자고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박정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고 하더라도 196,70년대의 경제 성장은 당연히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말하는 시각도 일단은 논외로 해보자. 그렇다면, 어찌되었건 196,70년대가 "민족 중흥"의 시대였다는 것만큼은 어김없는 사실이 되어버린다.
대단히 미안하지만, 이 위의 두 단락을 인정하는 순간, "박정희"는 "영웅(Hero)"의 자리에 안착한다. 젊은 세대들마저 박정희 '팬'으로 커밍아웃하게 만든, 쓰레기 베스트셀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박정희가 "민족주의 영웅"이란 이미지를 확고히 얻도록 도와주었다. "민족주의 영웅"이 갖는 공력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에 대한 가장 명확한 사례는, 안타깝게도 박정희 매니아들이 그토록 증오하는 북쪽의 김씨 부자들의 사례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쪽의 '민족주의 영웅'은 '경제 성장'의 공덕으로, 한쪽의 '민족주의 영웅'은 세계 최강 미국에 맞짱뜰 뱃심 하나로 수십년 세월을 버텨오고 있다. 심지어 사후(死後)에도 계속.
박정희 정권 당시, 대중들을 기만하기 위한 목적으로 내세웠던 정권 차원의 화두는 단연 '국가 발전'과 '민족 중흥'이었다. 그런데, '국가'와 '민족'은 일반 민중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었다. 고문과 탄압으로 괴롭혔다는 의미가 아니다. 당시의 이데올로기는 개개인들을 '발전과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난 '액션 서브-히어로'로 자리매김해주었다. 가슴이 벌렁벌렁해질만큼 감격적인 순간이다. 이땅의 민중들이 '국가 발전'과 '민족 중흥'의 "주인"으로 우뚝 서는 순간이 온 것이다. 이땅의 민초들이 '민족'과 '국가'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그렇게 한 것은 아마도 5천년 역사 이래, 개화기 무렵 '국채보상운동'과 '3.1 운동' 외에는 처음 있던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 학교에서는 매일 같이 "주인정신"과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교육을 받았으며, 마을에서는 "우!리!모!두! 잘 살아보세!!"라는 노래가 메아리쳤다. "너거들"이 아니라 "우리"가 "잘 살아보자"는데 몸바쳐 일하는 건 별로 아까운 일이 아니었다.
'발전'과 '중흥'의 "주인"이 되었었던 그들에게는, 그 성장의 대가가 그 개개인들에게 돌아갔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대가'를 받았는지, 그것을 누가 가로챘는지를 따지는 것 자체는 스스로의 명예를 짓밟는 행위였다. 박정희 시대의 '성과'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개개인이 주인이 된 그 감격적 순간"을 부정하려는 시도로 받아들여지기 충분하다. 이땅에 '암약' 중인 박정희 팬클럽은 박정희 개인에 대한 팬클럽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에 대한 서포터즈의 성격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들로 하여금 박정희를 비판하는 이들을 '철 없는 아이들'로 간주하도록 만든 것은 그들의 무지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세뇌당했던 '국가/민족 이데올로기'의 탓이다. 다만, 그들의 '무지'는 자신들의 희생을 담보로 이루어진 '성장'의 결실을 누가 가로채어갔는지, 그리고 그 '성장'이 얼마나 위험한 성장이었는지 아직까지도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심각하다.
'민족'이란 것은 오묘한 용광로여서, 온갖 잡것들을 다 한 데다 쓸어넣고 "하나"로 "화합"시켜버린다. 보다 기묘한 것은 그 용광로에 일단 빠져들면 '자신의 (성/계급/지역/인종 등등) 정체성'을 망각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대놓고 친일 행각을 벌였던 신문지 뭉치들이 "민족 정론"을 운운하는가하면, 만주군관학교 출신 박정희가 '민족 중흥'을 중얼거리는 한편으로 '한일수교'를 빙자한 뒷거래를 했음에도 "민족의 영도자"로 받들어 모셔지는 현실은 그 '기묘함'의 증거다.
"국가/민족" 이데올로기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아니, 점점 더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며 강력해지고 있다. '오노' 사건, '월드컵', '김선일씨 사건'을 거치면서 다양한 공감대를 형성했던 그 힘은 '독도'와 '고구려' 문제를 맞이하여 더욱 비이성적인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느낌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박정희를 둘러싸고는 (아마도 反박정희가 양적으로는 많을 듯 싶지만) 지루한 논쟁을 벌이곤 하지만, 중국이 제기한 '고구려 문제'나 일본이 제기한 '독도 문제'를 둘러싸고는 "논쟁"보다는 "욕지거리"로 대꾸하는 게 상책이라 여기는 듯하다. '민족 감정'의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다원적 입장은 불필요한 태도이거나 매국적 태도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이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해서, 그렇다고 '파시즘'의 조짐이라거나 '모든 민족 논의는 악(惡)이다'라는 식으로 과잉 반응을 하는 것도 적절치는 못하다. 김규항님의 말처럼 세상이 '계급'에 의해 나뉘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민족'이나 '국가'에 의해 나뉘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민족'과 '국가'라는 개념이 가지는 "현실적 파워"를 깡그리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월드컵 때 "Be the Reds" 티셔츠를 입었던 8백만명이 '반공' 이데올로기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되거나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지는 못했던 것처럼, 8백만명이 "파시즘이나 국가주의의 노예"가 되었다고 보는 것도 오산이다.
김규항님은 같은 글에서 '이건희가 나와 같은 민족인가'에 의문을 가져보라고 말했건만, "이건희가 돈을 벌었을 때와 이데이 노부유키가 돈을 벌었을 때, 어느 쪽이 '나'에게 눈꼽만큼이라도 더 이익이 돌아올 가능성이 높은가"를 따져보면 이건희쪽을 응원하는 게 그나마 낫다 싶은 기분이 안 들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이것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부득이하게, "민족"이나 "국가"라는 현실적 경계 내부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vanDal님의 글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한승조 교수의 발언의 경우, 이 발언은 "친일"의 문제보다 더 강고한 "반공"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한씨 할아버지가 일제 강점을 '축복'이라고 한 것은 "러시아 지배 -> 공산화"를 피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다행스럽다는 의미만을 생각하고 내뱉은 수사(修辭)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어찌보면 '민족'의 문제는 '반공'의 문제보다도 앞선 문제가 된다. 한씨 할아버지류들이 '반공'에 목매는 이유는 '공산주의'가 싫어서가 아니다. 사실, 그들 대다수는 '공산주의'가 정작 무엇인지 모르거나, 혹은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공산주의는 "같은 민족에게 총부리를 겨눈 자들의 사상"일 뿐이다. 그들에게 '공산주의'는 '反민족'이며(이건 사실, 팩트다), '민족주의'는 '반공'이다. 오죽했으면, 해방 직후의 정치 현실을 일컬어 '민족 계열'과 '사회주의자'들의 대결 구도라는 엉터리 구도를 만들어 수십년간 현대사 교육을 이어오고 있을까.
이 자들의 이 엉뚱한 '구획'과 '편가르기'는 80년대 이후 "민족주의"를 내세운 "용공(사실은 친북)주의자"들이 등장하면서, 응당 혼란에 빠져들더니, 기어이 "좌파=민족주의=반미자주=친북"이라는 기상천외한 구도까지 창작해내기에 이른다. 사실, 이렇게까지 황당한 구도가 나타나게 된 것은 "민족"을 내세우는 지배세력들이, 사실은 그때 그때 다른 '강자(强者)'는 몽땅 "우리편"임을 주장하는 '친일' 경력의 '친미주의자'들, 보다 정확히는 "기회주의자"들이라는 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그분들의 "민족"은 그분들 마음 속에(만) 있는 건데…….
"반공"이란 막강한 이데올로기가 실존했었으나 '공산주의'의 정체는 알려고 들지도 않았고, "민족"이란 막강한 이데올로기는 현존하나 '민족'에 대한 성찰은 없었던 우리의 역사가 이 모양 이 꼴의 냄비들을 만들어 낸 셈이다. 그러니 박정희를 '민족 중흥'의 영웅이자, '핵개발'로 자주국방까지 꿈꾸었던 '민족주의자'라 믿으며(무궁화 어쩌고 하는 소설을 사실로 믿는 인간들이다), '핵보유' 선언한 북한 김정일은 "미치광이"라 쏘아붙이며, 독도나 고구려를 들먹이는 쪽바리나 되놈들에게는 욕지거리를 일삼는 행위가 '하나의 인간 개체'로부터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조장된 거다. 그러고보면, 한일 회담 당시, '그까짓 바위섬(독도) 폭파시켜 버리자"라고 일갈한 바 있는 JP 형님은 분명 지조 높으시고 일관성 있으신 개 틀림없다.
* 마지막 문장에 오타 없음.

# by | 2005/03/09 10:46 | 談話 ::: 기고/생각들 | 트랙백(6) | 덧글(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제목 : 한주간의 논쟁을 돌아보며
뽀얀 색 적막이 기분 좋게 내리깔린 저녁. 숨 가쁘게 흘려보낸 한 주가 무색할 정도다. 대 청소를 한지 채 며칠이 되지 않았는데 책장 위로 잦아들은 먼지는 참으로 염치도 없다. 물에 흠뻑 젖은 걸레를 몇 차례 힘주어 짜다보니, 배설되지 못하고 앙금으로 남아있는 의식의 잔재들을 게워내어야 할 필요성이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정말이지 다사다난했던 한 주가 아니었던가. 주초의 동아일보 사건과 그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을 돌이켜보면, 그 배후에는 어김없이 박정희의 망령이 암약하고 서 있었다. 우라질 양반. 제발 좀 죽어라. 죽어.......more
제목 : 참을 수 없는 '민족'의 가벼움
1. 며칠 전 짐을 정리하다가 두툼한 서류뭉치들이 나왔다. 대부분 아버지께서 예전에 쓰셨던 서류거나, 내가 필요해서 뽑아둔 자료들이었다. 다시 읽을만한 것들은 아니기에 몽땅 들어올려 폐휴지함에 집어 넣을 작정이었다. 후두둑. 할 때마다 이 모양이다. 실수 없이는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다시 주섬주섬 쓸어담다가 흥미로운 문건을 발견했다. 발신 : 범청학련 북측본부 산하 조선학생위원회 수신 : 범청학련 남측본부 산하 한국대학총학생회련합 아직도 남아있었나? 3년 전에 있었던 서총련 핵심 일꾼 수련회인가 에서 받은......more
제목 : 한승조를 위한 변명
잡설1. 예전에는 몇몇 진보 매체에 글을 좀 올렸는데 이제는 그 어느 곳도 나와 생각을 같이하는 곳은 없다. 그렇다고 글을 쓸 때마다 그 사건에 대한 성향이 비슷한 곳으로 투고할 수는 없다. 결국 내가 글을 올릴 수 있는 곳은 내 블로그 뿐이다. 잡설2. 며칠 전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막 마친 선배를 만났다. 능력도 부럽지만 열심히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한 때 집안 형편이 꽤나 좋지 않기에 어떻게든 졸업하고 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중에 내 아이에게 원하지 않는 삶을 사는 내 모습......more
제목 : 가미가제 특공대와 민족주의
지만원, 진중권의 대담 전문 - 네이버 뉴스 "자꾸 과거 얘기해. 영어로 난 sick and tierd. 왜 과거를 자꾸. 거기서 뭐가 나와. 밥이 나와 떡이 나와." "그럼 나는 진선생 같은 분이 정권 잡는다고 하면 Nightmare, Nightmare." 동서양을 넘나드는 이 놀라운 언어유희는 사실 랩이 아니라 '피타고라스 정리 같은 수학공식' 을 6개나 만드신 분의 떳떳한 일갈이다. '알고 보니 진짜 만원' 파문을 일으킨 만원짜리 의식의 소유자 지만원씨와,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 말이 빨라지는 독설계의 랩퍼 ......more
제목 : 일련의 한승조-지만원 친일 논란을 보며..
이런저런 읽을거리를 모아보았다. (사실은 쌓아두고 나중에 다시 읽어보려고..-_-) 일단 한국에 있지 않은 관계로, 인터넷으로 뉴스만 접하고 이곳저곳 블로그 등지에서 얻은 희박한 지식으로 쓰는 글임을 미리 말한다. CBS 진중권, 지만원 대담 전문(네이버) 3인의 가미가제 특공대와 민족주의 지만원, 당신은 정신병자다 지만원 vs 진중권 TV토론을 보다. 한승조를 위한 변명 [생각] 박정희와 독도, 한승조 한쪽 시각의 글만 모아놨다고? 다른쪽 시각의 글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데 어쩌란 말이오.......more
제목 : 독도문제에서 놓치고 있는 것들
독도문제에서 놓치고 있는 것들 노무현 대통령의 위험 짜릿한 일갈, 카타르시스는 있지만 과정이 아쉽고 결론은 없는 기습 발언으로 인해 독도문제는 사실상 국가 대 국가의 치킨게임 대결구도로 넘어갔다. 치킨게임의 도로 위에 서 있는 한국과 일본이라는 자동차 중에 하나가 극적으로 상대를 피하지 않는다면, 이 두 차는 서로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고 말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두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는 이들이 현존하는 최고의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최소한 저 섬나라의 사자머리만큼은) 이라는 비극적 사실이다. 커밍스 교수는 김정일을 ......more
미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글 만큼은 감사한 마음으로 냅다 읽고 갑니다. '이데올로기 없는 이데올로기의 나라'라고 해야 하려나요. 또한 덧붙이자면 최근에는 민족주의의 실체에 대해 큰 회의를 느끼고 있습니다. 외세에 의해 주권을 침탈당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민족주의란, 글쎄요 과연 파시즘의 길로 빠져들지 않을 수 있을까나요. 의문입니다.
ozzyz/ ^^ 저를 겨냥한 거라고는 당연히 생각하지 않았지요. 다만 괜히 좀 마음에 찔렸을뿐이예요. (근데 2,3주 지나서 트랙백 걸려니까 좀 쑥쓰럽던걸요... ㅡㅡ;)
반달/ 반달님 글의 강렬한 마무리를 흉내내보려 했는데, 잘 안되네요. ㅡ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