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2월 19일
서울의 섬, 개발의 역사, 혹은 '광기'의 기록

내가 기억하는 유년기의 대부분은 '잠실'에서의 기억이다. 환경에 의한 피해는 그저 주변의 지역주민들이 감내해야하는 것으로 알았던 '연탄공장 동네' 면목동, 상봉동 생활을 뒤로 하고, 1980년, 막 개발이 되던 '잠실'은 새로운 내 삶의 터전이 되었다. 물론, 무척 어린 시절이라, 그저 모든 게 낯설뿐 불편함 따위는 느끼지 못했었다. 다만, 다니던 '파라네 유치원'을 졸업하지 못하고, 친구들과 헤어서 낯선 곳으로 이사를 온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새로 이사간 잠실 집에는, 바로 그 전해에 세상을 떠나가신 '각하'의 업적과 울음바다였던 '장례식' 사진들로 여섯장이 채워진 '달력'이 걸려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무렵, 광주에서는 "폭도"라고 이름 붙여진 이들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한 1년쯤 뒤, 잠실에서 어느정도 자리가 잡혀갈 무렵, 나는 아마도 우리집의 '부(富)'에 대해서 부담스러워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것은 우리집이 무슨 재벌집쯤 되는 부잣집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면목동 상봉동 시절에는 느끼지 못한 '빈부의 격차'를 실감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살던 집 주변으로는 드문드문 몇몇 집들이 들어서 있을뿐, 온통 모래밭일 뿐이었고, 새로 들어선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앞 길로 나아가야 아스팔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드넓은 모래밭에 드문드문 세워진 주택들 사이에는, '판잣집'과 '천막집'들도 적지 않았다. 아래에 링크 해 둔 "한겨레" 기사를 읽다보니, 아마도 그곳에 살던 이들, 그리고 내 친구들은 한때 '섬'이었던 잠실의 토박이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낡고 낡은 배구공을 발로 차며 노닐던 모래밭에서, 새로 세워진 양옥집에 살던 내 친구들은 글러브와 알루미늄배트까지 갖추고 야구를 하며, 그 땅을 점령해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때, 잠실에는 버스도 잘 다니지 않았을 뿐더러, 우리집에 '자가용'을 몰고 가끔씩 들르던 외삼촌은 모래밭에 빠져버리곤 하는 자동차 바퀴 때문에 트렁크에 '삽'을 넣고 다녀야 한다며 웃어보이시곤 하였었다. 하지만, 아마도 바퀴가 빠지는 법이 좀처럽 없었던 경운기들은, 그 '자가용'들을 씁쓸하게, 혹은 비웃으며 바라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집, 저 멀리로는 '올림픽주경기장'이 들어서게 되었고, "시청-신설동" 구간만 있던 2호선 지하철이 "시청-성수"를 거쳐 "종합운동장역"까지 연결되었던 날, 나는 아버지와 함께 "지하철역"을 구경하기 위해 모래밭 위로 20여분을 걸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또 어느날은, 지금은 "롯데월드"가 들어서있는 잠실역 부근과 석촌호수까지는 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 길이 뚫려 있었기에, 그 길 위에서 자전거 타는 연습을 하곤 했었다.
지금 그곳은, 내가 살던 집터조차 쉽게 찾기 힘들 정도로 변했다. 아니, '변했다'라는 말로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더욱 더 변하고 있다. 70년대 말에 새로 들어섰던 '아파트단지'들은 다시 허물어지고, 새로 재건축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또 몇 년 뒤 '잠실'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지 알 수가 없다. 내가 기억하는 20여년전 '잠실'의 모습으로부터, 또 다시 20여년을 거슬러 올라간 때에는 '잠실'이 '섬'이었었다는 "한겨레"의 이번 기사는 나로서는 꽤나 충격적이면서도 흥미로운 것이었다.
한쪽에서는 청계천이 복원되고, 한쪽에서는 천성산 터널이 뚫리고, 또 한쪽에서는 판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개발이 뒤늦은 지역을 '개발'하는 것에 대해 환경의 논리만 내세워 가로막는 것은 '불평등적 현실'의 지속을 강요하는 일이기에, 나는 '개발' 자체를 혐오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실로 '상전벽해'가 이루어지는 '개발'의 기록조차 온전치 못하고, 그 개발의 '과오' 조차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는 "개발의 광풍(狂風)"은 분명, '광기(狂氣)'의 소산이다. '광기'는 올바르게 '기록'되고 '기억'될 때에만, 반복되지 않는다.
"한겨레"의 위기에 대하여 말하면서, "한겨레"가 참 읽을거리가 부족한 신문이라는 점을 안타깝게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최근 "한겨레"의 이 기획기사는 그야말로 감동의 수준이다.
"한겨레" 서울의 섬 기획 기사

*** 한강 흐름과 잠실 변천사

*** 넝마주의? 엄청난 이권이었지

*** 여의도의 옛이름 '너벌섬'
*** 한강개발, 1백만평 백사장을 삼키다

*** 뚝섬의 유래
*** 그 넓던 백사장은 어디로 갔을까
# by | 2005/02/19 21:28 | 溫故 ::: 기억/기록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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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링크 쭈욱.. 연결하는 것도 노가다이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