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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점심, 저녁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던 기억은 요즘 아이들에게는 믿어지지 않는 일화일 것이다. 연년생 누나들이 고등학생이고 나는 중학생이던 때, 아침마다 내 어머니께서는 도시락 다섯개를 싸셨었으니, 이 또한 요즘 학부모들에겐 전설과 같은 일일 것이다.
솔직히 말하건대 그때, 도시락을 싸오기 힘들었던 주변 친구들이 분명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에게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다. 오히려 도시락 두개를 들고다니려니 무겁고 힘들다고 불평하기가 일쑤였을 것이다. 요즘은 거의 예외없이 학교에서 점심 급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거의 모든 학교마다 개인 사물함도 갖추어져 있으니, 도시락 두개에 무거운 책가방을 짊어메고 학교를 오고가야 하던 일조차 '그때를 아십니까' 속 이야기가 되어버린 셈이다. 하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점심 끼니를 해결하기 어려운 아이들이 많이 있다는 것만큼은 마찬가지다. 지금은 가소롭게도 한나라당의 전여옥 대변인조차(!) '가난'과 '굶주림'을 걱정하는 시대이니, 10여년 전보다 '절대 빈곤층'은 오히려 더 늘어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찌되었건 학교 급식이 보편화되면서, 경제적 환경이 좋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무료 급식도 제공되고 있으니 이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급식이 보편화 된 이후, 언제부터인가 무료 급식의 혜택을 받던 아이들이 방학을 맞이하면 점심 끼니를 거르는 일이 빈번하다는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방학기간 동안 결식하는 아이들에게 점심 식사를 제공하도록 예산이 마련되었다. 인터넷 세상을 들끓게 하고 있는 작금의 "도시락 사태"는 이를 계기로 제공되기 시작한, 바로 그 도시락이 너무나 부실하다는 '사진 보도'로부터 촉발된 일이다. 이번 사건은 서귀포시 지역의 결식 아동들에게 배포된 부실한 도시락의 모습이 제주의 소리라는 지역 언론에 보도되면서 시끌벅적하게 시작되었다. 이번 일을 보면서 느껴지는 것 가운데 하나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납세자의 권리'에 대하여 진지하고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우리의 세금으로 우리 주변의 불우한 아이들을 돕는다는 대의에는 적극 동의하기에, 우리의 세금으로 '이따위 도시락'을 만들어 아이들의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주는 행위를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불이님의 포스트에서 지적되고 있듯이, 지나칠 정도의 감정적 대응은 그 '분노'의 정당하고 그렇지 않음과 상관없이 '문제의 원인'과 '대안 마련' 대신 '희생양'만을 만들고마는 잘못을 반복할 우려가 있다. 여기서 '반복'이라고 말하는 것은, 경우는 많이 다르지만 오래전 '우지 라면 사건'과 작년 '만두소 파동' 때의 일이 문득 떠오르기 때문이다. 여론을 이끌어 나가고, 시급한 사회적 아젠다를 새롭게 제출하는 현상에 있어서, 이번 일은 인터넷이 가지는 힘이 얼마나 큰 지에 대해 그야말로 명확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누리꾼들은 서귀포시, 군산시는 물론이고 청와대, 언론사, 포탈사이트 할 것 없이 온 인터넷 세상에 '분노'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저 상품권 몇 장 건네주고 말거나, 그나마의 상품권조차 제때 전달하지 않은 또 다른 지역의 현실에 비하면,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마련하여 전달하려 했던 서귀포시와 군산시의 관계자는 어쩌면 억울할 수도 있겠다. 전문 도시락 업체가 아닌 구내식당에서 도시락을 만드는 상황에서 2000원 남짓한 돈으로 마련할 수 있는 도시락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변명도 영 터무니 없는 소리는 아닐 수도 있다. 배달까지 해야하는 상황과 꾸준히 식단을 바꾸어야하는 상황까지 고려할 때, 문제가 된 도시락이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는 군산시 시장 권한대행의 말조차도 어느정도 용납될 수 있는 수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 모두를 용납해서는 안된다. 이번 일은 어찌보면 작년 초에 있었던 '이승연 테마 사진집' 사건을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다. 당시 가장 큰 피해자였던 할머니들, 그리고 이번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인 아이들, 이 두 당사자들에게 우리 사회 모두는 커다란 '부채 의식'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성과 논리를 떠나, 그리고 우리들 각자 자신의 현실적 여건을 떠나, 우리들 모두는 그들에게 갖고 있어야 마땅한 마음의 빚이 있는 것이다. 하기에, 이들에게 피해를 입힌 직접적 당사자들은 어설픈 변명으로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들어서는 안되었던 것이다. '구내식당'에서 마련한 도시락임을 헤아려달라는 말은 참으로 말도 안된다. 마땅한 도시락 업체를 찾지 못했다는 담당 공무원의 말은 "적당히 예산을 사용하여 아이들에게 어찌되었건 식사 비슷한 것을 전달하겠다"는 발상에 다름아니다. 실질적 식비가 1400원이니, 2000원이니 하는 변명은 결코 해서는 안되었다. 그들의 변명이 솔직한 것이었다면, 그들은 1,2천원으로 한끼니를 해결해보려는 고민과 시도를 결코 해본 적이 없는 자들임에 분명하다. 그들이 그렇게 고민을 하지 않고, 그렇게 나태한 태도로, 어찌 한 달을 십 몇 만원 돈으로 견뎌낼까를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었겠는가. 이번 일을 계기로 아이들 급식을 위한 예산을 4천원 수준으로 올릴 계획이라고 한다. 진정으로 그 아이들에게 두 배는 더 나은 식단으로 꾸며진 음식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면, 거기에 들어가는 세금이야 어찌 아까울 수 있겠냐만, 이 또한 너무나 편의주의적인 발상이다. 어떤 사람이 한끼에 4천원 꼴로 계속 식사를 한다고 하면 한달이면 36만원의 돈이 필요하다. 4인 가족이라면 150만원 돈이 들어가는 셈이다. 이땅의 평범한 주부라면 한달에 한 가족의 식비로 150만원이 지출되어야한다는 것이 당연해보일까. 서귀포시의 경우만 해도, 방학중 급식을 제공받는 아이들의 수가 700명. 700명에게 제공되는 다량의 식사를 준비하는데, 1인당 4천원의 비용이 소비된다면, 이것은 오히려 지나친 소비이다. 많은 이들이 이번 사건에 대해 분노했던 것은 '2천5백원'의 예산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돈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하고, 그 돈이 어디론가 '새나갔음'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1인당 급식비를 1500원 증액하기보다는 기존의 예산 집행을 엄정하고 책임감있게 하도록 관리 감독하고, 아이들의 급식 포장과 배달 체계 자체를 손보아서 '따뜻한 식사'가 '제때에'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리라고 본다. 아니, 사실은 그보다도, 군산 도시락 문제를 폭로했던 석일 목사의 인터뷰에도 드러나있지만, 궁극적인 해결대책은 '결식아동을 위한 도시락 배달'이 아닌, 다른 방향에서 세워져야 한다. 아이들의 끼니를 어떠한 방식으로든 걱정하고 염려해주는, 게다가 잘만하면 '정'까지도 함께 전달할 수 있는 '도시락 배달' 자체는 상당히 훌륭하다. 하지만, 홀로 그 도시락을 먹어야 하는, 어쩌면 혹은 집에서 다른 가족들과 나눠먹어야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생각한다면, 현재의 '도시락 배달' 방식은 아직은 고민이 부족한 결과일 뿐이다. 식당 주인이나 일반 시민들의 자원봉사를 통해 아이들에게 충분하고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는 다른 자치 단체의 사례(예1, 예2, 예3)를 참조하거나, 석일 목사의 말처럼 일정한 공간에서 '함께 나누며 같이 식사하는 방식'을 고민하든지,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고민없이 '적당히' 예산을 집행하려 한 공무원들(아니 '공금'을 다루는 모든 이들)에게 이 사건이 경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만, 끼니조차 해결하기 힘든 아이들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부채'와 관련된 일이기에, 이번 일의 '대안'을 고민하는 일은 공무원들에게만 맡겨두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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