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 23일
[리뷰] 나비효과

감독 : J. 마키에 그러버, 에릭 브레스
출연 : 애쉬튼 커처, 에이미 스마트, 에릭 스톨츠, 윌리엄 리 스코트, 엘든 헨슨
미국에서 '의외'의 박스오피스 정상에 이어, 국내에서도 최근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영화 <나비효과>. 관객과 두뇌게임을 벌이는 스릴러 영화이며, <메멘토>와 <매트릭스>를 연상시키는 영화라는 홍보에다가 관객들의 "대단하다"는 입소문을 타고 관심을 모으고 있는 영화다. 더욱이 최근 인터넷을 통해 "디렉터스 컷"을 다운받아 본 사람들에 의해 '감독판'과 '극장판'이 다르다는 얘기가 알려지면서,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영화는 순간순간 기억의 빈틈을 가지고 있는 에반(에쉬튼 커처)이 어린시절 정신과 의사의 제안으로 써오게 된 "일기"를 읽다가 과거의 시간 속으로 돌아가는 통로를 발견한다는 설정에 기반한다. 에반은 "일기"를 통해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과거 기억의 빈틈을 메우거나 불행한 과거 사건을 바로잡으려고 한다. 그러나 에반이 과거를 바로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일이 꼬여간다. 이와 함께 어린 시절 동네 친구 케일 밀러(에이미 스마트)와의 로맨스가 함께 곁들여 진다. 여기까지가 극장에 널려 있는 전단지에도 적혀 있는 시놉시스다. (이하에도 스포일러가 될만한 부분은 언급하지 않겠다.)
<메멘토>, <거미숲>,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노보> 등 처럼 최근 들어 부쩍 많아지고 있는 "기억"이라는 테마를 다룬 영화라는 점이 일단 주목될만한 점이겠고, 그리 많은 예산을 들이지는 않았음에도 꽤 정교한 C/G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 복잡한 에피소드와 사건들을 무난하게 엮어가고 있다는 점도 인정할만한 부분이다. 엔딩 장면에 흘러나오는 '오아시스'의 노래도 좋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해서 이 영화를 <메멘토>나 <매트릭스>에 빗댄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이 영화는 <메멘토>만큼 정교하지도 않고 <매트릭스>처럼 철학적이지도 않다. 과거로 돌아가 사건을 바로잡으려 할수록 일이 점점 상황이 악화된다는 설정은 사실 1997년작 <레트로액티브>에서 이미 사용된 바 있었다. 책이나 일기의 내용 속 시공간으로 빠져들어간다는 설정은 <나이트메어>에서 자주 이용된 아이디어였다. 조금 더 심하게 말하자면, <나비효과>에서의 기억과 시간에 대한 성찰의 수준은 1987년작 <빽투더퓨쳐>보다 그다지 나아진 것이 없어보였다.


감독과 배우들이 전작이 보잘 것 없다고 해서 무시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박찬욱 감독이 분명한 사례이지 않은가. 이 영화에서 에반이 케일과 한참 로맨틱한 상황에 빠졌을 때, 친구가 와서 "네 차가 박살났어!"라고 말하는 순간, 애쉬튼 커처가 출연한 코메디 영화 "내 차 봤냐?(Dude, Where's My Car?, 2000)"를 떠올리면 두 배로 즐거워질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데스티네이션2> 각본/감독의 내공이 "나비효과"라고 하는 심오한 주제를 다룰 수 있게 되는 일은 그야말로 "나비효과"를 기대해봄직한 일일 뿐이다. 더욱이 이 영화의 내용과 "나비효과"는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영화 속 인물들의 아픈 과거의 근원에는 가정에서의 폭력에 근원하고 있다는 점은 의미있게 바라볼 수 있지만, 정신질환의 '유전성'을 (근거없이) 암시하고 있다거나 '어머니'에 대해서는 여전히 지나칠 정도로 낭만적인 시각을 보인다는 점에 있어서는 이 영화의 빈곤한 '철학'을 목격한 듯하여 안스러운 기분이다. (감옥 장면에서 보여주는 '흑인'이나 '히스패닉', '동성애'에 대한 편견까지 진지하게 바라보자면, 한마디로 우울할 정도다.)
에반이 끊임없이 자신의 과거를 바로 잡아보려는 노력은 결국 실패한 셈이지만, 극장에서 본 이 영화의 결말은 분명 해피엔딩이라 할 수 있다. 보지는 못했지만, 감독판이라고 알려진 또다른 결말은 보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래도 극장판에 비해서보다는 심오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듯한데, 그렇다고 감독판을 따로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별로 들지 않는다.

별점 : ★★☆
# by | 2004/11/23 22:44 | 談話 ::: 기고/생각들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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