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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주홍글씨
김영하의 단편을 영화화한다는 얘기가 나올 때부터 관심을 가졌던 <주홍글씨>.
김영하가 영화작업에 참여한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흥행 대박을 터뜨리고 있지만, <주홍글씨>는 시간이 갈수록 성적이 저조해지는 형편이다. (물론 흥행결과가 영화의 품질을 보장해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예상외로, 소설을 본 사람은 실망한다, 아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실망한다, 등등의 혹평이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개봉무렵 무비스트를 비롯한 영화사이트들에 '알바'를 풀어서 허위 20자평을 올려 홍보했다는 증거들이 포착되면서 (사실 그런 홍보 안하는 영화가 없겠지만, <주홍글씨>는 정도가 심했다고 판단한 무비스트 측이 제재에 나설 정도였다) <주홍글씨>는 오랜만에 복귀한 배우 한석규에게 또다시 악몽을 안겨주는 영화가 될 듯 싶다.


변혁 감독의 전작은 <인터뷰>였다. 심은하의 마지막 영화출연작으로 기억에 남아있는 이 영화는 파격적인 영화형식으로 큰 화제를 모았었지만, 그 파격적이라고 하는 '형식' 외에 어떠한 '내용'이 담겨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변혁 감독은 이미 오래전, 단편영화계에서는 전설처럼 남아있는 <호모비디오쿠스>를 이재용 감독과 함께 만들었을 때부터, '천재감독'이란 말을 들어왔던 감독이다. <호모비디오쿠스>의 국제적 성공에 힘입어 파리8대학, 파리국립영화학교, 파리1대학 등을 거치게 된 그의 화려한 경력은 첫 장편이었던 <인터뷰>의 개봉 당시 엄청난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심은하, 이정재를 캐스팅하고도 그들의 존재감을 상실시켜버리는 과감한 연출방식을 보이자, '역시 변혁답다'고 스타시스템에 빠져들지 않은 그를 변호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재용 감독이 <정사>와 <스캔들>이라는 상업성 짙은 영화를 찍으면서 나름대로의 '스타일리스트'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변혁 감독은 <인터뷰>의 후유증을 꽤나 오래 앓아왔던 것 같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인터뷰>가 그러했듯, <주홍글씨>도 스타일 과잉이 빚은 '참사'라고 해야할 것이다.

재즈 가수 '가희' 역할을 한 이은주, 첼리스트 '수현' 역할을 한 엄지원, 냉철한 베테랑 형사 '기훈' 역할인 한석규. 이들이 각각 노래와 피아노 연주, 첼로 연주, 그리고 권총 분해 결합에 능숙해지도록 쏟아부은 노력은 매우 대단해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된 것은 아니었다.

이사를 오며 남자친구가 와서 페인트칠을 해준 가희의 '소박한 집'은 알고보니 '수영장'과 완벽한 'AV시스템'을 갖춘 '초호화 집'이었고, 강력반 형사 '기훈'의 취미나 그가 흥얼거리는 노래는 너무나 고상한 것이었다.

어차피 이야기가 겉도는 <사진관 살인사건> 얘기는 빼고, 김영하의 데뷔작 <거울에 대한 명상> 이야기만 해보자. 이 원작 소설에서 '두 여자'(가희, 성현)의 사랑은 두 소녀가 괴한들로부터 강간을 당한 이후, '강간으로 이루어진 세계'로부터의 탈출로 그려진다. 소설에서 두 남녀(나, 가희)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버려진 차 트렁크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내가 두려움에 떨 때, 가희는 오히려 너무나 차분하다. 나르시스트의 파멸을 보여주는 원작의 의미는 이 상황에서 도출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그렇지 않다. 소설 속에서 아내가 '상수도'라면 가희는 '하수도'라고 표현되는 데에 비하면, 영화 속 가희의 모습은 결코 '하수도' 같지 않다. 수영장에서 우아하게 헤엄치는 하수도를 본 적이 있는가? 또 영화의 '반전'은 강박증에 가까운 것이어서, (오죽하면 소설에는 이미 다 나와 있는 이 반전을 숨기기 위해 원작자를 감추는 홍보전략을 썼을까.) 관객들에게 그다지 충격적일 수가 없었다. 이미 '정숙한 아내, 섹시한 정부(情婦), 신비한 여인'의 이미지로 남성적 관점에서의 '여성환타지 3인방'을 구성해놓고, 뒤늦게 마련한 '반전'은 설득력이 없어보인다.

또 하나의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보이는 '이은주'와 어깨에 힘이 덜 빠진 듯한 '한석규'의 존재가 안 그래도 어깨에 힘들어간 감독이 만든 영화를 더욱 부담스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비난하는 마지막 트렁크 신은 나름대로는 메시지 전달에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원작과는 전혀 다른 의미이지만, 두 남녀가 모두 극한적 아노미를 체험하면서 '의도적으로 길게' 진행되는 이 시퀀스는 관객 모두에게 "아직도 갇혀있는거냐", "지긋지긋하다"라는 느낌을 주었다면, 그건 오히려 성공이었을 것이다. 또, 매우 자연스러운 카메라 워크(촬영: <말죽거리 잔혹사>의 최현기)도 한국영화에서 보기드물 정도로 훌륭한 것이었다. 그러나, 넘치는 스타일은 다른 모든 장점들을 그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만들고 말았다.

별점 : ★★☆
by 갈림 | 2004/11/14 14:11 | 談話 ::: 기고/생각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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