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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21일 아침.그날따라 비교적 일찍 학교에 갔었던 나는 정말 거짓말 같은 소식 하나를 접하게 되었다. 내가 집에서 막 나섰을 시간쯤, 그러니까 그날 아침 7시 35분쯤 성수대교가 무너졌다는 소식이었다. 뒤늦게 소식이 캠퍼스 곳곳으로 퍼져나가자, 주변 사람들은 성수대교로 출퇴근하시는 부모님이나 친인척들, 혹은 그곳으로 통학하는 후배나 친척들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TV나 PC 통신을 통해 전해지는 소식을 접하기 위해, 부산한 모습들이었다. 핸드폰도 인터넷도 없다시피한 시절이었지만, 모두들 주변 사람의 안부를 묻기 위해 바빴던 그날 아침이었다. 누군가는 또다른 누군가에게 삐삐 호출을 했지만, 응답이 없자 무척이나 당황하고 긴장하기도 하였다. 나의 어머니도 성수대교를 오가며 출퇴근 하시던 시절이었지만, 다행히도 내 주변에는 사고와 직접 관련된 사람은 없었다. 어찌되었건, 모두들, 믿기 힘들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소식 앞에서, 한편으로는 가까운 주변에 사고를 당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한편으로는 이런 어이없는 사고가 어찌하여 일어나게 되었는가를 한탄했다. 어떤 이들은 다리 위에서 길이 막혀 차가 멈춰 서 있을때, 유난히 많이 흔들렸던 성수대교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였고, 어떤 택시기사는 초대형 트럭들이 다리 위를 오갈때마다 느꼈던 공포를 말하기도 하였고, 어떤 이는 하늘색으로 도색된데다가 유난히 연결램프가 복잡하게 되어 있던 모습이 보기에도 약해보였다고 말하기도 하였다.어찌되었건 그날 아침, 건설된지 15년밖에 되지 않았던 '대교'의 상판이 저 한강 위로 떨어져내리고, 그 위를 지나던 16번 시내버스 한 대가 함께 떨어져내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강남에서 강북으로 등교하던 무학여고 여학생 9명을 포함한 서른 두 명의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를 당한 무학여고 학생들 대부분은 8학군 배정을 위해 강남으로 이사를 갔지만, 당시 거주연한이 모자라서 강북 학교로 배정되어 버스를 타고 통학하던 학생들이었다. 환경미화원 일을 하는 어떤 희생자의 아버지는 "8학군에 대한 욕심"이 화를 불렀다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후회를 한다고 말한다. 그 사건은 너무나 어처구니 없었던 사고였기에, 누구나에게 아픔과 안타까움을 줄 수밖에 없었다. 희생자와 부상자들 뿐만이 아니라 그들 주변의 가족들 모두가 1분만 빨랐더라면, 1분만 늦었더라면, 하는 후회로 10년의 세월을 보냈을 터이다. 그때의 사고 이후 강남북 교차 배정은 폐지되었다. 요즘은 거주 연한과 상관없이 강남에 살기만 하면 강남 학교로 배정을 해주고 있다. 근래 몇년간 어떤 대학들은, 이런 저런 이유를 갖다붙였지만, 결국은 한 마디로 말해서 강남에 있는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대학 입학에 있어 유리한 점수를 준다는 '고교등급제'를 시행하기도 했다. 한때 강남 개발의 신화의 상징과도 같았던 '압구정동'. 바로 그 압구정동과 강북을 연결하는 다리였던 '성수대교'. 한때 정주영 회장이 직접 살면서 강남 이주를 선도했던, 또 그로 인해 '부의 상징'으로도 불렸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예전의 명성을 잃은 채, 낡은 아파트 취급을 받고 있고, 압구정동 사람들이 오가는 출퇴근길이었던 성수대교는 붕괴되었다가 다시 건설되는 영욕의 시간을 겪었다. 하지만, 여전히 '강남'을, 혹은 특정 지역을 살아야 '좋은 대학' 간다는, 그리고 '출세'한다는 생각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아니, 더욱 극심해지고 있다. 건설과 개발 현장에서 '불도저' 식으로 '빨리빨리' 일을 진행하는 방식 역시도 크게 달라진 것 없이 이어지고 있다. 박통 때의 '신화'는 여전히 그의 딸과 그 당시 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인 현재 모 특별시 시장에 의해 '현재진행형'으로 살아있다.사고가 난 후, 성수대교는 완전히 해체된 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빨간색으로 도색된 모습으로 그 자리에 다시 세워졌다. 아마도 해외 감리업체의 지시를 철저히 따르느라 그랬는지, '마일'과 '킬로미터' 단위를 착각해서 그랬는지, 1998년 재개통 직후 제한속도 '40'으로 통행이 재개되었던 성수대교는 얼마전 확장과 연결램프 공사까지 끝마친 채 수많은 차량이 오가는 한강의 대표적 교량으로 다시 등장하였다. 1997년, 그러니까 사고가 난지 3년이 흐른 뒤, 성수대교 북단에는 희생자를 위한 위령비가 세워졌다. 그 위령비에는 무학여고 교사이자 시인이었던 변세화 선생님의 시가 적혀 있다. "분하고 원통할세. 비명에 가신 이들 애닯다. 부실했던 양심 탓이로다. ....(중략).... 부디 고이 잠드소서. 아직도 눈먼 자, 여기 와 새 다짐 불지피라"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수대교 사고 이후에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대구 지하철 참사와 같은 어이없고도 슬픈 사건들이 잊을만하면 다시 발생하고 있고, 최근에도 광화문 지하도가 위험하다는 보도나 국도의 다리 상판이 주저앉았다는 보도가 이어지는 걸 보면, 성수대교 붕괴 사고 10년이 지난 오늘도, 우리의 안전은 그다지 보장되어 있지 않은 듯하다. 모쪼록,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들 모두의 명복을 다시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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