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12일
[기고] 서평 :::: 랍스터를 먹는 시간 (방현석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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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과 한국, 그 부끄러운 '국익'의 역사에 대한 반성
:::: 서강대학교 대학원신문 87호 (2004년 10월 7일자) ::::
얼마전 노무현 대통령이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을 순방하고 돌아왔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대통령의 순방을 통해 우리나라는 두 나라의 에너지 자원 개발에 참여할 권리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카자흐스탄에서는 8억 배럴에 이르는 유전 개발에 참여하기로 합의했단다. 정부 여당에서는 당연히 방문 외교 성과를 홍보하기에 바빴고, 야당과 보수 언론에서는 대통령의 외교 행적 자체를 무시하기에 바빴다.
카자흐스탄처럼 지하자원이 풍부한 국가에 자본이나 인력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우리나라가 진출하여 그 자원을 개발하게 되었다는 것은 소위 '국익'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성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그리고 냉정하고 솔직하게 보자면 그것은 자본을 앞세운 '제국주의적 침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제국주의란 다른 것이 아니다. 19세기말 이래로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의 자원을 '개발'한다는 이름으로 '침략'해온 것이 바로 제국주의다. 21세기 초 현재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어떤 경우에, 스스로 제국주의를 꿈꾸고 있다.
물론 대한민국은 여전히, 보다 강력한 '제국'의 요구에 꼼짝없이 또 다른 나라에 군대를 파병하고 마는 나약한 국가이기도 하다. 무엇이 진정한 국익인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도 없이, '반전(反戰)'에 관련한 생산적 논의도 없이, 쫓기듯 몰래몰래 이라크로의 추가파병은 강행되고 말았다. 정말 어쩔 수 없는 파병이었는지, 고급 정보를 접할 수 없는 평범한 이들로서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 우리의 군대가 다른 나라에서 총칼을 들고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한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는 약 40년 전 이번과 같은 '제국'의 요구를 받고 또 다른 나라에 군대를 파병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1964년부터 10년 가까운 기간동안 한국군은 베트남에 파병하여 치열한 전쟁을 치렀다. 그리고 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90년대 들어 개방의 물결을 타고 한국과 베트남은 수교를 맺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금, 베트남에는 한국 연예인들의 한류 열풍이 몰아치고 있으며, 한국 기업들은 앞다투어 베트남 시장을 장악해나가고 있다. 작년에는 한국의 한 정유회사가 베트남의 한 광구에서 상업적 유전 개발에 성공하였고, 그것은 현재 한국이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해외 각지로 에너지 개발을 시도하고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베트남과 한국은 참으로 특별한 인연이 있는 나라임에 분명하다. 또한 그 인연이 대개 우리에게 '경제적 이익'을 안겨주었다는 점도 분명하다.
소설가 방현석은 근래 베트남에 대한 소설들을 발표하고 있다. 그의 소설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에는 네 편의 중편 소설이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두 편이 베트남 현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방현석은 1980년대 말 단편 「내딛는 첫발은」을 발표한 이래로 대표적인 '노동 소설'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도 그는 박정희 시대와 전두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을 통해 과거의 암울하고 치열했던 현실을 형상화하곤 하였다. 그러던 방현석이 베트남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근래 중국의 김인숙, 독일의 배수아처럼, 해외에서 주로 머물면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가 적지 않지만, 그가 방현석이고 그곳이 베트남이기에, '베트남에서의 방현석'은 그리 간단한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베트남에서의 방현석'은 우리에게 베트남과 관련된 우리의 과거와 현재 역사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랍스터를 먹는 시간』의 첫머리에 실려 있으며, 작가 스스로 자신의 문학 세계에 있어 새로운 '돌파구'가 되었다고 말하는 「존재의 형식」은 2003년 황순원 문학상과 오영수 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재우와 그의 동료 희은은 베트남에서 한국어로 된 시나리오를 베트남어로 옮기는 번역 작업에 매달린다. 과거 베트남의 현지 영화감독 레지투이가 이들의 번역작업을 도와준다. 이들이 작업하는 것이 '번역'이라는 점도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모국어가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어의 소통'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번역 작업을 하다가 매끄러운 언어 선택이 되지 않을 때가 많아 답답함을 겪는 이들의 문제는 사실, 언어의 문제에 앞서 문화의 차이와 서로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재우에게 한때 운동권 동지였으나 지금은 변호사로의 삶을 살아가는 문태가 찾아온다. 학술회의 참석차 베트남을 방문한 문태는 천박한 자본주의적 속물의 표상처럼 행동한다. 뒤늦게 레지투이가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전사 출신인 '반 레'라는 필명의 시인과 동일 인물이었음이 밝혀질 무렵, 레지투이는 재우에게 말한다. "친구가 친구를 이해해주지 않으면 누구와 더불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나." '반 레'는 작가 방현석에게 실제로 많은 영향을 미친 베트남의 시인 겸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으로 실존인물이다.
이 소설집의 표제작인 「랍스터를 먹는 시간」 역시 베트남과 한국 양국의 역사와 인연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소설은 베트남 현지 조선소의 한국인 관리자와 베트남 노동자 사이에서 벌어진 폭행사건의 발생과 전개, 그리고 해결 과정을 따라간다. 폭행사건의 양쪽 당사자인 한국인 관리자 김부장과 베트남 노동자 보 반 러이는 모두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사람들이었다.
한국인 중 유일하게 베트남어에 능통한 건석은 폭행사건의 부당한 마무리에 반발, 사표를 던진 보 반 러이를 만나기 위해 그의 고향을 찾아갔다가 보 반 러이의 고향 마을이 과거 한국군에 의해 몰살당한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혁명전사 출신인 베트남인 팜 반 꾹은 건석에게 이라크 전쟁에 참여하는 한국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미국의 핑계를 대고 이라크에 들어간 한국군을, 베트남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이라크인들이 이해해주어야 하는 것이냐고 건석을 몰아붙이던 그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한국에 대한 경멸을 담아 다음과 같은 말을 내뱉는다.
"지금까지 당신들에게 베트남전쟁에 개입한 책임을 묻지 않은 게 당신들에게 책임이 없어서라고 생각하나. 오해하지 말게. 그건 아직 당신네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질 수 있는 나라의 축에 들지 못하기 때문일 뿐이네. …(중략)… 만약 당신이 이 나라에서 살려고 한다면 당신의 나라가 한 일과,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 좀더 정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 우리 베트남은 당신네 나라보다 훨씬 가난했지만 책임 있는 나라로서 행동했네."
당시 '박정희 군대'에 의해 저질러진 추악한 전쟁 범죄는 과거의 사건으로만 남겨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아픔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요즘도 세계 곳곳에서는 힘과 자본의 논리에 의해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그 현장에서는 '공존'보다는 '국익'이, 그 뒤에는 '반성'보다는 '핑계'가 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함께 실린 「겨우살이」와 「겨울 미포만」도 역시 패배 혹은 잘못에 대한 처절한 자기 반성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소설들이다.
반성과 사과는 우리가 일제를 비롯한 우리를 억압했던 외국 세력들, 우리를 핍박했던 군사독재 권력자들에게만 요구할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은 반드시 누군가의 손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현실을 납득한다면, 그리고 우리의 삶들이 이어져 결국 하나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라면, 반성과 성찰은 지금 바로, 여기에서 우리 모두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행위이다.
베트남과 한국, 그 부끄러운 '국익'의 역사에 대한 반성
:::: 서강대학교 대학원신문 87호 (2004년 10월 7일자) ::::
얼마전 노무현 대통령이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을 순방하고 돌아왔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대통령의 순방을 통해 우리나라는 두 나라의 에너지 자원 개발에 참여할 권리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카자흐스탄에서는 8억 배럴에 이르는 유전 개발에 참여하기로 합의했단다. 정부 여당에서는 당연히 방문 외교 성과를 홍보하기에 바빴고, 야당과 보수 언론에서는 대통령의 외교 행적 자체를 무시하기에 바빴다.
카자흐스탄처럼 지하자원이 풍부한 국가에 자본이나 인력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우리나라가 진출하여 그 자원을 개발하게 되었다는 것은 소위 '국익'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성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그리고 냉정하고 솔직하게 보자면 그것은 자본을 앞세운 '제국주의적 침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제국주의란 다른 것이 아니다. 19세기말 이래로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의 자원을 '개발'한다는 이름으로 '침략'해온 것이 바로 제국주의다. 21세기 초 현재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어떤 경우에, 스스로 제국주의를 꿈꾸고 있다.
물론 대한민국은 여전히, 보다 강력한 '제국'의 요구에 꼼짝없이 또 다른 나라에 군대를 파병하고 마는 나약한 국가이기도 하다. 무엇이 진정한 국익인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도 없이, '반전(反戰)'에 관련한 생산적 논의도 없이, 쫓기듯 몰래몰래 이라크로의 추가파병은 강행되고 말았다. 정말 어쩔 수 없는 파병이었는지, 고급 정보를 접할 수 없는 평범한 이들로서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 우리의 군대가 다른 나라에서 총칼을 들고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한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는 약 40년 전 이번과 같은 '제국'의 요구를 받고 또 다른 나라에 군대를 파병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1964년부터 10년 가까운 기간동안 한국군은 베트남에 파병하여 치열한 전쟁을 치렀다. 그리고 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90년대 들어 개방의 물결을 타고 한국과 베트남은 수교를 맺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금, 베트남에는 한국 연예인들의 한류 열풍이 몰아치고 있으며, 한국 기업들은 앞다투어 베트남 시장을 장악해나가고 있다. 작년에는 한국의 한 정유회사가 베트남의 한 광구에서 상업적 유전 개발에 성공하였고, 그것은 현재 한국이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해외 각지로 에너지 개발을 시도하고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베트남과 한국은 참으로 특별한 인연이 있는 나라임에 분명하다. 또한 그 인연이 대개 우리에게 '경제적 이익'을 안겨주었다는 점도 분명하다.
소설가 방현석은 근래 베트남에 대한 소설들을 발표하고 있다. 그의 소설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에는 네 편의 중편 소설이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두 편이 베트남 현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방현석은 1980년대 말 단편 「내딛는 첫발은」을 발표한 이래로 대표적인 '노동 소설'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도 그는 박정희 시대와 전두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을 통해 과거의 암울하고 치열했던 현실을 형상화하곤 하였다. 그러던 방현석이 베트남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근래 중국의 김인숙, 독일의 배수아처럼, 해외에서 주로 머물면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가 적지 않지만, 그가 방현석이고 그곳이 베트남이기에, '베트남에서의 방현석'은 그리 간단한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베트남에서의 방현석'은 우리에게 베트남과 관련된 우리의 과거와 현재 역사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랍스터를 먹는 시간』의 첫머리에 실려 있으며, 작가 스스로 자신의 문학 세계에 있어 새로운 '돌파구'가 되었다고 말하는 「존재의 형식」은 2003년 황순원 문학상과 오영수 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재우와 그의 동료 희은은 베트남에서 한국어로 된 시나리오를 베트남어로 옮기는 번역 작업에 매달린다. 과거 베트남의 현지 영화감독 레지투이가 이들의 번역작업을 도와준다. 이들이 작업하는 것이 '번역'이라는 점도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모국어가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어의 소통'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번역 작업을 하다가 매끄러운 언어 선택이 되지 않을 때가 많아 답답함을 겪는 이들의 문제는 사실, 언어의 문제에 앞서 문화의 차이와 서로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재우에게 한때 운동권 동지였으나 지금은 변호사로의 삶을 살아가는 문태가 찾아온다. 학술회의 참석차 베트남을 방문한 문태는 천박한 자본주의적 속물의 표상처럼 행동한다. 뒤늦게 레지투이가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전사 출신인 '반 레'라는 필명의 시인과 동일 인물이었음이 밝혀질 무렵, 레지투이는 재우에게 말한다. "친구가 친구를 이해해주지 않으면 누구와 더불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나." '반 레'는 작가 방현석에게 실제로 많은 영향을 미친 베트남의 시인 겸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으로 실존인물이다.
이 소설집의 표제작인 「랍스터를 먹는 시간」 역시 베트남과 한국 양국의 역사와 인연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소설은 베트남 현지 조선소의 한국인 관리자와 베트남 노동자 사이에서 벌어진 폭행사건의 발생과 전개, 그리고 해결 과정을 따라간다. 폭행사건의 양쪽 당사자인 한국인 관리자 김부장과 베트남 노동자 보 반 러이는 모두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사람들이었다.
한국인 중 유일하게 베트남어에 능통한 건석은 폭행사건의 부당한 마무리에 반발, 사표를 던진 보 반 러이를 만나기 위해 그의 고향을 찾아갔다가 보 반 러이의 고향 마을이 과거 한국군에 의해 몰살당한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혁명전사 출신인 베트남인 팜 반 꾹은 건석에게 이라크 전쟁에 참여하는 한국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미국의 핑계를 대고 이라크에 들어간 한국군을, 베트남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이라크인들이 이해해주어야 하는 것이냐고 건석을 몰아붙이던 그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한국에 대한 경멸을 담아 다음과 같은 말을 내뱉는다.
"지금까지 당신들에게 베트남전쟁에 개입한 책임을 묻지 않은 게 당신들에게 책임이 없어서라고 생각하나. 오해하지 말게. 그건 아직 당신네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질 수 있는 나라의 축에 들지 못하기 때문일 뿐이네. …(중략)… 만약 당신이 이 나라에서 살려고 한다면 당신의 나라가 한 일과,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 좀더 정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 우리 베트남은 당신네 나라보다 훨씬 가난했지만 책임 있는 나라로서 행동했네."
당시 '박정희 군대'에 의해 저질러진 추악한 전쟁 범죄는 과거의 사건으로만 남겨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아픔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요즘도 세계 곳곳에서는 힘과 자본의 논리에 의해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그 현장에서는 '공존'보다는 '국익'이, 그 뒤에는 '반성'보다는 '핑계'가 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함께 실린 「겨우살이」와 「겨울 미포만」도 역시 패배 혹은 잘못에 대한 처절한 자기 반성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소설들이다.
반성과 사과는 우리가 일제를 비롯한 우리를 억압했던 외국 세력들, 우리를 핍박했던 군사독재 권력자들에게만 요구할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은 반드시 누군가의 손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현실을 납득한다면, 그리고 우리의 삶들이 이어져 결국 하나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라면, 반성과 성찰은 지금 바로, 여기에서 우리 모두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행위이다.
# by | 2004/10/12 19:00 | 文學 ::: 문학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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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방현석의 최근 작업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데다가, 다시 베트남전 관련 문학 작품을 살펴보아야할 기회가 생겨, lunamoth님의 글을 유심히 잘 읽었답니다. 베트남전과 이라크 파병을 생각하면, 과연 우리나라가 다른 이웃나라의 '반성하지 않음'을 비난할만한 자격이 있는지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