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국가보안법

먼저 나의 부끄러운, 아니 어쨌든 별로 자랑스럽지는 않은 과거 얘기부터 해보겠다.

군대를 가기 전 쯤, 후배들에게 학과 신문 제작을 넘기고 나서,
나는 좀 더 범위를 확대한 형태의, 그러니까
아마도 얼터너티브(혹은 B급) 학교 신문 쯤 되는 그러한 신문을 만들려고 했었다.

그 당시 나는 그 누구에게도 비밀로 한 채,
제호는 "알바트로스"(고민하기 싫었던게야....)이고,
창간준비호의 1면 탑기사는 "박모총장을 몰아내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
그런 신문을 만들고 있었다.

초기의 "인물과 사상"처럼 1인 무크지도 아니고,
초기의 "딴지일보"처럼 1인 인터넷신문도 아니고,
(그러고 보면, 초기 김어준이 혼자 만든 딴지일보는 원시적 형태의 블로그였나보다)
암튼 혼자 기사쓰고, 편집하고, 인쇄하고(맡기고), 배포하는 그런 신문을
만들고 싶었었다.

하지만,
여러가지 사정 탓에 그 신문은 창간준비호조차 완성을 못하고
내 486 컴퓨터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여러가지 사정이라 함은 내 게으름 탓도 있었고, 시간의 부족 탓도 있었음을 말한다.
또 한가지 보태어 말하자면, 나의 "두려움" 탓도 있었다.

나는 그 당시, 그 유치찬란한 "원맨쇼"를 하면서,
내 스스로 이걸 배포하면 아마도 "국가보안법"의 혐의를 받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을 무척이나 막연하게, 혹은 괜시리 느끼고 있었다.
어쨌든 나는 그때, 만일 그것을 완성했다고 하더라도,
그 누구도 모르게 혼자 만들어, 혼자 배포하고, 시치미를 뚝 떼고 있으려 했었다.

그리고 군대를 가게 되었고,
나는 그리 흔치 않은 확률의 수혜를 받아 '특전사'라는 부대로 배치를 받게 되었다.
(가끔 TV에서 연예인들이 정말 어설프게 흉내내는) 소위 공수훈련이라는 것을 받고,
처음 낙하산을 메고 아득히 높은 곳에 올랐을 때,
나는 내가 내 방에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온 '종이 뭉치'들에 대해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정말 만에 하나, 이 낙하산이 펴지지 않게 된다면,
그 이후, 누군가에 의해 나의 '종이 뭉치'들이
"국가보안법"과 관계된 것으로 다시 태어나지나 않을까,
매우 심각하게, 걱정했었더랬다. (믿거나 말거나)

***

국가보안법 폐지를 둘러싼 논쟁이 '일각에선' 뜨겁게 이루어지고 있다.
다수의 국민들은 '별 관심 없는 사안'으로 싸우고 있는
여야를 냉소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대체 왜 해야 하는가.
그것은 국가보안법이 그동안 피해를 입힌 사람들, 또 그들의 양심에 대한
죄 값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며,
국가보안법을 상징되는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한다'는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을 이제는 제발 그만 듣고 싶기 때문이며,
우리 국민들 상당수가 느끼고 있는, 하지만 근거는 전혀 없는 '위협'에 대해
국민들의 불안을 덜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국가보안법 폐지 논쟁은 역시나 본말이 전도된 채로 전개되고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역시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도 국가 안보에 대한 우려가 없도록 대체 입법"이나
"형법 보완 또는 강화"를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말이 안 통하는 파시스트이나 색깔론자들과의 논쟁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방향이긴 하겠으나, 이건 명백한 논리적 모순이다.

'국가보안법'은 국가에 대한 변란이나 그 음모를 막는 '법'이 아니라
"우리 국가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방해하는 '법'이었다.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의 논리는
"보안법이 폐지되어도 변란은 막을 수 있다"가 아니라,
"안보 위협에 대한 걱정을 버려둬야하기 때문에 보안법을 폐지해야 하는 것"이
되어야 맞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어떠한 사상이 세상을 결딴낼 것이다" 혹은
"어떠한 표현과 글이 세상을 뒤집게 될 것이다"라는
공포와 그것을 빌미로 한 폭력에 대한 종말을 고하는 선언이 되어야 한다.

만에 하나, 세상이 뒤집힌다면, 그것은 어떠한 사상, 표현, 글 때문이 아니라,
세상을 자기들 마음대로 주물럭거린 자들의 '자업자득'일 뿐이다.

대체, 왜, 어찌하여,
"글과 사상으로 세상을 뒤집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이 나라의 좌파들이 아니라, 우파 및 보수세력들이란 말인가.

아니, 사실은 그들도 그렇게 믿지는 않을 것이다.

누가 말한 농담인지, 어디서 본 것인지 명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국가보안법 폐지되었을 때, 정말 나라가 위험해지는지 아닌지를 걸고,
'집 내기'나 '10억 내기'를 걸자고 한다면,
아마도 국가보안법 사수를 주장하는 이들도
'나라가 결딴난다' 쪽에 걸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를 본 적이 있다.

내 생각엔
아마, 보안법 사수론자들은 "국가보안법 결국 폐지 못하게 될 걸?"이라는 쪽에
적지 않은 돈내기를 걸었음에 분명하다.
그들의 조악한 '우기기'를 보면, 아마 그 정도 수준일 게다.
2004 나의 블로그 톱10

by 갈림 | 2004/09/20 10:31 | 談話 ::: 기고/생각들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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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youngjune at 2004/09/20 14:50
넌 낙하산을 메고 그런 생각을 했구나... 난 비무장 지대에서 지뢰 탐지를 하며 비슷한 Item으로 비슷한 고민을 한적이... ㅋㅋㅋ
Commented by 갈림 at 2004/09/20 18:03
갑자기, 한재석은 낙하산 메면 어울릴 거 같고, 송승헌은 지뢰탐지하면 잘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혁은? 몰라, 암튼 다들 불쌍하고도 못된 넘들 ... ㅡㅡ;;
(근데, 네 아이템은 혹시 네 여성팬들에게 온 수많은 팬레터들 걱정?)
Commented by youngjune at 2004/09/21 14:40
응~!!! 너랑 같은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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