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9월 13일
[리뷰] 거미숲
<거미숲>은 사실 올해초에 이미 촬영이 완료되었었는데, 여러가지 사정으로 개봉이 미뤄졌고, 주연배우가 겹치는 <알포인트>의 개봉마저 기다렸다가 개봉하느라 9월초에서야 개봉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감우성 이외에도 <알포인트>에 나왔던 손병호(진창록 중사, 김철주 의사), 박원상(마원균 병장, 문 기사)이 또한 출연하는 관계로 두 영화는 마치 '형제 영화'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였다. 나는 지난 일요일, 그러니까 9월 12일 밤 빗속을 뚫고 <거미숲>을 보기 위해 오랜만에 뤼미에르 극장을 찾아갔다.
송일곤 감독의 <거미숲>은 한마디로 '기억'에 관한 영화다.
송일곤 감독은 폴란드 유학 시절 만들었던 단편 <간과 감자>에서부터 신화적 소재를 가져와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상당한 재능을 보였었다. 칸 영화제 단편부분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던 <소풍>과 장편 데뷔작 <꽃섬>을 거쳐 이번에 발표한 <거미숲>은 수많은 신화, 정신분석학적 소재와 테마들, 그리고 한국적 전설이 마치 거미줄처럼 뒤엉킨 영화이다.
1990년대가 '욕망'의 담론이 지배하던 시대였다면, 21세기의 첫 10년간은 '기억'의 담론이 지배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그런 주장을 편 적이 있었다.(필자의 논문 "기억의 서사, 서사의 기억" 中) 나의 주장이 영 터무니 없지는 않았었는지, '기억'이란 테마는 세기말 무렵부터 부쩍 많은 영화의 소재가 되곤 했었다. <메멘토>나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대표적인 사례이겠고, 우리 영화로는 <박하사탕>이나 <오버 더 레인보우> 등이 기억을 중요한 테마로 삼은 영화였다. 또, 머지않아 한국 영화의 신화가 될 <올드보이>, 일본에서 욘사마 열풍을 불러 일으킨 드라마 <겨울연가> 등도 역시 '기억' 혹은 '기억상실'이란 문제가 아주 중요한 테마로 등장한 사례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기억'의 문제가 '정신분석학적 분석'의 소재가 될 만한 영화는 아직 없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들은 슬로베니아 출신의 저명한 정치인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슬라보예 지젝에 의해 이미 한 권의 책 분량으로 철저하게 분석된 바가 있었지만, 우리의 영화나 드라마들에서 '기억'의 문제는 학술적으로 접근할 만큼 정교하게 짜여져 있지는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송일곤 감독의 <거미숲>은 '기억'의 문제를 정신분석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진지하고, 정교하게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송일곤 감독은 이 영화에서 정신분석학적 사례들뿐만 아니라, 신화적 소재까지도 차용하여 활용하고 있다. 이 영화를 두고, 송일곤 감독이 자신의 색깔을 잃고 상업성과 장르의 영역으로 투항했다는 식의 언급도 적지 않은데, <간과 감자>를 떠올린다면, 송일곤 감독은 IMF 무렵의 우울함이 지배적이었던 <소풍>이나 <꽃섬>을 벗어나, 오히려 초기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갔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사실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짜임새를 가지고 있다. 스토리의 핵심은 일면 단순하다. 아내 '은아'(서정)를 비행기 사고로 잃은 상처를 갖고 있는 방송사 PD 강민(감우성)은 '귀신이 나온다는 숲'에 대한 취재를 하던 도중 두 사람의 죽음을 목격한 일이다. 이때, 자신을 엿보는 또 다른 사람을 피해 도망치던 강민은 터널 속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쓰러진다. 14일간 의식 불명에 빠져 있던 그는 의식을 되찾자마자, '숲'으로 가야만한다고 중얼거린다.
(이하 스포일러 다량 함유)
이 영화는 이러한 이야기를 미장아빔'의 형식으로, 다르게 말하자면 '뫼비우스의 띠' 구조로 구성하고 있다. 강민의 기억에 의해 구성된 이야기는 진실의 끝을 쫓아 다시 한바퀴 돌아오면서, 순환의 첫 머리와 맞닿게 된다. 이야기는 겹을 이루고 있고, 각각의 겹은 다른 겹의 이야기와 겹쳐지며, 하나의 이야기는 또다른 이야기에 슬며시 스며든다.
먼저, 강민이 자신의 친구인 최형사(장현성)에게 진술한 내용.
강민이 취재 제보를 받고 찾아간 곳은 민수인이라는 여인이 홀로 운영하고 있는 '희망 사진관'이란 곳이었다. 그곳에서 강민은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고 터널을 지나 '숲'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는 자신의 상처를 감싸주는 따뜻한 애인 황수영(강경헌)과 방송국 국장 최종필(조성하)의 정사 장면을 목격한다. 강한 분노를 느끼던 그는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끼고 숲 속을 헤매던 중, 결국 차로 돌아와 그곳에서 잠이 든다. 다음날 아침 민수인(서정 1인2역)은 강민과 함께 사진관으로 돌아온다. 민수인은 그 '숲'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강민은 민수인과 함께 다시 숲을 찾아가지만, 민수인은 어디론가 갑자기 사라지고, 그곳 오두막에서 강민은 황수영과 최국장의 시체를 발견한다. 그 뒤 강민은 터널 안에서 차에 치게 되었다.

다음은 사진관 여인 민수인이 해 준 옛날 이야기.
그 숲에는 한 여자아이(김희정)가 살고 있었고, 어느날 그 아이가 다니던 학교에 한 남자 아이(김학준)가 전학을 오게 되었다. 그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우정을 나누게 되었는데, 어느날 여자아이의 집에서 둘은 여자아이의 엄마가 딴 남자와 정사를 벌이는 장면, 그리고 뒤이어 들이닥친 아버지에 의해 두 사람이 살인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도망치던 두 아이 가운데 남자아이는 돌에 머리를 부딪혀 쓰러지고, 여자아이는 죽임을 당하고 만다.


영화는 후반부로 향하면서 몇가지 반전을 준비해 놓고 있다. 그 반전은, 앞의 몇가지 스토리들이 오직 강민의 기억에서만 존재하는 일들이었다는 것이다.
중요하고도 분명한 것은 민수인이란 사람은 그 여자아이의 이름이었고, 그 여자아이는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폐렴으로 죽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진관의 주인은 강민의 아버지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는 사실. 불륜의 주인공은 여자아이의 어머니가 아니라 강민의 어머니였다는 사실. 이러한 사실들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사진관 주인 민수인이란 존재는 사실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이었음이 드러난다. 또, 황수영과 최국장을 살해한 것은 바로 다름아닌 강민 자신이었음도 밝혀진다.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 강민은 큰 충격에 휩싸이고, 자신의 살인 장면과 사고 장면을 마치 심연 속을 들여다보듯 스스로 다시 목격하게 된다. 영화는 강민이 충격을 받는 장면과 함께 사고후 병원에서 강민이 치료를 받던 장면을 다시 보여준다. 영화의 초반부 강민과 같은 병실을 쓰던 사람은 죽음을 눈앞에 둔 듯한 노인이었는데, 영화의 마지막에는 어린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강민의 기억이 한바퀴 돌아온 곳에서, 또다시 이야기의 순환은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사실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은 이러한 반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 속에 스며들어 있는 각종 상징들과 정신분석학적 코드들을 찾는 것이 훨씬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사실 이 영화는 감독 스스로 영화를 논리적으로 보지 말고, 비논리적으로 이해해달고 말했을만큼, 논리적으로 앞뒤가 딱딱 들어맞지는 않는다. 강민에게 제보한 사람의 정체, 그에게 사진을 전해주고 전화를 건 사람의 정체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그외에도 이해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이 영화는 강민이라는 인물의 무의식을 관객이 함께 체험해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무의식은 알 수 없기 때문에 '무의식'이다. 인간이 '신'의 절대적 권위 못지 않은 스스로의 '이성'을 신뢰하기 시작하면서 '근대'가 시작되었다면, 인간이 '이성'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탈근대'는 시작된다. '무의식'을 연구한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이성의 차원으로 이해하고 분석하려고 시도한 '근대인'이면서, '알 수 없는 무의식'의 존재 자체를 용납했다는 점에서 선구적인 '탈근대인'이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강민이 2주일동안 잃어버렸던 '의식', 즉 무의식을 짜맞추어가면서 영화를 이해해가게 되고, 또한 짜맞출 수 없음 깨달으면서 영화를 다시 한번 이해하게 된다.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이 영화는 수많은 정신분석학적 사례들과 코드들이 뒤섞여 있다. 부모의 정사 장면을 목격하는 '원초경 primal scene'과 관련해서는 프로이트의 '늑대소년 사례'를 떠올리게 된다. 자신을 억압하는 최국장을 살해하는 장면에서는 초자아, 혹은 아버지의 이름, 혹은 팔루스를 극복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셈이다. 또, 강민의 주변의 여성들은 하나같이 모성결핍 상태의 강민에게 '어머니'의 다른 형상으로 다가오는 존재들임을 확인할 수 있으며, 기억 속의 자기 자신을 마주치고 충격을 받는 강민의 모습에서는 '도플-갱어'의 전설을 떠올리게 된다.
아울러, 이 영화에 담긴 상징들도 만만치가 않다. 모든 악의 출발점이 되는 '아담의 사과'를 먹으며 정사를 벌이는 최국장의 모습, 남성성과 사회적 억압의 상징인 넥타이를 맨 채 살해당하는 최국장의 모습, 또 강민이 황수영에게 청혼하던 장면에 등장하는 인형의 모습과 소년 소녀의 마지막 이별 장면의 유사성, 소년 소녀 이야기와 사진관 여인과 강민 사이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목도리도 유의해서 볼 대목이다. 아울러, '동굴' 그리고 '터널'과 스키장 '리프트'로 상징화된 공간이 '무의식'과 '의식'을 이어놓는 곳임을 알게 된다면,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대화의 '상징성'도 무시할 수 없는 흥미를 제공해 줄 것이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수많은 수정 끝에 현재에 이르렀다고 한다. 본래는 의사와 형사 역할 등등을 몽땅 한명의 배우(손병호)에게 맡겨 1인 7역을 하게끔 하려 했다고도 하고, 죽은 아내를 거미숲에 가두어둔 악마가 나중에 형사로 변하여 나타나는 내용으로 가려고도 했다는데, 어찌되었건 감독은 처음부터 신화와 정신분석학적 이론을 바탕에 깔아둔 스릴러 장르를 만들려고 했던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요즘 한국 영화 추세를 고려할 때 15억도 안되는 예산으로, 이만한 스토리에 이만한 때깔, 이만한 음악 등등을 고루 갖춘 웰메이드 스릴러를 만들어낸 것은 분명한 성과다.
하지만 분명히, 이 영화도 아쉬운 부분은 적지 않다. 때로는 데이빗 린치, 때로는 타르코프스키, 때로는 키예슬롭스키가 뒤엉킨 '멋지지만 너무 익숙한' 장면들이 간혹 눈에 걸리기도 한다. 하긴, 한국 영화를 보면서 데이빗 린치를 떠올리게 된다는 것은 단점이라기보다는 찬사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사실 보다 심각한 것은 본래 2시간 30분 가량으로 편집되었던 영화를 40분 가량 들어내면서 생긴 몇가지 문제들이다. 다소 난해한 플롯을 끼워맞춰가는 재미가 생명인 스릴러 장르에서, 기왕 편집된 내용을 다시 들어내게 되면, 관객은 '난해함'이 아니라 '난처함'을 느끼게 되고 만다. 강민의 부인이었던 '은아'와 관련된 상징들과 황수영이 제공해줄 몇가지 단서들, 그리고 최형사와 민수인에 의해 제시되었음직한 또다른 진실들이 이 영화에서는 '비논리성'과 '무의식'의 가면 뒤로 (사실은 편집 가위의 밑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무의식'의 이름으로 스릴러의 '논리'와 '짜임새'는 상당한 희생을 당하고 말았다. 결국 이 영화는 좋은 정신분석학 교재는 될 수 있었지만, 좋은 스릴러 영화는 되지 못했다. 관객(혹은 흥행)을 위해 뒤늦게 편집을 통해 빠른 호흡의 영화로 변모시키려한 감독의 입장은 이해가 되지만, 그랬다면 영화는 처음부터 그렇게 가야만 했다. '찍고 나서 적당히 들어내기' 방식으로 이뤄지는 우리나라의 스릴러 영화는 앞으로 보다 철저한 시나리오 작업이 바탕이 되지 않는 한, 그러한 아쉬움을 계속 반복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평점 : ★★★☆

p.s. <본초강목>에 따르면, 7월 칠석날 '거미줄'을 뭉쳐 옷이나 모자에 숨겨두면 도망가는 '기억'을 잡아준다고 한다. 우리의 조상들은 '거미줄'을 '기억을 붙들어주는 동아줄'로 여겼던 것이다.

송일곤 감독은 폴란드 유학 시절 만들었던 단편 <간과 감자>에서부터 신화적 소재를 가져와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상당한 재능을 보였었다. 칸 영화제 단편부분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던 <소풍>과 장편 데뷔작 <꽃섬>을 거쳐 이번에 발표한 <거미숲>은 수많은 신화, 정신분석학적 소재와 테마들, 그리고 한국적 전설이 마치 거미줄처럼 뒤엉킨 영화이다.
1990년대가 '욕망'의 담론이 지배하던 시대였다면, 21세기의 첫 10년간은 '기억'의 담론이 지배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그런 주장을 편 적이 있었다.(필자의 논문 "기억의 서사, 서사의 기억" 中) 나의 주장이 영 터무니 없지는 않았었는지, '기억'이란 테마는 세기말 무렵부터 부쩍 많은 영화의 소재가 되곤 했었다. <메멘토>나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대표적인 사례이겠고, 우리 영화로는 <박하사탕>이나 <오버 더 레인보우> 등이 기억을 중요한 테마로 삼은 영화였다. 또, 머지않아 한국 영화의 신화가 될 <올드보이>, 일본에서 욘사마 열풍을 불러 일으킨 드라마 <겨울연가> 등도 역시 '기억' 혹은 '기억상실'이란 문제가 아주 중요한 테마로 등장한 사례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기억'의 문제가 '정신분석학적 분석'의 소재가 될 만한 영화는 아직 없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들은 슬로베니아 출신의 저명한 정치인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슬라보예 지젝에 의해 이미 한 권의 책 분량으로 철저하게 분석된 바가 있었지만, 우리의 영화나 드라마들에서 '기억'의 문제는 학술적으로 접근할 만큼 정교하게 짜여져 있지는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송일곤 감독의 <거미숲>은 '기억'의 문제를 정신분석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진지하고, 정교하게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송일곤 감독은 이 영화에서 정신분석학적 사례들뿐만 아니라, 신화적 소재까지도 차용하여 활용하고 있다. 이 영화를 두고, 송일곤 감독이 자신의 색깔을 잃고 상업성과 장르의 영역으로 투항했다는 식의 언급도 적지 않은데, <간과 감자>를 떠올린다면, 송일곤 감독은 IMF 무렵의 우울함이 지배적이었던 <소풍>이나 <꽃섬>을 벗어나, 오히려 초기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갔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사실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짜임새를 가지고 있다. 스토리의 핵심은 일면 단순하다. 아내 '은아'(서정)를 비행기 사고로 잃은 상처를 갖고 있는 방송사 PD 강민(감우성)은 '귀신이 나온다는 숲'에 대한 취재를 하던 도중 두 사람의 죽음을 목격한 일이다. 이때, 자신을 엿보는 또 다른 사람을 피해 도망치던 강민은 터널 속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쓰러진다. 14일간 의식 불명에 빠져 있던 그는 의식을 되찾자마자, '숲'으로 가야만한다고 중얼거린다.
(이하 스포일러 다량 함유)
이 영화는 이러한 이야기를 미장아빔'의 형식으로, 다르게 말하자면 '뫼비우스의 띠' 구조로 구성하고 있다. 강민의 기억에 의해 구성된 이야기는 진실의 끝을 쫓아 다시 한바퀴 돌아오면서, 순환의 첫 머리와 맞닿게 된다. 이야기는 겹을 이루고 있고, 각각의 겹은 다른 겹의 이야기와 겹쳐지며, 하나의 이야기는 또다른 이야기에 슬며시 스며든다.
먼저, 강민이 자신의 친구인 최형사(장현성)에게 진술한 내용.
강민이 취재 제보를 받고 찾아간 곳은 민수인이라는 여인이 홀로 운영하고 있는 '희망 사진관'이란 곳이었다. 그곳에서 강민은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고 터널을 지나 '숲'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는 자신의 상처를 감싸주는 따뜻한 애인 황수영(강경헌)과 방송국 국장 최종필(조성하)의 정사 장면을 목격한다. 강한 분노를 느끼던 그는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끼고 숲 속을 헤매던 중, 결국 차로 돌아와 그곳에서 잠이 든다. 다음날 아침 민수인(서정 1인2역)은 강민과 함께 사진관으로 돌아온다. 민수인은 그 '숲'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강민은 민수인과 함께 다시 숲을 찾아가지만, 민수인은 어디론가 갑자기 사라지고, 그곳 오두막에서 강민은 황수영과 최국장의 시체를 발견한다. 그 뒤 강민은 터널 안에서 차에 치게 되었다.

다음은 사진관 여인 민수인이 해 준 옛날 이야기.
그 숲에는 한 여자아이(김희정)가 살고 있었고, 어느날 그 아이가 다니던 학교에 한 남자 아이(김학준)가 전학을 오게 되었다. 그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우정을 나누게 되었는데, 어느날 여자아이의 집에서 둘은 여자아이의 엄마가 딴 남자와 정사를 벌이는 장면, 그리고 뒤이어 들이닥친 아버지에 의해 두 사람이 살인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도망치던 두 아이 가운데 남자아이는 돌에 머리를 부딪혀 쓰러지고, 여자아이는 죽임을 당하고 만다.


영화는 후반부로 향하면서 몇가지 반전을 준비해 놓고 있다. 그 반전은, 앞의 몇가지 스토리들이 오직 강민의 기억에서만 존재하는 일들이었다는 것이다.
중요하고도 분명한 것은 민수인이란 사람은 그 여자아이의 이름이었고, 그 여자아이는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폐렴으로 죽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진관의 주인은 강민의 아버지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는 사실. 불륜의 주인공은 여자아이의 어머니가 아니라 강민의 어머니였다는 사실. 이러한 사실들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사진관 주인 민수인이란 존재는 사실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이었음이 드러난다. 또, 황수영과 최국장을 살해한 것은 바로 다름아닌 강민 자신이었음도 밝혀진다.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 강민은 큰 충격에 휩싸이고, 자신의 살인 장면과 사고 장면을 마치 심연 속을 들여다보듯 스스로 다시 목격하게 된다. 영화는 강민이 충격을 받는 장면과 함께 사고후 병원에서 강민이 치료를 받던 장면을 다시 보여준다. 영화의 초반부 강민과 같은 병실을 쓰던 사람은 죽음을 눈앞에 둔 듯한 노인이었는데, 영화의 마지막에는 어린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강민의 기억이 한바퀴 돌아온 곳에서, 또다시 이야기의 순환은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사실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은 이러한 반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 속에 스며들어 있는 각종 상징들과 정신분석학적 코드들을 찾는 것이 훨씬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사실 이 영화는 감독 스스로 영화를 논리적으로 보지 말고, 비논리적으로 이해해달고 말했을만큼, 논리적으로 앞뒤가 딱딱 들어맞지는 않는다. 강민에게 제보한 사람의 정체, 그에게 사진을 전해주고 전화를 건 사람의 정체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그외에도 이해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이 영화는 강민이라는 인물의 무의식을 관객이 함께 체험해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무의식은 알 수 없기 때문에 '무의식'이다. 인간이 '신'의 절대적 권위 못지 않은 스스로의 '이성'을 신뢰하기 시작하면서 '근대'가 시작되었다면, 인간이 '이성'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탈근대'는 시작된다. '무의식'을 연구한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이성의 차원으로 이해하고 분석하려고 시도한 '근대인'이면서, '알 수 없는 무의식'의 존재 자체를 용납했다는 점에서 선구적인 '탈근대인'이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강민이 2주일동안 잃어버렸던 '의식', 즉 무의식을 짜맞추어가면서 영화를 이해해가게 되고, 또한 짜맞출 수 없음 깨달으면서 영화를 다시 한번 이해하게 된다.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이 영화는 수많은 정신분석학적 사례들과 코드들이 뒤섞여 있다. 부모의 정사 장면을 목격하는 '원초경 primal scene'과 관련해서는 프로이트의 '늑대소년 사례'를 떠올리게 된다. 자신을 억압하는 최국장을 살해하는 장면에서는 초자아, 혹은 아버지의 이름, 혹은 팔루스를 극복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셈이다. 또, 강민의 주변의 여성들은 하나같이 모성결핍 상태의 강민에게 '어머니'의 다른 형상으로 다가오는 존재들임을 확인할 수 있으며, 기억 속의 자기 자신을 마주치고 충격을 받는 강민의 모습에서는 '도플-갱어'의 전설을 떠올리게 된다.
아울러, 이 영화에 담긴 상징들도 만만치가 않다. 모든 악의 출발점이 되는 '아담의 사과'를 먹으며 정사를 벌이는 최국장의 모습, 남성성과 사회적 억압의 상징인 넥타이를 맨 채 살해당하는 최국장의 모습, 또 강민이 황수영에게 청혼하던 장면에 등장하는 인형의 모습과 소년 소녀의 마지막 이별 장면의 유사성, 소년 소녀 이야기와 사진관 여인과 강민 사이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목도리도 유의해서 볼 대목이다. 아울러, '동굴' 그리고 '터널'과 스키장 '리프트'로 상징화된 공간이 '무의식'과 '의식'을 이어놓는 곳임을 알게 된다면,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대화의 '상징성'도 무시할 수 없는 흥미를 제공해 줄 것이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수많은 수정 끝에 현재에 이르렀다고 한다. 본래는 의사와 형사 역할 등등을 몽땅 한명의 배우(손병호)에게 맡겨 1인 7역을 하게끔 하려 했다고도 하고, 죽은 아내를 거미숲에 가두어둔 악마가 나중에 형사로 변하여 나타나는 내용으로 가려고도 했다는데, 어찌되었건 감독은 처음부터 신화와 정신분석학적 이론을 바탕에 깔아둔 스릴러 장르를 만들려고 했던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요즘 한국 영화 추세를 고려할 때 15억도 안되는 예산으로, 이만한 스토리에 이만한 때깔, 이만한 음악 등등을 고루 갖춘 웰메이드 스릴러를 만들어낸 것은 분명한 성과다.
하지만 분명히, 이 영화도 아쉬운 부분은 적지 않다. 때로는 데이빗 린치, 때로는 타르코프스키, 때로는 키예슬롭스키가 뒤엉킨 '멋지지만 너무 익숙한' 장면들이 간혹 눈에 걸리기도 한다. 하긴, 한국 영화를 보면서 데이빗 린치를 떠올리게 된다는 것은 단점이라기보다는 찬사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사실 보다 심각한 것은 본래 2시간 30분 가량으로 편집되었던 영화를 40분 가량 들어내면서 생긴 몇가지 문제들이다. 다소 난해한 플롯을 끼워맞춰가는 재미가 생명인 스릴러 장르에서, 기왕 편집된 내용을 다시 들어내게 되면, 관객은 '난해함'이 아니라 '난처함'을 느끼게 되고 만다. 강민의 부인이었던 '은아'와 관련된 상징들과 황수영이 제공해줄 몇가지 단서들, 그리고 최형사와 민수인에 의해 제시되었음직한 또다른 진실들이 이 영화에서는 '비논리성'과 '무의식'의 가면 뒤로 (사실은 편집 가위의 밑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무의식'의 이름으로 스릴러의 '논리'와 '짜임새'는 상당한 희생을 당하고 말았다. 결국 이 영화는 좋은 정신분석학 교재는 될 수 있었지만, 좋은 스릴러 영화는 되지 못했다. 관객(혹은 흥행)을 위해 뒤늦게 편집을 통해 빠른 호흡의 영화로 변모시키려한 감독의 입장은 이해가 되지만, 그랬다면 영화는 처음부터 그렇게 가야만 했다. '찍고 나서 적당히 들어내기' 방식으로 이뤄지는 우리나라의 스릴러 영화는 앞으로 보다 철저한 시나리오 작업이 바탕이 되지 않는 한, 그러한 아쉬움을 계속 반복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평점 : ★★★☆

p.s. <본초강목>에 따르면, 7월 칠석날 '거미줄'을 뭉쳐 옷이나 모자에 숨겨두면 도망가는 '기억'을 잡아준다고 한다. 우리의 조상들은 '거미줄'을 '기억을 붙들어주는 동아줄'로 여겼던 것이다.
# by | 2004/09/13 22:53 | 談話 ::: 기고/생각들 | 트랙백(1)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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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거미숲에 대한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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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곤 감독의 이미지 구성 능력은 정말 탁월한데 말이지, 음 아깝다.
방문해주신 블로거님들, 반갑습니다. ^^
나름대로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아쉬운점이 더 많이 보여서 안타까웠네요.
저역시.. 백프로 이해하진 못한 영화였습니다.
글을 읽고 나니 이해가 조금씩 되네요. 감사합니다.. ^^
네 글 보니까 내가 영화에서 못 본 걸 너는 다 보고 적어놓았구나. 대단한 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