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8월 20일
2004 남도여행 둘째날 (08.15)
한국:멕시코 축구 경기를 밤새 보고난 다음날,
둘째날의 첫 행선지는 보성차밭이다.
보성읍내에서 율포해수욕장으로 향한 길을 따라 가다보면
우측으로 여러 다원들이 줄지어 있다.
우리가 간 곳은 TV 촬영지로 각광받는 보성다원.


녹차밭의 풍경
녹차는 녹차나뭇잎을 쪄서 말린 것을 사용한다.
인도를 점령한 서양인들은 녹찻잎을 배에 싣고 유럽으로 되돌아갔는데,
돌아가던 중에 녹찻잎이 상해버렸다고 한다.
말하자면 자연발효된 것인데, 이렇게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홍차다.
우롱차[烏龍茶]는 녹차와 홍차의 중간적 성격을 가진 반(半)발효차.
보성의 녹차나무들은 사실, 일본 화산지대에서 가져온 종자들로,
녹차 중에서 상급품으로 꼽히는 품종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
다만, 보성군의 녹차밭은 일종의 관광상품화되어,
지방자치단체의 관광 마케팅 최고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녹차밭 속의 아이들

보성다원을 가기전에 보성실내체육관 옆에 있는 녹돈집에서 녹돈 삼겹살과 항정살(돼지 목덜미 살)을 먹었다. 육질이 돼지고기답지 않게 아주 부드럽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마리당 200g 정도밖에 안 나온다는 가브리살을 한번 먹어봐야지.... 녹차수제비는 비추.
보성차밭 다음으로 향한 곳은 전남 화순 운주사.

운주사는 송광사의 말사인데, 여타의 절과는 아주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일단 크고 작은, 그리고 모양도 제 각각인 석탑이 매우 많다는 것이 특징.


마애불상쪽에서 내려다본 운주사 전경
운주사는 워낙 석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서,
석탑들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면,
마치 야외법당과도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운주사는 몇가지 미스테리가 제기되고 있는 절이기도 하다.
원래는 '천불천탑(千佛千塔)'의 절이라고 알려질 만큼,
불상과 탑의 개수는 훨씬 더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수많은 전란에 시달린데다가,
인근 농가에서 돌탑을 떼어다가 집 짓는 데 사용하면서
형체를 제대로 갖춘 탑은 현재 18개 정도만 남아 있다고 한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도대체 왜 그렇게 많은 탑과 불상이 있었으며,
또 그 많던 탑과 불상은 어디로, 어떻게 사라졌을까.

운주사의 커플(?) 와불(臥佛).
또하나의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것은 이 와불인데, 이 거대한 불상이
왜 운주사 서쪽 산기슭에 누워있는 채로 방치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이곳에서 하늘을 향해 누워있는 채로 놔둘려고 했었는지,
아니면 무모하게도 이 석불을 나중에 세워서 옮기려고 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이 와불 주변에는 칠성석(七星石)이 있는데,
자연석을 다듬은 동그란 원형의 돌덩어리들이 북두칠성의 모양으로
산기슭에 배치되어 있다. 돌의 크기나 간격, 모양 면에서 북두칠성의 모양을
본딴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데, 일각에서는 운주사가 불교사원이라기 보다는
칠성신앙과 관련된 도교사원이 아니었을까하는 추측도 제기된다고 한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전남 담양의 소쇄원.
광주 무등산자락을 넘어서 다다른 시각은 소쇄원 관람 시간이 거의 끝나가는
저녁 6시 무렵이었다. 현재 개인이 관리하는 듯한 이곳은 조광조의 제자 양산보가 건립한 제월당(霽月堂)이란 집과 주변의 풍경이 어우러진 일종의 정원이다.

소쇄원의 풍경 
문(門)
소쇄원을 둘러본 후, 소쇄원의 서편으로 광주호를 지나친 곳에 위치한
'전통식당'이라는 한정식집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1인당 2만원, 2만5천원. 두 종류.
남도음식 본고장을 찾아간 걸 감안하면 다소 비쌌지만, 후회는 없을 만한 맛.

1인당 2만원짜리 상이다. 상다리 휘어지기 직전의 이 상을 상 통째로 차려가지고 방 안으로 들여온다. 장과 각종 젓갈, 나물이 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들깨탕, 죽순회와 떡갈비, 홍어삼합도 조금씩 맛볼 수 있다. 무식한 관계로, 정체도 잘 모르고 각종 장과 젓갈들을 찍어먹고 비벼먹었다.
둘째날의 첫 행선지는 보성차밭이다.
보성읍내에서 율포해수욕장으로 향한 길을 따라 가다보면
우측으로 여러 다원들이 줄지어 있다.
우리가 간 곳은 TV 촬영지로 각광받는 보성다원.


녹차는 녹차나뭇잎을 쪄서 말린 것을 사용한다.
인도를 점령한 서양인들은 녹찻잎을 배에 싣고 유럽으로 되돌아갔는데,
돌아가던 중에 녹찻잎이 상해버렸다고 한다.
말하자면 자연발효된 것인데, 이렇게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홍차다.
우롱차[烏龍茶]는 녹차와 홍차의 중간적 성격을 가진 반(半)발효차.
보성의 녹차나무들은 사실, 일본 화산지대에서 가져온 종자들로,
녹차 중에서 상급품으로 꼽히는 품종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
다만, 보성군의 녹차밭은 일종의 관광상품화되어,
지방자치단체의 관광 마케팅 최고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보성차밭 다음으로 향한 곳은 전남 화순 운주사.

운주사는 송광사의 말사인데, 여타의 절과는 아주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일단 크고 작은, 그리고 모양도 제 각각인 석탑이 매우 많다는 것이 특징.


운주사는 워낙 석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서,
석탑들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면,
마치 야외법당과도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운주사는 몇가지 미스테리가 제기되고 있는 절이기도 하다.
원래는 '천불천탑(千佛千塔)'의 절이라고 알려질 만큼,
불상과 탑의 개수는 훨씬 더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수많은 전란에 시달린데다가,
인근 농가에서 돌탑을 떼어다가 집 짓는 데 사용하면서
형체를 제대로 갖춘 탑은 현재 18개 정도만 남아 있다고 한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도대체 왜 그렇게 많은 탑과 불상이 있었으며,
또 그 많던 탑과 불상은 어디로, 어떻게 사라졌을까.

또하나의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것은 이 와불인데, 이 거대한 불상이
왜 운주사 서쪽 산기슭에 누워있는 채로 방치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이곳에서 하늘을 향해 누워있는 채로 놔둘려고 했었는지,
아니면 무모하게도 이 석불을 나중에 세워서 옮기려고 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이 와불 주변에는 칠성석(七星石)이 있는데,
자연석을 다듬은 동그란 원형의 돌덩어리들이 북두칠성의 모양으로
산기슭에 배치되어 있다. 돌의 크기나 간격, 모양 면에서 북두칠성의 모양을
본딴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데, 일각에서는 운주사가 불교사원이라기 보다는
칠성신앙과 관련된 도교사원이 아니었을까하는 추측도 제기된다고 한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전남 담양의 소쇄원.
광주 무등산자락을 넘어서 다다른 시각은 소쇄원 관람 시간이 거의 끝나가는
저녁 6시 무렵이었다. 현재 개인이 관리하는 듯한 이곳은 조광조의 제자 양산보가 건립한 제월당(霽月堂)이란 집과 주변의 풍경이 어우러진 일종의 정원이다.


소쇄원을 둘러본 후, 소쇄원의 서편으로 광주호를 지나친 곳에 위치한
'전통식당'이라는 한정식집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1인당 2만원, 2만5천원. 두 종류.
남도음식 본고장을 찾아간 걸 감안하면 다소 비쌌지만, 후회는 없을 만한 맛.

# by | 2004/08/20 14:03 | 捕捉 ::: 순간/이미지들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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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송여사, 여행 싫어하는 줄 알았더니 남편하고는 잘 다니네... (아무리 좋은 친구라도 역시 가족보단 못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