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8월 18일
또 한 번 떠나보내는 前 대통령
2009년 8월 18일. 김대중(金大中) 제15대 대통령 서거.
1971년 4월 제7대 대통령 선거. 더도 말고 딱 4년만 더 맡겨달라고 호소한 박정희 후보는 이듬해 유신을 선포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아예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렸고 사실상의 종신 집권체제를 갖춘 후 8년을 넘게 더 집권하다가 심복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이 선거 이후 이 땅에서 다시 대통령 직선제를 만나게 되기까지 16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야 했다.
대선에서 아깝게 패한 직후, 1971년 5월에 벌어진 국회의원 선거에 전국을 돌며 '개헌저지선'만이라도 확보하게 해달라고 유세를 하던 DJ는 선거를 이틀 앞두고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한다. 사진은 부상을 입은 몸으로 선거일 전날 유세를 하고 있는 모습.
71년 대선 당시 DJ가 우려를 담아 예언했던대로 1972년 유신이 선포되고, 사실상 일본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DJ는 1973년 8월 8일 갑작스레 실종된다. 당시 보도를 보면 현장에 북한담배가 떨어져 있었다는 등의 얘기가 나오지만, 결국 일본 수사 당국은 주일 한국대사관 1등 서기관이었던 김동운 서기관의 범행으로 결론짓는다. DJ는 납치된지 130여시간 만인 8월 13일 동교동 자택 앞에서 발견된다. 일본은 아직도 DJ라고 하면, 자신들의 나라 수도 한복판에서 벌어진 정치 테러 사건의 피해자임을 먼저 떠올린다고 한다. 얼마전인 2009년 8월 13일, DJ의 생환 36주년 보도가 나온 것은 바로 이 사건에 관련된 것이다.
1980년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군부 세력이 다시 권력을 갖게 되고, 5월 광주 항쟁이 피로 물든 이후, DJ는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내란 음모, 시위 선동 등의 혐위로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전세계적인 구명 운동 끝에 전두환 정권도 DJ를 사형시키지는 못하고, 결국 1982년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뒤 미국 망명길에 오른다. 1985년 귀국하지만 가택연금과 정치활동 금지는 이어져서, 한동안 언론에는 '김대중'이라는 이름 대신 '한 재야 지도자'라는 지칭으로 표현되곤 했다.
정계은퇴를 번복하고 1997년 12월 네 번째 대선 도전에 성공한 뒤, 1998년 2월 제1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2000년 6월 평양 순안 공항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만나다. 당시 생중계를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던 장면.
그리고 바로 올해. 2009년 5월 29일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권양숙 여사와 맞잡은 손.
그 장면을 매섭게 지켜보는 1인.
안녕히 가세요, DJ.








안녕히 가세요, DJ.
# by | 2009/08/18 15:38 | 溫故 ::: 기억/기록 | 트랙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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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故 김대중 전 대통령 (1924 ~ 2009)
사진은 생전에 웃으시던 모습으로 골랐습니다. …거기에서는 꼭 평생 행복하게 사시도록. 전 솔직히 몇 년 전까지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뿐만 아니라 정치 자체에 관심이 별로 없었죠. 단순히 기억 나는 것이라고는 어렸을 때 선거 CF에서 선보인 'DJ와 함께 춤을'과 임기 말에 측근들의 스캔들로 마무리가 퇴색되었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다가 김대중 대통령을 다시 보게 된 것은 중3 때부터 였어요. 한창 도서관에서......more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