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민의 블로그입니다
by 갈림 이글루스 피플





작은대화(방명록)

 당신들의 흔적
책갈피

 야간비행
 퍼슨웹
 맞춤법

최근 등록된 트랙백
V.
by [ 젊은유월●com™ ]
총선.
by 鎭眞의 정치적 글쓰기
할리우드 작가파업 그 ..
by 잠보니스틱스
당신은 나의 운명
by Love Letter
나의 마지막 라디오, ..
by A Piece of Cake (ver..

rss

skin by jiinny
[생각] 미국 작가조합의 파업과 종결을 보며, 우리의 대중문화산업을 떠올린다
약 100일 동안 계속 되어 온 미국 작가조합(WGA)의 파업이 현지시각으로 2월 13일, 완전 종결되었다. 12일 실시된 작가조합의 투표에서 동부, 서부지역 모두 90% 이상의 찬성으로 파업 종결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이로써 25일(한국시각)로 예정된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한다.

먼 나라의 이야기인데다가, 국내에 알려지는 정보도 많지 않긴 하지만, 이번 파업과 관련된 사항 몇가지를 대략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TV 프로그램들과 영화 작가들에 의한 이번 파업의 핵심 쟁점은 DVD를 비롯한 2차적 저작권에 대한 지분 인정 문제였다. 20년전 파업 이후, 작가들에게는 DVD 장당 4센트 정도의 저작료가 배분되어 왔다고 한다. 이번 파업 타결안에 따르면 작가들의 2차 저작권 수익이 두 배 정도 늘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대형 제작사들은 인터넷을 비롯한 뉴미디어를 통한 2차 수익이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작가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여, 이번 파업은 100일간 지속되게 된 것이다.

어찌되었건, 차갑게 말해서 이번 파업의 핵심 쟁점은 한마디로 '밥그릇' 싸움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파업의 파급력이 컸던 것은 작가들의 파업으로 영화와 TV 프로그램 제작이 전면 중단되는 사태를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것은 미국에서 인기 있는 심야토크쇼 프로그램들이었다. 사전 제작 분량이 거의 없는 토크쇼 프로그램들은 파업 직후 방송에 차질을 빚기 시작했는데, 이 상황에서 데이비드 레터맨이 파업에 지지하는 뜻으로 턱수염을 기르는 등, 작가들의 파업은 긍정적 여론을 업고 힘을 받게 되었다. 인기 TV 드라마 시리즈들의 촬영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고, 영화 촬영도 무기한 연기되면서 천문학적 출연료를 받는 배우들 역시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되었지만, 숀 펜, 우디 앨런, 글렌 크로스, 웬트워스 밀러(일명 석호필) 등의 지지선언(http://speechlesswithoutwriters.com/)이 줄을 이으면서 작가 파업의 여파는 날로 커져만 갔다.

레드 카펫을 화려하게 해주어야 할 스타 배우들의 불참이 확실시 되면서, 글든글로브상 시상식은 급기야 수상자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으로 대체되기에 이르렀다. 가수를 겹업하는 배우들의 불참 선언과 여론의 눈치를 본 가수들의 입장 때문에, 그래미상조차 개최가 불투명했다가, 작가조합의 '양해'로 가까스로 개최되는 일도 벌어졌다.

우리의 경우라면 어떠했을까. 김수현, 임성한 등 극소수의 TV 드라마 작가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영화, TV 작가들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일만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드라마 작가들은 좀 사정이 낫겠지만, 토크쇼나 버라이어티, 뉴스, 시사 교양 프로그램들의 작가는 노동 강도에 비해 턱없이 낮은 대가를 받고 일하고 있다. 파업은 고사하고 노조를 꾸밀 엄두도 내질 못하는 비정규직에 불과하며, PD는 물론이고 출연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경우 그들을 대체할 예비노동자들, 그것도 고학력의 우수한 자원들이 각종 방송아카데미를 통해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미국의 파업 사례는 언감생심 남의 나라 얘기일 뿐이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들쪽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작가들은 엄청난 노하우와 능력을 갖고 있어서, 해를 넘겨가며 파업을 해도 잘리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요구 조건을 쟁취할 수 있었던 것일까. 물론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작가조합의 파업이 힘을 가질 수 있었던 첫번째 요인은 그들 조합의 단단한 결속력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노동자들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조합'이란 강력한 조직의 힘이다. (조합주의의 심각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노동절'을 탄생시키고 대공황 속에서 '산별노조'를 쟁취한 미국 노동자들의 조합이 갖는 저력은 이렇듯 강력한 것이었다. 그들의 '힘'은 1940년대 처음으로 영화 크레딧에 작가의 이름을 넣게끔 한 투쟁으로부터 오랜 시간 동안 단련되고 강화되어온 것이었다.

작가조합 파업에 힘을 안겨준 두번째 요인은 연대의 힘이었다. 토크쇼 진행자, 연기자들이 잇달아 "작가들이 없었다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지지 선언으로 힘을 실어주고, 심지어 감독, 가수, 일부 제작자들까지 그들에게 힘을 보태준 것은 바로 '연대'의 힘이다. 물론 그들의 지지와 연대는 '작가조합'에 뒤이어 2차 저작권 협상에 나서게 될 '배우조합', '감독조합' 입장에서는 작가조합의 파업이 그들의 '이익'과 협상 성패를 예측하게 해주는 '전초전'으로 간주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다분히 전략적인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일정한 수익을 나눠 먹어야할 동일 산업 종사자들 가운데에 형성된 '연대'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부럽고도 놀라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세번째 요인을 꼽아보자면 바로 여론의 힘이었다. 즐겨보던 TV 드라마가 '밥그릇 싸움' 때문에 방송되지 않게 된다면, 우리의 경우 '시청자의 권리'를 운운하는 온갖 비난 여론이 쇄도하면서 파업의 힘은 크게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작가조합의 이번 파업은 미국의 일반 시민들의 대다수가 지지하고 찬성하는 파업이었다고 한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우리와는 사뭇 다른 언론의 '파업 보도 행태', 그리고 작가조합의 차분하고 충분한 파업 준비 과정과 여론 조성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들의 파업으로 인한 엉뚱한 피해도 적지 않았다. MBC TV의 W에서 방송된 내용을 참조하면, 드라마나 영화에 소품을 대는 업체들, 촬영 현장에 필수적으로 배치되는 구급 요원 등, '촬영'이 있어야만 생존이 가능한 수많은 업체와 개인들이 이번 파업으로 인해 엄청난 손실과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정규직이 아니었던 촬영 스태프들의 피해 역시 엄청난 것이었다. 문화 산업 구조상 가장 낮은 위치에 자리하는 이들의 피해와 고통은 이번 파업으로 인한 커다란 비극이었다. 하지만 제이 레노나 코난 오브라이언 등 몇몇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들이 자비를 들여 스태프의 임금을 지급하였고, 몇몇 배우들도 파업 기간동안 고통 받는 스태프들의 가족을 위해 기부를 하는 등, 배려와 연대의 힘은 미약하나마 낮은 자리 그곳 역시 어루만져줄 수 있었다.

우리의 방송, 영화 현실을 떠올리면 미국에서 일어난 작가조합의 파업은 시사하는 바도 크고, 부러운 점도 많다. 노동자의 파업이라는 것이 조합원들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의 손해와 불편이 감수됨으로써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당연한 진실조차도 부정당하고, 모든 파업은 당연히 불법 파업이며 당연히 비난의 대상이 되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말이다.

좀 다른 분야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상상을 한번 해본다. 한국의 가수들이 모바일 및 인터넷 음원 시장이 앨범 시장을 대체할만큼 커졌으나, 대부분의 수익은 대기업 통신 업체가 가로채가는 현실을 비난하며 파업을 하는 그런 상상을. 가수들의 파업에 작곡자, 작사가들이 파업을 지지하며, 타분야 연예인들이 피켓 시위에 동참하고, 일반 대중들이 파업에 힘을 실어주는 서명 운동이 이어지는 상상을. 역시 그저 부질 없는 상상일 뿐일까.
by 갈림 | 2008/02/14 20:40 | 談話 ::: 기고/생각들 | 트랙백(1)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ewriter.egloos.com/tb/1712539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잠보니스틱스 at 2008/02/23 01:58

제목 : 할리우드 작가파업 그 이후...
Plot Would Thicken, if the Writers Remembered It (The New York Times, 2008/02/13) 로스앤젤레스 - CBS 인기드라마 < NCIS >에 관련된 대본작가 10명이 지난 수요일에 100일간의 파업을 마치고 현장으로 복귀했을 때, 본 시리즈의 작가 겸 프로듀서인 셰인 브래넌(Shane Brennan)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자 다들 말문이 막혀 먼 산만 바라보았다. "우리가 3개월......more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