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이랜드 파업과 아프가니스탄 선교봉사단

이랜드-홈에버 농성노동자의 강제 연행,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선교봉사단의 납치. 오늘 일어난 이 두가지 사건은 매우 불행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우선 연행된 노동자들과 납치된 사람들의 조속한 석방을 진심으로 바란다.

이 두가지의 사건은 노무현 정권에서 일어난 가장 대표적인 '실정'의 결과로 비롯된 일이다. 이랜드 파업의 근본적 원인이 된 비정규직 법안은 애초부터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이랜드 노동자들의 농성에 대해 '사측이나 노측 모두가 문제'라는 이상수 노동부 장관의 말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궤변이다. 이번 사태의 책임은 근본적으로 '사주 입장에서 비정규직을 짜르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비정규직 법안을 만들고 통과시킨 정부,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범여권, 그리고 이 법안 마저 더욱 악화시키려고 했던 한나라당에게 있다.

현 정부 들어, 그 어느 때보다 광범위하고 많은 파병이 이루어졌던 것은 아프가니스탄 납치 사건의 근본 원인이다. 수차례 파병과 연장이 거듭되자, 얼마전 레바논 파병은 별 관심조차 못 받은 채 이루어진 바도 있다. 정권 빼앗기는 것만 두려워 한 지붕으로 모이고자 하는 소위 '범여권'이 자신들을 '평화세력'이란 이름을 내세우고 있는데, 이들은 아마도 파병 또한 '평화'를 위한 거라고 주장했었던 듯하다. 이들의 논리로 나아가자면 '자유와 평화를 위해 전쟁하자'고 주장하는 데에 이르기까지는 그리 멀어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이 두가지 '실정'에 관해서 만큼은 "사태가 이렇게 될 때까지 노무현은 뭘 했나"라는 댓글 놀이를 당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두가지 사건의 또 한가지 공통점은 이 문제들이 우리 사회의 엇나간 (일부 혹은 다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 얽혀 있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선교봉사단 납치사건의 근본적 책임은 무분별한 파병과 비이성적인 납치테러단체에 있겠지만, 교회 봉사단의 무모함도 책임이 없지는 않다. 사건의 구체적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해 매우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분명한건 선의의 봉사나 진심어린 선교가 늘 '선'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방과후에 선생님이 애써 나머지 공부를 시켜준다고 늘 학생이 고마워하지는 않기 마련이고, 진심으로 사랑 고백한다고 받는 사람이 늘 고마워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물론 이건 지나친 비유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진리를 못 깨달은 사람이 아니라, 진리를 강요하는 사람이란 것만큼은 기억하자.

이랜드 사태의 한 켠에도 기독교의 엇나간 논리는 큼지막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랜드 계열 옷가게들이 '주일은 쉽니다'라며 일요일날 휴무하는 곳이라는 점은 다들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이번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 나름 좋은 이미지도 갖고 있던 기업이기도 했을 것이다. 지오다노를 비롯한 중국계 자본을 제외하면, 중저가 브랜드 의류 시장은 이랜드 계열사들이 워낙 폭넓게 자리잡은 상황이어서, 비싼 고급 브랜드만 고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랜드 계열 브랜드들이 친숙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 경우에도 예전에 박건하가 뛰었던 실업축구팀 '이랜드'조차 친근하게 여겨질 정도로 적어도 '친숙한 기업'이었던 것만큼은 분명했다. 뉴코아 아울렛이나 킴스클럽은 왠지 오래 묵은 물건을 파는 듯한 느낌에 잘 이용하지 않았었는데, 까르푸를 인수하고 리모델링한 '홈에버'는 개장 초기 저렴하고 실속 있는 제품이 많아 자주 가기도 했다. (유통기한 어긴 수산물 판매했다는 기사를 본 이후에는 홈에버 이용을 중단했고, 요즘은 생산업자나 소규모 자영업자를 갉아먹으며 내수시장 구조를 파괴시킨 대형할인점 이용을 가급적 자제하려는 노력도 하고는 있지만……, 쩝.)

어쨌든 이랜드측이 이번 사태 과정에서 직원들에게 보냈다는 이메일 내용을 한번 보자.

오늘 노사간 교섭이 있습니다.
14시 18시 21시 세번 전직원이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기도 내용은 아래 5가지 입니다.
1. 불법파업이 잘못된것임을 깨닫고 노동 조합원들이 하나님앞에 회개하고 현장으로 복귀하여 다시는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2. 이번일로 인하여 고객들이 경쟁점으로 이탈하지 않도록
3. 점포를 점거하는 노조 간부들이 체포되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4. 기독교계가 이랜드와 회장님의 대한 잘못된 언론 소식에 휘둘리지 않도록
5. 자신의 달란트(임금)의 불만을 갖지 않은 성실한 종의 소임을 다 하도록


용역들 불러다가 캐셔 아주머니들 짓밟은 이들이 보낸 메일이 저 모양이었고, 그리고 오늘은 경찰이 '공공의 권력'을 이용하여 농성자들을 간단히 제압하고 끌어가 버렸다. (아멘!)

이번 농성에 참여한 이랜드 노동자들 중 상당수도 기독교 신자들이어서 농성 중에도 목사님 모셔다가 주일 예배를 드리기까지 했다는데, 사측과 노측의 하나님은 전혀 다른 분이 아닐까 싶다. 이랜드는 근무 외 시간을 활용하여, '하나님 중심, 믿음 중심, 말씀 중심'으로 시작되는 '이랜드 스피릿'이라는 교육을 시키고 시험도 본다고 하는데(재무관리나 경영 관련 과목 교육도 있다고 한다), 박성수 회장이 130억을 십일조로 내놓고 "하나님 성경에는 노조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해보이기까지 한다. (관련기사) 육사 출신에다 보수적 성격이었던 김경욱 현 이랜드 노조위원장이 원래는 사측의 관리자였다가, 자신의 어머니를, 그리고 어머니의 동료를 부당하게 해고하려는 사측에 대한 저항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그가 생각하는 '진리'와 박성수 회장이 생각하는 '진리'가 전혀 다른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 : 김경욱 위원장에게 어머니가 보낸 편지)

전혀 구체적이지 않은 '진리'나 '믿음'은 가깝고, 너무나 구체적인 '계급'은 멀리 있기 마련인 것일까. 현재도 그렇고 아마도 앞으로 적지 않은 시간동안 비정규직으로 살아가야할 내 입장(그럼에도 난 법적으로 비정규직으로조차 인정받지 못한다. 대학강사는 변호사랑 동급인 전문직이라서라지, 아마)에서, 이랜드 노조의 투쟁에 이 멀리서 글 따위로 응원하는 것은 너무 부끄럽지만, 이렇게라도 응원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 모쪼록 연행된 노동자분들의 석방과 투쟁의 승리를 기원하고 응원하며,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분들의 무사하고 조속한 귀환도 기원한다.

※ 참고글 : 젊은층의 계급 각성과 기독교인들의 개입을 요구하는 ozzyz님의 포스팅

by 갈림 | 2007/07/20 23:20 | 談話 ::: 기고/생각들 | 트랙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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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반노동기업 이랜드 반대 at 2007/07/2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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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 반대 리본을 왼쪽 위에 달기 위해서는 아래의 코드를 태그 아래에 넣으시면 됩니다. 이글루스 등 스크립트 태그를 사용할 수 없는 곳에서 이랜드 반대 리본을 왼쪽 위에 달기 위해서는 아래의 코드를 태그 아래에 넣으시면 됩니다. ...more

Commented by youngjune at 2007/07/21 22:51
메신저 title에 E-land 불매운동이라고 써놓고 어제 2001 OUTLET엘 갔다.
반성중... ㅡㅡ;;;;;;
Commented by ssct at 2007/07/23 12:34
지금 여의도에서는 이랜드 직원들이 '1만5천 이랜드 직원들이 여러분께 진실을 말씀드립니다' 이딴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답니다. 처음엔 반이랜드 전단지인줄 알고 '그래 이랜드 이 나쁜 놈들' 하면서 아무 생각없이 받았는데, 막상 읽어보니 이랜드는 잘못한 게 없고, 진실이 호도되고 있다는 어이없는 내용... 어쩐지 그런 전단지 나눠주는 분들치곤 정장들 입은 게 너무 멀끔하다고 했어요. 점심시간에 밥도 못 먹고들 이랜드 직원들 뭐 하는 거랩니까. 오만 정나미가 다 떨어지네요.
Commented by 갈림 at 2007/07/26 23:21
youngjune/ 왜 그랬어....

ssct/ 이랜드 직원들이나 홈에버 입점 업주들도 안됐지만, 이랜드 사측은 정말 .....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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