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엊그제 제헌절 휴일날에는 경기도 안성에 있는 한 천주교 공원 묘지를 다녀왔습니다.

제가 아는 누군가가 묻혀계신 곳이 아니었구요, 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모실 곳을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며칠전 부모님께서 한차례 다녀오셨나본데, 함께 가 보자고 하셔서, 부모님과 와이프까지 함께 가서 예약하고 돈까지 납부하고 왔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제가 못미더우셨는지 예전부터 사후 화장을 하시겠다고 하셨었는데, 결국 화장 이후 합장 납골하는 방식으로 모시기로 했습니다. 실내에 있어 답답한 납골당이 아니라, 매장묘도 있는 공원 묘지에 비교적 잘 꾸며놓은 야외 납골당이라 볕도 잘 들고 분위기도 밝은 편이라 괜찮더군요. 매장묘의 장점도 충분히 살린 납골당 같았습니다.

그래도 뭔가 착찹하고 묘한 기분이더군요. 제 또래에 이미 부모님을 오래전 여읜 분도 많이 계시겠지만, 아직은 30대 초반인데 부모님께서 벌써 떠나실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게 착찹한 기분이 아니 들 수 없겠지요. 하긴 막내인 저의 부모님 연세는 그리 적으신 편이 아니기도 하구요. 워낙 저는 집에서는 무뚝뚝한 아들이고, 부모님은 감정을 잘 안드러내시는 분들이라 그냥 농담도 하며 다녀왔지만요, 잘 한 일인 듯도 하지만 죄송스러운 마음도 드네요.

고등학교 때 아주 싫어했던, 정년 퇴임 앞둔 선생님이 한 분 계셨는데, 그 분이 하신 말씀 하나는 지금도 기억이 나네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자식이 나이드는 걸 바라보는 일'이라고 하셨었걸랑요.

부모님께도 젊은 시절이 있었고, 30여년 내가 성장한만큼 부모님은 늙어가셨다는 사실, 그 당연한 사실을 잊고 살아가고 있네요. 당신들이 언젠가 모셔질 납골당을 함께 가보자고 말씀하신 부모님의 속마음은 어떠셨을까요. 그 마음을 떠올리니 더 죄송스럽구요.

모쪼록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아버지, 어머니.
엊그제 가본 그곳은 이제 아주아주 오랫동안, 찾아가는 길마저 잊어버릴 만큼 찾아갈 일이 없을 거예요.

저 이상으로, 진심으로 부모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해준 마눌님께도 감사의 말을 전할게요.

by 갈림 | 2007/07/19 17:29 | 日常 ::: 나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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