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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려운 욕망
작년 말, 한 권의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일간지 신춘문예나 문예지 공모와 같은 과정을 거친 적이 없는 아홉 명의 작가가 써낸 단편 소설 한 편씩을 묶어 펴낸 것이었다. 이른바 '순문학계'에서는 이 소설집이 별다른 관심을 모으지 못했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 소설집은 대중 장르 문학, 그 중에서도 변두리라 할만한 '공포 문학'을 표방한 작품들을 모아놓은 책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공포 문학'의 전통은 그리 만만치 않다. 서구의 경우, 18세기 후반 영국 작가 호레이스 월폴의 [오트란트의 성]을 비롯한 고딕 소설의 전통은 19세기 중반 에드가 앨런 포의 [어셔가의 몰락]과 같은 괴기 소설들을 거쳐, 19세기 말 '세기말' 정서와 더불어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로 이어졌으며, 현재의 스티븐 킹과 같은 세계적 대중작가의 작품들로 면면히 계승되어 왔다. 우리의 {금오신화(金鰲新話)}나 중국의 {요재지이(聊齋志異)}처럼 동양권의 오래된 서사(敍事)들이 귀신들이 등장하는 공포 장르적 성격을 띄고 있음도 주목할 만하다. 공안소설(公案小說)이나 이해조의 신소설들에는 지금 보아도 끔찍한 엽기적인 범죄 장면도 적지 않게 등장했다. 이처럼 '공포 문학'의 역사가 유구할 뿐만 아니라, 에드가 앨런 포나 {금오신화}가 미국과 한국의 주류 문학·문학 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공포 문학'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은 거의 없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포 문학'은 저급하고 통속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깃거리' 정도로 취급되어 왔다. '공포 문학'은 서자 취급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해마다 여름이면 '무서운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화제에 오르기 마련이었고, 텔레비전을 통해서는 {전설의 고향}을 비롯한 '공포물'들이 전파를 타고 안방으로 전달되었다. 여름 극장가에는 '공포영화'들이 으스스한 포스터들과 함께 관객들을 겨냥했다. 그만큼 '공포'는 사람들의 본성과 오감을 자극하는 매력이 있었고, 사람들은 종종 그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원했다. '공포 문학'의 만만치 않은 전통은 사람들의 그러한 본능과 욕망을 통해 유지되어 온 셈이었다. 2. 억압된 것의 귀환 문학 내에서 '공포 문학'의 입지보다는 영화 내에서 '공포 영화'의 입지는 비교적 넓고 탄탄해 보인다. 하지만 공포 영화 역시 마이너 장르의 성격을 벗어나긴 힘들다. 사실, '공포'란 것 자체가 드러내놓고 즐길 만한 것은 아닐 수밖에 없고, 세밀하게 따지고 비평하면 흥미가 배가되기는커녕 공포가 안겨주는 매력마저 상실되기 마련이니, '공포' 장르는 그 유구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하위 장르적 천성을 타고났는지도 모른다. '공포'는 말 그대로, 우리가 떠올리고 싶지 않고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공포를 전경화시킨 '공포 문학'은 무의식의 세계가 표출되는 장이 되며, 그것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억압된 것의 귀환"이 일어나는 장소가 된다. 저명한 영화이론가인 로빈 우드는 통속적이고 저급한 것으로만 취급되던 B급 공포 영화가 '주류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역할'을 하거나 '가부장적 가족주의와 같이 상투화되고 일상화된 자본주의의 병폐를 폭로하고 뒤엎는 기능'을 하고 있음을 주목한 바 있는데, 공포 문학도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공포 문학이 우리 사회의 밝고 아름다운 면을 드러내기 위한 문학이 아님은 물론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늘 밝고 아름답다면 모르겠지만, 폭력과 전쟁이 만연한 현실 자체가 이미 공포스러운 이상, 공포문학은 그 현실을 반영하는 또 하나의 '리얼리즘 문학'이다. 또한 누구나 감추고 싶어하는 본능의 밑바닥 심리를 드러내는 '폭로의 문학'인 것이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공포 장르가 메인스트림에 합류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공포 문학 자체를 혐오스럽고 저급한 것으로 취급하여, 아예 배제하거나 외면하는 경우일 것이다. 다소 과장하자면, '공포 문학'을 배제하거나 외면하려는 것은 우리 현실 가운데 한 측면을 배제하려는 것이고 왜곡하려하는 것이다. 3. 현실의 충격, 현실의 공포 2006년 말 출간된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은 아홉 편의 공포 문학을 싣고 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의 작가는 정식으로 문단 데뷔 절차를 거친 바 없이, 주로 PC 통신이나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공개해왔던 이들이다. 몇몇 작가의 작품들은 영화화됨으로써 이름을 조금 알리긴 했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작가들은 아니다. 하지만 김종일이나 이종호는 '공포 문학 동호회' 등을 통해 일정한 매니아 독자층을 가지고 있기도 하며, 이 책에 실린 작품들 중 일부는 인터넷을 통해 이미 상당한 인기를 얻었던 작품이니만큼, '공포 문학'에 관심이 있던 이들로부터는 상당한 주목을 받으며 출간된 책이었다. '공포 문학'을 표방하는 작품들이, 그것도 온라인 상에 머물던 작품들이 오프라인을 통해 정상적인 출간과 유통, 소비의 절차를 거치게 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은 주목받을 만했다. 이 작품집을 더욱 돋보이게 했던 것은 여기에 실린 작품들이 우리의 현실에 밀착해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 작품들에는 귀신이나 유령, 괴물, 퇴마사 등과 같은 초현실적 존재들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 같은 도로 상황이나 불륜, IMF 실직과 의처증, 원조교제 등과 같이 우리 주변 현실이나 신문 사회면에서 쉽게 접할 수 있을 것 같은 소재와 인물들이 등장한다. 작년에 크게 흥행했던 영화 {괴물}은 서울과 한강이라고 하는 친숙한 공간을 배경으로 만든 '괴물 영화'라는 점에서 헐리웃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실감나는 공포를 안겨주었음에도, '괴물'이라고 하는 비현실적 존재가 주는 거리감이 적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도로 위에서 위험스럽게 끼여들기를 하는 운전자를 악마처럼 묘사하면서, 그들에게 '살의'를 느끼게 되는 화자를 등장시킨, 김종일의 [일방통행]은 참으로 '리얼'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부부의 불임이나 회사에서의 지사 발령까지 거리의 운전자 탓을 하는 것에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지만, 운전을 할 때 유난히 신경질적이 되거나 엉뚱한 곳에 화풀이하는 사람은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IMF 실직 이후, 극심한 의처증을 겪다가 아내를 죽이게 되고 마는 남편을 표현한 이종호의 [아내의 남자]는 결말 부분의 '반전'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수준이라는 점은 아쉽지만, 해리성 장애로 대표되는 현대인의 병리 현상과 공포를 잘 결합시킨 작품으로 꼽을 만하다. 인터넷을 통해 이미 상당한 반응을 얻었고 조만간 영화화될 예정이라는 박동식의 [모텔 탈출기]도 그러하지만, 우명희의 [들개]에서 보이는 끔찍스러운 묘사는 여타의 문학 장르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만큼 세밀한 것이었다. 그러한 묘사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공포문학의 묘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다소 작위적인 구성이 보이긴 하지만 권정은의 [은둔]은 에드가 앨런 포를 연상시킬 만큼 섬뜩한 공간 묘사가 돋보이며, 불륜이 불러온 살인을 직접 당하게 된 화자를 등장시킨 엄성용의 [감옥]은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었다. 인류의 멸종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이 발휘된 장은호의 [하등인간]이나 인간 복제를 소재로 한 김민영의 [깊고 푸른 공허함], 괴이한 상담과 진료가 이루어지는 최민호의 [흉포한 입] 등은 독특한 상상력이 안겨주는 흥미를 체험할 수 있게 한 작품들이었다. 물론 이들 작품들에서 아쉬운 면들도 적지 않았다. '장르 문학', 혹은 '장르 예술'이라는 것은 무엇보다 장르적 특성이 우선시되는 것이 마땅하다. 코미디를 연기하는 이에게 연기가 과장됐다고 비난하거나 순정 만화의 남자 주인공이 비현실적인 인체 비례로 그려졌다고 비난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듯, '공포 문학'에 심도 깊은 상징성이나 치밀한 심리 묘사, 절차탁마를 거친 세련된 문장 표현을 강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수 없다. '장르 문학'은 '장르 문학'으로서 갖추어야할 미덕이 무엇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은 우리의 삶과 현실 속에서 '공포'를 발견하고 들추어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작품들이라 할 만하다. 게다가 공포 문학의 열광적 독자가 스스로 작가가 되어, '장르 문학'의 재생산을 이루어냈다는 점은 그동안 관심의 영역 바깥에 있던 '장르 문학'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마저 안겨주는 대목이다. 4. 검열의 공포와 장르 문학의 오늘 이 소설집이 그저 한국의 공포 문학 장르가 본격적으로 출판물로써 유통되고 소비되는 문학의 주류로 진입하는 의미를 획득하는 데 그쳤다면, 굳이 이 지면을 빌어 여기 소개하고 관심을 유도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장르 문학'이 그 장르에 익숙한 사람들에 의해 또다시 재생산되는 '매니아적 생산 구조'를 가지게 된 것만으로 충분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으니 말이다.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에 대해서, 심지어 '공포 문학'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이들조차도, 주목해야할 이유는 바로 이 책이 지난 연말 한국 간행물 윤리위원회에 의해 '청소년 유해도서'로 판정되었고 '19세 미만 구독불가 도서'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 책은 비닐포장을 한 채 진열되어 신분증 확인 절차를 거쳐야 구입할 수 있게 되었으며, 온라인 서점들에서는 성인 인증이나 로그인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이 책에 대한 정보조차 접근할 수 없게 되기도 했다. 더욱이 일부 대형 서점들에서는 '성인용'이란 이유로 사실상 판매가 중지되기도 했다.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에 실린 몇몇 작품들, 특히 [들개]나 [상자], [모텔 탈출기] 등에서 보이는 묘사는 다소 지나칠 정도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장르 문학', 그 중에서 '공포 문학'이 '끔찍하다'는 이유로 '청소년 유해 판정'을 내린 것은 유감스러운 결정일 수밖에 없었다. 순정 만화는 유치해서, 공상 과학 만화는 비현실적이어서, 명랑 만화는 허무맹랑해서, 각각 청소년들에게 유해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만화를 금해야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춘향전이나 심청전이 음탕하거나 처량해서 유해하다고 비난한 것은 벌써 100년 전의 일이었다. 하물며, '장르 문학'이라는 것은 본래 그 장르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기 마련인 것인데, 간행물 윤리위원회가 '폭력성'과 '잔혹성'에 대한 본보기로 이번 결정을 내렸다면 이는 실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 큰 문제는 '청소년 유해 도서' 판정이 이 책에 국한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싹트기 시작한 '장르 문학'에 '자기 검열'적 요소로 작용하게 되리란 우려이다. 이 책의 내용이 청소년들에게 유익하다기보다는 유해하다고 판단할 수는 있다. 하지만, 상상력의 제약이, 자기 검열적 습관이 창작을 방해하는 현실, 진정으로 공포스러운 현실이 이번 간행물 윤리위원회의 결정으로 도래할 수 있다는 점이 걱정스럽다. 또한, 이미 출판되어 유통되고 있는 적지 않은 국내외 기성 문학작품들에 나타나는 묘사와 표현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획일의 잣대와 검열의 시선으로 유해 도서 판정을 내린다면, 기발한 상상력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장르 문학'을 한국에서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은 그 기획과 구성, 내용적 수준, 그리고 지금 처한 역경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장르 문학'의 오늘을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되고 있으며, 그렇기에 주목해야만 할 책이다. 계간 《내일을 여는 작가》 2007년 봄호 게재 상업적/비상업적, 학술적/비학술적 용도를 막론하고, E-mail을 통한 사전 허락 없이 위의 글의 일부 또는 전체를 무단으로 인용 혹은 전재하거나 퍼가는 행위를 절대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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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고교인 상문고하고 같..by 이동준 at 08/24 김상윤/ 그러셨군요. .. by 갈림 at 07/14 훗 저거 세개 다 타봤습.. by 김상윤 at 07/08 아우라/ 예, 반대하는 .. by 갈림 at 06/03 마지막 '긴호흡'이라는 .. by 아우라 at 06/02 조군/ 네 ^^ 감사합니다. by 갈림 at 06/02 트랙백 신고합니다. ^^ by 조군 at 06/01 역시 잘못한 거였어. 다.. by seal at 05/29 seal/ 맞는거 아냐? (2) .. by 갈림 at 05/27 한가운데 學이 세 개. .. by 사막여우 at 05/27 이글루 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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