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대학 캠퍼스에서의 폭력

1.

전방입소 교육이 없어진 것도 벌써 얼마나 오래전 일인데 대학 캠퍼스 내에 아직도 군대 문화, 혹은 병영 문화가 활개를 친다.

어느 대학교 체육과 신고식 사진이 떠돌며 이슈가 되더니, 체육과도 아닌 어느 학과 MT 현장에서의 '얼차려' 장면이 또한 화제가 되었다. 선배라는 이유로 후배들을 벗기고 굴리고 때리고 먹이고 꾸짖는다. (관련기사)

2.

내가 강의하는 한 학교에서의 일이다. 체육학과 1학년 학생들의 교양국어 수업 시간이었는데, 글쓰기의 시작인 '발상'은 사소한 경험에서 온다는 점을 강의하던 중이었다. 예를 들어 "가장 기뻤던 기억은 언제였나?", "부모님이 가장 고마웠던 순간은?" 따위의 진부한 질문들을 학생들에게 던져보고 있었는데, 이번엔 "가장 무서웠던 순간은 언제였나?"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학생들의 대답은, 적어도 내겐, 무척이나 의외였다. 서너명의 학생이 동시에 "개강총회"라는 답변을 내뱉었고, 순간 거의 모든 학생들이 웃음을 터트리며 공감을 표현했다. 군대 시절을 포함해 대학생활 7년에, 대학원 과정 포함하면 15년의 세월을 대학교에서 보내고 있지만, '개강총회'가 무섭다니, 처음엔 잘 이해가 안되었었다. 억지로 술을 먹으라고 강요하는 소수의 꼴불견 선배들에 대한 기억을 제외하면, 그리고 개강총회와 '해오름식' 직후 '가투' 결의로 이어지던 기억을 제외하면,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유를 묻자, 한 학생은 '학과 교수님들 계실 때까진 분위기가 좋은데, 교수님 나가고 나서 선배들이 문을 걸어잠그더니 분위기가 살벌해졌다'고 말했다. 더 이상 자세히 물어보진 않았지만, 대략 짐작되는 바는 있었다. 체육학과 학생들은 멀찌감치 선배가 보이면 90도 인사와 더불어 큰 소리로 목청높여 "안녕하십니까"를 외치곤 하는 장면을 이전에도 목격했으니까 말이다. 아마도 나는 그때, 짐작되는 것도 그렇거니와, '개강총회'라는 답변에 공감을 표하면서도 다른 아이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던 것이 못내 씁쓸하고 혼란스러워서 더 이상 구체적으로 물어보지 못했던 것 같다.

3.

몇몇 대학에서는 몽둥이까지 집어들고 폭행이 이루어지기도 한다고도 들었다. 선후배 위계가 군대나 조폭 못지 않은 곳도 적지 않다고도 한다. 대개 군대에서 '한가한 부대 고참이 쫄병 군기 잡는다'고 말하듯, 이들 대학생들이 심심하고 할 일이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디 그렇기만 할까.

여중생들끼리 집단 구타를 하는 동영상을 보여주며, 학교 폭력 운운하는 뉴스들도 끊이지 않는다. '조폭' 영화, '조폭' 뮤비가 양산되며 끼친 악영향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특히 아무런 스토리 없이 폼나게 치고 박고 쓰러지며 '소몰이 창법'이 곁들여진 '뮤비'는 폭력을 미화시켰다고 비난받아 싸다. 하지만 어디 그렇기만 할까, 정말.

4.

예전에 어떤 고등학생 하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학생은 '두발을 규제하는 학교'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했다. 자기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머리를 스포츠형으로 깎으라'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더란다. 그저 학생다운 모습이라고만 하는데, 전세계 모든 학생이 다 그런 머리를 하는 건 아니지 않냐고도 하소연했다. 그래서 한번은 비교적 말이 통할 것 같은 선생님께 '대체 머리를 짧게 깎아야 하는 이유나 좀 알려달라'고 말했단다. 선생님으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학교 규정이 그러니까', '학생은 규정을 따라야하니까'라는 것이었단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대답해준 선생님이 오히려 의외다 싶은 기분이 드는 것은, 대개 그런 질문에 대한 답변은 '몽둥이'라는 사실을 경험으로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TV 뉴스시간에 나오는, 동료 친구를 두들겨팼다가 경찰서에 끌려온 여중생은 무엇이 잘못인지 잘 모른다는 투로 대답한다. "말을 잘 안듣고, 전화도 안받고 슬슬 피하길래 때렸다"고. '말 안듣는다고 때린다'는 것, 여중생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니까 느낌이 다를 뿐, 사실은 아주 흔한 얘기다. 사실 '말 안들으면 맞는다'는 것은 학교 생활을 해본 누구나 경험해본 '상식(!)'이다.

조폭 영화나 조폭 뮤비가 폭력을 미화시킨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다 먼저 아이들은 '말 안들으면 폭력을 쓰면 된다', '말보다는 주먹과 몽둥이가 효율적이다'라는 사실을 경험으로 배워왔다. '왜 학생은 머리를 짧게 잘라야하는지', '왜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으면 안되는지', '왜 우리반이 꼴찌반이면 안되는지', '왜 모두가 1등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왜 수능시험장에 핸드폰을 가지고 들어 가기만 해도 안되는지'에 대해 차근차근히 설명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냥 그렇게 하라고 하면 해야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처벌―특히 폭력―이 뒤따랐다.

차츰, 폭력은 소수가 다수를 통제하는 효율적이고도 유일한 방법이라 깨닫게 되었다. 중고등학교에선 1년에 한번씩, 색다른 폭력을 경험하게도 해준다. '수련회'니 '극기훈련'이니 하는 이름으로, 어느 산기슭 수련장이나 유스호스텔에서 2박 3일씩을 보내야만 한다. 선생님들이 사리진 빈 자리는, 빨간 모자와 몽둥이를 든 '교관'이 대신한다. 그들은 선생님도 아니고, 학생들보다 훨씬 수(數)도 적지만, 그들에겐 빨간 모자, 몽둥이, 호루라기, 큰 목소리 그리고 '나이'가 있다. 그것으로 학생들은 '통제'의 방식이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는 다시금 깨닫는다. 수련회비 낸 것에 비해 턱없이 싸구려스러운 '덜 익은 당근이 뒤섞인 카레라이스'와 '바퀴벌레 나오는 작은 방'도 '참고 견뎌야만 한다'고 배운다. 아니 강요당한다. 어차피 수련회 기간만 지나면 다시는 먹을 일 없고 겪을 일 없으니까.

그러면서 통제를 피하는 방법도 배운다. 폭력을 동반한 통제는 그 순간 잠시를 회피하면 된다는 사실. 당연하다. 폭력을 통한 통제에 철학이나 교육이나 윤리가 있을 리 없다.

참고 견디거나 눈을 피해 적당히 지나가면, 폭력을 당할 입장에서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입장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항상 자신 위에 있는 존재는 명령하고 지시하였으며 때렸으니까. 후배가 선배가 되고, 쫄병이 고참이 된다는 사실은 폭력을 견디게 해주었으며, 더 나아가 폭력을 옹호하게 해주었다. 대학 캠퍼스 내에서 폭력적인 장면이 문제시될 때마다 적지 않은 '피해자'가 "강요당한 게 아니다"라고 오히려 변호에 나선 배경은, 스스로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는 미래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일 거다.

폭력이 만연한 병영(兵營) 사회. 그 뿌리는 깊고도 질기며, 넓게 퍼져 있다.

[관련포스트]
- 단상 : 두발자율화
- 단상 : 총기난사사건
- 생각 : 폭력의 군대, 군대의 폭력

by 갈림 | 2007/03/23 20:25 | 談話 ::: 기고/생각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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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아우라 at 2007/03/24 00:38
하나마나한 소리일지 모르겠으나 결국 '집단내 위계질서'를 위한 강압적인 행동들이고 그것을 위해선 개인의 인권을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암묵적인 동의들이겠지요. 사회가 말로만 변하는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갈림 at 2007/03/24 00:49
아우라/ 네, '위계질서'란 게 '폭력'을 동반해야만 이루어진다고 체험하고 배우면서 스스로 그것의 재생산 매커니즘 속으로 들어간 것이겠지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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