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김성주와 장준혁

지난 20일 아침, 드디어 김성주씨가 진행하는 《굿모닝FM》의 마지막 방송이 전파를 탔다. 생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의 묘미란 역시 스튜디오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없다는 것인만큼 그 순간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김성주씨는 조금 울먹이는 듯 하더니, 전체적으론 밝고 낙천적인 듯한 그의 인상 그대로였다. MBC 아나운서로서의 마지막 순간 고마움을 표해야 할 이들을 나열하기도 했고, 청취자에 대한 감사도 표했고, 프리랜서의 길로 가는 스스로에 대한 두려움도 표했다. 마지막 곡으로 스스로 고른 비틀즈의 "Let It Be"를 틀어주며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그 노래가 그렇게 절묘하고 슬프게 들린 건 처음이었다 싶었다. 어쨌든 그는 그렇게 마지막 방송을 마쳤다.

이어지는 MBC FM 프로그램은 이문세씨의 《좋은 아침》. 이문세씨는 오프닝 멘트에서 '살다보면 이런 나쁜 일도 있으면 저런 좋은 일도 있다'는 식의 허무당연(?)한 말을 하다가 '성주가 가서 슬프지만 문세가 아직 계속 하니 기쁘기도 하고' 등등의 말을 이어가며 첫 곡을 틀었다. 그러더니 첫 곡이 끝나고 평소 같으면 CM이 나왔을 타이밍에 갑작스레 게스트 소개를 한다. 그 게스트는 바로 김성주. 지인들과 동료, 선후배와 인사를 나누던 김성주씨를 이문세씨가 잠시 스튜디오로 끌고 들어온 듯 한데, 이문세씨는 '김성주가 없는 아침을 생각하며 허탈해할 청취자들에게 이렇게 곧이어 연예인 게스트로 출연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허탈해하지 않을 것'이라 말했는데, 정말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김성주씨의 작별 멘트에 아쉬움을 느끼던 청취자들에겐 여운조차 남지 않게 한 황당 시츄에이션. (하긴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이문세씨 프로그램은 물론, 김성주씨의 작별 멘트조차 듣지 못하고 일터로 들어갔겠지만.) 어쨌든 김성주씨는 MBC 아나운서로서의 마지막을 그렇게 마무리지었다. (나는 잠시후 탤런트 김명민씨가 게스트로 출연할 예정이라는 이문세씨의 멘트까지만 듣고 강의실로 들어갔더랬다.)

김성주씨는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운영하던 케이블채널 한국스포츠TV 출신으로 회사가 문을 닫고 SBS로 넘어가는 와중에 MBC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지금은 성격이 많이 달라졌지만 한때 '공중파로 방송하는 좌파 방송' 같은 느낌이었던 《생방송 화제집중》의 진행자로 관심을 모았고, MBC에서 아나운서 띄우기의 일환으로 만들었던 《사과나무》를 김완태, 임경진 아나운서와 함께 진행하기도 하면서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렸다. 또 4년 가까이 진행해왔던 아침 FM 방송 《굿모닝 FM》으로 출근길 직장인들과 친숙해지더니, 다들 알다시피 작년 월드컵을 계기로 하여 결정적으로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는 《황금어장》, 《불만제로》, 《일밤》 등을 통해 '가장 잘 나가는 아나운서'가 됐다. 그리곤 최근엔 '팬텀엔터테인먼트'라는 거대 기획사에 스카웃되면서, MBC를 떠나게 되었다.

김성주씨가 MBC를 떠나는 과정에서도 참 말이 많았다. 그가 인기있는 아나운서라는 사실의 반증이었겠지만 어쩌면 평범하다고 할만한 직장인 한 명의 퇴사에 그렇게도 관심이 많을 줄이야. 2년전 정혜정 아나운서의 명퇴가 사실상 타의에 의해 조용히 이루어졌던 것(관련기사)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김성주 아나운서가 거액의 계약금을 받았는지, 고급 외제승용차를 받았는지는 관심이 없지만, 어쨌든 '월급쟁이'가 '연예기획사 이사' 자리로 옮겨간다는 데에 사람들은 왈가왈부하고 싶었나보다. 고되고 긴 업무 시간에 시달리지 않게 되고 여유도 생기고 돈도 생긴다는데 유혹받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냐만은, "키워준 MBC를 버렸다"거나 "서민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를 잃게될 것"이라는 식의 비난 섞인 반응에 김성주씨 스스로도 적지 않은 마음고생을 했었나보다. 김성주 아나운서를 MBC가 키웠는지는 모르겠지만, MBC를 통해 인기를 얻은 것은 틀림없다. 또 한편으론 김성주씨가 《황금어장》에 나올 때에는 얼굴에 피로가 가득해보여 안쓰럽기도 했을 정도로, 김성주 덕을 MBC가 본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김성주씨는 MBC라는 '조직'을 떠났다. 조직을 스스로 떠나는 '개인'에 대한 뭇 사람들의 감정은 '질투'나 '부러움', '걱정', '미움' 등이 뒤섞인 감정인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직에 의해 버려짐을 당할까 두려움에 떨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 감정은 어쩌면 당연하고 어쩌면 정당하다.

얼마전 종영한 MBC 드라마 《하얀거탑》은 조직과 개인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뭇 '직장인', 혹은 '사회인'들의 큰 호응을 얻었었다. 장준혁으로 분한 김명민씨의 연기를 보면서 "바로 우리의 이야기"며 "우리 직장의 이야기"라고 공감을 표한 사람은 수없이 많았다. 그만큼 그동안 TV 드라마의 이야기들이 허무맹랑한 '남들 이야기'였기에 그런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한 점 하나와 수상한 점 하나가 있다.

이상한 점은 장준혁에 대해 감정이입하는 사람들의 심리다. 장준혁은 홀어머니 밑에서 커서 국내외 의학계에서 주목받는 외과 의사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소위 빽 없이, 배경 없이, 부모로부터의 적극적 지원 없이 커나간 사람처럼 보인다. 그리고 조직을 위해, 상사(이주완 과장)를 위해 헌신하며, 부하직원들에겐 조금은 엄하지만 카리스마 넘치고 정도 넘치는 상사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런데, 정말 그랬는가. 장준혁의 처가는 엄청난 부자로 보이고, 과장이 되기 위한 로비에도 처가의 힘과 돈을 빌린다. 상사에게 대한 헌신과 부하에게 대한 카리스마는 '스스로 줄타기하며, 내 뒤를 따르라'고 호령하는, '줄타기에 목매는 못난 초급 간부' 이상, 이하도 아니다. 그에 의해 결국 밀려난 노민국(차인표 분)은 '낙하산'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어찌보면 그야말로 실력으로 승부하려다 '줄'과 '텃세'에 의해 좌절하고 마는 인물이 아니던가. 장준혁은 지방 병원으로 좌천당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외과과장이 되기 위해 목숨을 걸다시피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가 지방병원으로 가든, 과장이 되지 못하든, 그가 누릴 '엘리트'의 위치와 일정한 '부'는 평범한 사람들이 부러워할 수준의 그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그에 대해 그렇게 쉽게 감정이입이 될까.

수상한 점은 그런 장준혁이 최도영(이선균 분) 이상으로 시청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스스로 배신당하지 않기 위해 먼저 배신하는 인물, 더 넘치는 돈과 권력을 갖기 위해 처가의 후원 아래 온갖 로비를 일삼는 인물, 힘들 때면 아내 대신 애인을 찾아가 그녀의 품에 안기는 인물, 더 나아가 자신의 출세에 목을 매느라 사실상 의료사고로 환자를 사지로 몰아간, 그런 인물인 장준혁에게 '비난'이 아니라 '지지'라니. 각본과 연출이 애초에 의도함으로 인해 장준혁이 미화되고 포장된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적어도 15년 전에만 이런 인물이 드라마에 나왔다면, '길거리에서의 봉변'을 걱정해야했을 '악역'이 아니었을까. 그런 인물이 이제 지지를 받고 동정을 받는 데에 이르렀다.

이게 2007년의 대한민국의 수준, 딱 그것이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비리와 범법 사실이 폭로되어도, '무능'보다는 낫다며 무시하는 수준. 바로 그 수준의 사회.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원작의 뛰어남 때문일까, 아니면 김명민씨의 뛰어난 연기 덕분일까. 아니, 그런 것들은 《하얀거탑》의 인기를 설명해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장준혁의 인기를 설명해주는 것은 될 수 없다. 이건 분명 사람들이, 우리 사회가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가치 판단의 윤리가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IMF 이후 10년이 지나는 동안 모두가 깨달아버렸다. IMF 때 금모으기 동참했어야 했던 게 아니라, 은행 빚을 얻어서라도 강남에 아파트 한 채를 사두었어야 했다는 사실을. 그렇게 깨달아버린 진실이, "누구라도 그 상황이라면 일반 환자가 아니라 세계 의사학회장의 부인 수술 쪽을 택해 제주로 내려갔었을 것"이라는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고, "그게 현실"이라고 말하게 되어버렸는지 모른다. 성공을 위한 길이, 조직 내에서 성공이라는 것을 위해서라면 그보다 더한 선택도 서슴없이 해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말, 정말, 현실은 그런지 모른다. 그러니까 '의사의 불륜'을 그렸다는 이유로 《나쁜여자 착한여자》에 시비를 걸었던 '대한의사협회 서울시지부'는 '기합'과 '폭력', '폭언'이 난무하는 《하얀거탑》의 대학병원 모습에 아무런 시비를 걸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것이 조직의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정녕 그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장준혁에 대한 거의 '일방적인 지지의 현실'은 올바르지 않다.

김성주씨의 선택이나 손학규 전지사의 선택이나, 다 개인의 선택 문제긴 하다. 그들의 선택이 좋은 결말을 가져올지 그렇지 않을지는 알 수 없으며, 그 역시 그들의 몫이다. 염동일(기태영 분)이나 최도영의 선택 역시 개인의 선택이며 그 끝은 알 수 없다. 장준혁의 선택도 역시 개인의 선택이었고, 그 나름의 삶의 방식이었다. 선택이야 개인이 하는 것이지만, 그 개인을 지켜보는 주변의 대중은 그 개인의 선택이 바른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를 비난하거나 혹은 옹호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어떤 개인의 선택이 개인의 영달만을 위한 것이었고, 게다가 부정을 뒤덮기 위한 것이었고, 또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조직의 파괴와 동료의 파멸을 겨냥한 것이었다면 우리는 응당 비난을 퍼부을 수 있어야 한다. 그 개인이 돈과 권력을 맛보게 된다면, 우리는 그에게 비난이라도 쏟아부어야 마땅하고 속이 후련해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원래 약한 사람들끼리 모여 하는 것이 뒷담화고 비난 아니었던가.

조금씩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누구라도 장준혁 같은 선택을 했을거야"라고 말하며, "그게 현실이야"라고 말하는 그 현실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져있던 현실이 아니라 바로 당신들이 만들어놓은 현실이라는 것을. 좀 다르게 말할 수도 있다. "군대가서 죽도록 고생했다"며 "그래도 그렇게 고생해봐야 남자되고 사람된다"거나 "군대도 안가본 여자들이 뭘 알겠어"라고 말하는 그 끔찍스러운 군대의 현실 역시 바로 당신 '남자'들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자고 나면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을 비난하지만 그 부동산 가격을 매기고 호가를 부풀린 것은 부동산을 삶의 목표로 삼고 제1의 사유재산으로 꼽는 바로 당신들이라는 사실을.

장준혁이 선(善)하지 않은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얻고 지지를 받고, 심지어 옹호, 엄호를 받으며, 마지막에 가선 눈물과 동정을 받게 된 것은 선(善)하지 못한 우리의 내면을 모조리 들켜버렸음에도 들키지 않은 척 태연한 척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음을.

"나라도 돈과 권력이 유혹한다면 그렇게 했을테니, 그에게 비난해선 안돼"라며 수긍해버리는 이들은 '대중(大衆)'이어선 안된다. 그런 대중이 우리 사회의 다수여선 곤란하다. 그런 의미에서 장준혁에 쏟아지는 절대적인 지지와 옹호는 곤란하고 불쾌하고 참혹스럽다.

by 갈림 | 2007/03/22 01:42 | 談話 ::: 기고/생각들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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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신지 at 2007/03/22 02:23
요즘 내가 속물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것만은 아닌거 같다는 생각이 스치듯 든다 요즘 우리사회가 그렇게 변했구나. 내가 그런 변화된 주변속에서 살고 있었네...나도 모르게 물든걸까? 하고 생각에 잠기네요
Commented by 파란고양이 at 2007/03/22 13:53
저도 하얀거탑에 완전 열광했던 사람이지만, 사람들이 장준혁 자체를 옹호하는 것에 대해서는 좀 신기하게 생각했음.

사람들이 이야기에 몰입하는 것과 장준혁에게 몰입하는 것을 혼동한 건 아닐까요? 지금까지의 드라마의 공식이 악역이 주인공인 적이 별로 없으니까... 근데 주인공은 나쁜 사람이다. 나쁜 사람이 주인공인 이야기에 몰입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죄책감이 드니까). 그러니까 주인공도 알고 보면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다... 뭐 대략 이런 식으로 합리화한 건 아닐까요? 물론 옳고 그른 것보다 실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긴 하겠지만...

김성주와 장준혁에게 사람들이 보내는 시선이 다른 것은... 현실 속의 외제차와 티비 속의 외과과장 자리의 차이 때문일까요?

여하튼 재밌는 생각이네요.... 하지만 김명민만 보면 절로 웃음이 나와라~
Commented by 사막여우 at 2007/03/23 01:14
하지만 난 또다시 금모으기 운동을 한다고 해도 동참하지 않을거에요.(그렇다고 아파트를 살 돈도 없지만) 그거 '난자모으기 운동'만큼이나 웃긴 짓이었다구요.

음.. 포커스가 이게 아닌데-_-;;;
Commented by 갈림 at 2007/03/23 01:54
신지/ 정말 빠르게, 그리고 무섭게 변해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파란고양이/ 이야기 몰입과 인물 몰입을 혼동했다라.... 그것도 재밌는 얘기네.^^ 그래도 악인이 주인공인 이야기가 거의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장준혁에 대한 지지, 옹호가 설명되긴 어려울 것 같아. '실리'를 무엇보다 중요시하게 된 풍토에 대해선 좀 더 배경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일단은 다음 기회에.....

사막여우/ 그건 물론!
Commented by 바람나무 at 2007/03/23 22:45
내 말이...
어떻게 사람들은 장준혁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냐는 말이지
대부분은 장준혁 같은 사람으로부터 멸시와 이용을 당하며 이를 가는데 말이야
애들 가르칠 때도, 그들은 자기가 가진자(?) 혹은 자율적인 주체라고 생각한단 말이지
행복한 망상일까?
늘 궁금했던 점..

간만에 들러 뻘소리~
잘 지내나?
Commented by 갈림 at 2007/03/24 00:47
바람나무/ 하긴, 박정희와 개발독재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니까.
(이렇게 보면 너무 암울.... / 잘 지내는데 논문을 말로만 쓰고 있는 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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