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등록된 트랙백
The Hitchhiker's Gu..by Mųźёноliс Archi.. V. by [ 젊은유월●com™ ] 총선. by 鎭眞의 정치적 글쓰기 할리우드 작가파업 그 .. by 잠보니스틱스 당신은 나의 운명 by Love Letter |
3월초에 있었던 월드베이스볼 클래식은 참으로 흥미진진했다. 사실 한국팀 선수들에 대해 별 기대를 걸지 않았었고, 워낙 미국 마음대로 개최하는 대회여서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몇가지 이유 때문에 이 대회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한국팀 선수들의 선전을 빼놓을 수가 없다. 일본팀을 두번, 미국팀을 한번 이긴 결과는, 그 팀이 한국이 아니었다고 해도 대단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개최측과 심판진의 어이없는 행동에 대해선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을테고. 또 하나는 쿠바 선수들과 관련한 것. 개최측은 아마 최강 쿠바를 초청해놓았지만, 미국 재무부에선 '경제제재조치'로 인해 쿠바팀이 받아갈 상금을 허용할 수 없다고 시비를 걸었었다. 결국 쿠바팀은 대회 상금 전액을 '미국 카트리나 피해자를 위한 성금'으로 기부하기로 하고 참가하였다.(기사) 중남미 강팀인 베네수엘라, 도미니카공화국, 푸에르토리코와 한조로 묶어 푸에르토리코에서 경기를 치른 쿠바가 예상을 깨고 4강에 진출하여 미국으로 경기를 하러 오게 되자, 미국 언론은 "쿠바 선수들 전원이 대회가 끝나고 단체로 망명할 우려가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결과는 알다시피, 쿠바는 '혁명전사'의 마음으로 출전(기사)하여 준우승을 차지했고, 상금은 미국에 기부한 뒤, 쿠바로 전원 무사히 귀국하여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은 것으로 끝이 났다.(기사) 미국인들이 보기에, 쿠바 선수들은 "MBL, 혹은 미국에 진출하지 못하여 안달이 난 사람들"로만 보였나보다. 자만과 오만도 이 정도면 할 말이 없는 수준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지난 대회의 수훈갑으로 김인식 감독, 이승엽, 이종범, 서재응, 박찬호, 오승환 선수 등을 꼽지만, 누구 못지 않은 수훈을 세운 사람은 선동렬 투수코치(현 삼성라이온즈 감독)였을 것이다. 그는 이승엽과 오승환에겐 스승이며, 이종범에겐 해태 전성기를 함께 열었던 대선배이며, 서재응과 박찬호에겐 그야말로 우상이었을 것이며, 김인식 감독에겐 애지중지했던 애제자였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선동렬 감독의 첫 모습은 82년말 서울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때의 모습이었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하여, 아마 최강 쿠바가 불참한 덕분도 있었지만, 홈에서 열린 그 대회에서 한국팀은 우승을 거머쥐었다. 김재박의 개구리 점프 번트, 한대화의 역전 3점 홈런 등이 지금도 기억에 강렬한 그 대회에서, 당시 고려대학교 학생이었던 선동렬 선수는 미국과 일본의 타선을 압도하는 투구를 선보였었고, 최다승 투수상과 MVP까지 거머쥐었다. 바로 이전해에는 청소년 대회에 출전해 MVP를 차지한 바도 있었다. 대학 졸업후 프로야구에 진출한 뒤 거둔 '전설'과도 같은 기록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0점대 방어율을 기록한 해만 해도 여러해였고, 정규시즌 MVP는 그가 독차지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다른 선수들을 뽑은 것이 여러번이었다. 마무리 투수로 전환한 이후에는, 그의 존재 자체가 곧 상대팀에겐 공포로 받아들여졌다. 과연, "국보급 선수"라는 명칭이 그보다 자연스러웠던 운동 선수가 또 있었을까? 그는 전성기가 지난 이후 일본에 진출하였음에도, '나고야의 태양'이라 불리며 만만치 않은 활약상을 선보였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그가 일찌감치 미국 프로야구에 진출했다면, 훨씬 더 큰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었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순간보다 '선동렬'의 위대함을 절감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1996년, 당시로서는 매우 드물게 해외진출을 하게된 선동렬 선수에 대한 관심이 드높았던 때였다. 당시는 FA 제도가 없어서 구단의 허락이 없으면 선수의 해외진출은 원천적으로 차단되었던 시절이었다. 해태 타이거즈 팬을 포함한 국내 야구팬들은 '이제는 선동렬을 보내주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고, 결국 구단측도 선동렬을 이적시키는 데에 동의한다. 당시 모 방송사에서는 선동렬 선수의 일본 진출에 즈음하여 특집 방송을 편성했다.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 팀에 합류하여 훈련을 받는 선동렬 선수의 모습을 일본 현지에서 취재한 화면과 선동렬 선수의 그동안 활약상을 모은 화면들로 구성된 프로그램이었다. 스튜디오에서는 생방송으로 선동렬 선수의 스승이었던 김응룡 당시 해태타이거즈 감독과 선배이자 동료였던 김성한 선수 등이 출연해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일본 현지 선동렬 선수와 전화연결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고 갔다. 진행자 : 김응룡 감독님, 선동렬 선수의 활약상을 쭉 모아서 지켜보니까, 정말 대단한 선수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옆에서 쭉 지켜보신 감독님 입장에서는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과연 일본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요? 김응룡 감독 : 음…… 뭐…… 그거야…… 야구는 선수가 하기 나름이니까…… 음……뭐 어쨌든 선동렬 선수가 정말 대단한 선수라는 건 분명하죠. 음…… 전날 밤새도록 술 쳐먹고나서도 다음날 완봉승 거두고 하는 걸 보면 여간한 선수는 아니죠. 음……. 경기 전날은 작작 마시라고 강조했건만. 음. 위의 기억에 대한 정확성은 장담하기 힘들지만, 대략 그러한 내용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아마, 그 이후 진행자는 김응룡 감독에게 더 이상 질문하기를 꺼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쨌든, 김응룡 감독의 그 같은 발언은 역설적으로 선동렬 선수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가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음에 분명하다. 오늘, 어느 스포츠 신문에 실린 기사(기사보기)를 보고, 선동렬 감독에 대한 기억이 몇가지 떠올랐던 것이다. 그는 술 뿐만 아니라, 담배도 대단히 즐기는 선수였던 것이다. 하긴, 지금 KCC 감독이 되어있는 허재 선수도 술 냄새 풀풀 풍기면서 매번 코트 위에서 3,40 득점씩 올렸다는 '전설'도 있으니까.
|
카테고리
전체日常 ::: 나 文學 ::: 문학 談話 ::: 기고/생각들 捕捉 ::: 순간/이미지들 推薦 ::: 스크랩/펌 酒食 ::: 디오니소스 溫故 ::: 기억/기록 親親 ::: 사람들 寸鐵 ::: 한마디 中國旅遊 柬/越國旅行 歐羅巴蜜月 최근 등록된 덧글
S고교인 상문고하고 같..by 이동준 at 08/24 김상윤/ 그러셨군요. .. by 갈림 at 07/14 훗 저거 세개 다 타봤습.. by 김상윤 at 07/08 아우라/ 예, 반대하는 .. by 갈림 at 06/03 마지막 '긴호흡'이라는 .. by 아우라 at 06/02 조군/ 네 ^^ 감사합니다. by 갈림 at 06/02 트랙백 신고합니다. ^^ by 조군 at 06/01 역시 잘못한 거였어. 다.. by seal at 05/29 seal/ 맞는거 아냐? (2) .. by 갈림 at 05/27 한가운데 學이 세 개. .. by 사막여우 at 05/27 이글루 파인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