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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부모의 사랑, 혹은 치맛바람
어쩌면 언젠가 나도 그렇게 될지 모르겠어서 이런 얘길 하긴 좀 두렵긴 하지만, 몇몇 지인들의 미니홈피를 돌아다니다 보면 뭔가 씁쓸해지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부모로서 아이를 낳고 나서 그 아이를 키우느라 심신의 모든 능력을 그 아이에 집중하고, 또 그만큼 아이에게 애정을 기울이는 것이야 인지상정일지 모른다. 아니, 간혹 아이에게 지나치게 무관심한 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또 없기도 하다. 하지만, 그 아이의 홈페이지가 아니라, 부모의 홈페이지가 온통 아이 사진으로 도배되는 모습을 보면 좀 안스러워지기도 한다. '육아'가 주가 된 일상의 이야기를 자신의 홈페이지에 담는 것이야 뭐가 이상할까만, 그저 아이의 사진로만 몇달째, 몇년째 그 홈페이지를 도배하는 경우를 보노라면, 그 홈페이지의 정말 주인은 누구일까 싶은 기분도 든다. 그 아이가 큰 후, 자신이 자라나는 모습을 일주일 단위로 찍어놓은 사진들을 보면, 또 어떤 기분일까 싶기도 하고. 좀 무섭지 않을까?

(지금 강사 휴게실에서 블로깅 하고 있는 이 시간에도 옆 선생님들이 특별할 것도 없는 아이들 이야기로 수다만발이다. 유쾌한 기억도 아닌 군대 이야기를 수십년간 남자들이 '공유될 수 있는 화제(話題)'를 울궈먹는 걸 보면, 부모가 된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화제'인 '아이 이야기'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할만도 하다.)

뭐, 그거야 그렇고.

작은 누나의 딸, 그러니까 현재로선 내 막내 조카인 현지가 얼마전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강남의 유명한 아파트촌에 살고 있는지라 그곳의 소위 '교육열'은 대단치도 않다는 건 뻔한 일이다. 초등학교 입학은 했지만, 본격적인 수업은 진행되지 않고 하루에 1-2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노래나 율동을 배우기도 하고, 그냥 선생님 말씀을 듣기도 하고 그런가보다.

그런데 어느날, 선생님이 '가면'을 만들어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고 한다. 1학년 아이에게는 조금 부담스러운 숙제이기도 할 터. 현지는 종이에다가 그림도 그리고 가위질도 하고 해서, 대강 가면을 만들었단다. 귀에 걸 고무줄을 매다는 것과 눈 부분을 정교하게 가위질 하는 것은 쉽지 않아서, 누나가 조금 도와줬단다. 다음날 학교를 가보니, 아이들이 가져온 가면은 한눈에 보기에도 부모가 만들어준 것이 뻔해보일 정도로, 잘 만들어진 것들 일색이었단다. 선생님은 부모들이 만들어준 그 가면들을 보고도 당연하다는 듯한 반응이었고, 오히려 현지가 직접 만든 가면을 보고 의아해하더란다.

다행히 현지가 기죽거나 하지는 않았나본데, 누나는 그 상황을 보고 좀 어이가 없었나보다. 집에 돌아와, 동네에 사는 현지 친구의 엄마와 전화를 하다가 누나는 이렇게 말했단다. "글쎄, 가면을 다들 엄마가 만들어줬나 보더라구요." 그랬더니, 상대방 엄마가 "아니, 엄마가 만들었다구요?"라고 말하더란다. 그러길래, 누나는 말이 통할만한 엄마라 생각해서 순간 반가워, '그러게 말이예요.'라고 말하려는 순간, 상대 엄마는 이렇게 말하더란다.
"우리 집은 애 아빠가 만들어줬는데."

그 얘길 듣고, 누나는 한동안 말을 못 이었다는데.
대체 부모들이 할 것 뻔히 알면서 숙제를 내주는 선생님은 무슨 생각일까.

이와 관련해서 제발 부탁하고 싶은 것 중 하나는, 초등학교 선생님들, 아이들에게 방학 숙제로 '미술관 견학문' 따위 좀 내주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미술관에서, 아이들은 사방에서 뛰어다니고 엄마들이 대신 전시물 옆 설명만 베껴 적고 있는 모습, 이젠 정말 지겹고 짜증난다.

아래 기사를 보면 아이들에 참견하는 '엄마'들은 대학에서도 극성인가보다.

[관련기사] 대학에도 치맛바람

하긴, 예전에 '표절'을 적발하여 해당 학생을 0점 처리하자, 그 학생의 엄마가 학과 사무실로 전화해서, "우리 아들이 그럴리 없다. 증거를 대라."며 소리 높여 항의하던 경우도 직접 경험했었다.

좀, 적당히들 좀 하시지.
by 갈림 | 2006/03/21 15:33 | 談話 ::: 기고/생각들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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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자작나무 at 2006/03/22 16:46
미국도 비슷하다~ 어제 공연보러 갔는데, 애들은 이해도 못하는 모차르트 음악 설명하느라 주위 사람은 아랑곳 않더군. 미술관에서도 고래고래 고호 강의하는 미국 아줌마들은 예사로 많고, 벼릇없는 학부생들 대신해서 점수높이려고 찾아오는 학부모들도 수두룩하다. 왜들 그러고 사는지, 그렇게 극성으로 키우면 애들이 잘 클까 몰라.
Commented by 갈림 at 2006/03/22 18:10
자작나무/ 하긴 미국도 과외와 학습지 열풍에다, 부동산 투기 바람까지 불고 있다고 하더군요.
서로의 단점들은 어찌 그리 잘 베껴오는지... ㅡㅡ;
Commented by 키위 at 2006/03/28 22:19
미술관견학문이나 음악회감상문 제출같은 숙제의 의도야 나쁜 것이 아니지요. 예술 수용의 기회를 경험하는 것을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예전과 달라진 것이니까요. 사실 이런 과정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공공장소에서의 예의를 직접 학습하는 기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숙제로만 생각하는데다, 아이들을 데려온 부모들이 스스로 어떻게 보아야하는지도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도 모르니 통제가 안 될 수 밖에요. 그래도 저는 지난 겨울 국립박물관 갔을 때, 그 소란스러운 와중에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이 기특하던걸요. 박물관은 우아하면서 시장같은 곳이지요, 태생부터.
Commented by 갈림 at 2006/03/28 22:28
키위/ 네, 키위님 말씀이 맞지요. 사실 선생님들 입장에서도 그러한 예술 체험을 어떻게 유도하고 교육시켜야하는지 잘 모르고 있을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덜렁 숙제만 내주고, 예술 체험 교육시켰다고 자부하는 태도겠지요. 그나저나 파업과 휴업의 열풍인 파리에서 건재하신지요.
Commented by 키위 at 2006/03/29 07:11
이런 저런 일로 과부하가 걸린 와중에 학교폐쇄로 조금 한가한 틈이 생겨 좋아하고 있습니다. -.- 전국 대학 중 50개 이상이 파업 또는 폐쇄, 아니면 학생들에 의해 점거되었답니다. 그래도 총리 아저씨는 절대 물러 설 수 없다고 오늘도 국회에서 대답을 했지요. 저는 종종 한국과 프랑스 간에 한세대의 간격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질적인 시간대가 함께 뒤섞여 경험되는 와중에 혼란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이 이야기는 길게 풀어 쓰고 싶은 것이기도 하지요. 갈림님도 논문 잘 진행하시길 바랍니다. (혹 제출하셨는지도.)
Commented by 갈림 at 2006/03/30 19:30
키위/ 논문 제출일과 심사일이 점점 다가오고 있지요. 키위님도 하시는 공부 잘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길게 풀어놓은 키위님의 글,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Commented by b at 2006/04/01 18:24
한 번은 육아카페에 어떤 님이 아기 때문에 직장을 그만 둬야 될 것 같다는 글을 썼길래, "애는 엄마가 키워야 된다"는 말이 당사자에게는 희생을 강요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책임회피를 낳는 것 같다, 일의 여부와 관계없이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주위에 협조를 구해라는 요지의 글을 썼는데...익명으로 썼기에 망정이지...댓글이 50개 넘게 올라왔는데 애는 당연히 엄마가 키워야 하는 거 아니냐, 님은 그럴려면 왜 애를 낳았냐 등등의 벌떼와 같은 공격을 당했다는...그래서 한동안 음...나의 모성에 문제가 있나 반성했다구요. 아마도 그 엄마는 누님을 보고 아니 어떻게 가면을 만드는 중차대, 과중한 일을 아이한테 시킬 수 있냐, 그러고도 당신이 엄마냐 그랬을지도 몰라요 ㅋㅋ
Commented by 갈림 at 2006/04/03 17:16
b/ 강의 시간에 '어머니'란 단어에서 연상되는 다른 단어를 떠올려보라고 매 학기 해보았더니, 대개 '사랑', '바다', '따뜻함', '화수분' 등을 말하더라. 그래서 그런 연상작용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란 당연히 희생해도 되는 존재인 양 자신의 무의식을 형성할 우려가 있다고 얘기하곤 했었지. '모성'이란 것이 본능적인 것인지, 아닌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스스로에게, 그리고 자녀에게도 폭력적인 의식이 되어가는 현상. (근데, 간혹 자신이 낳은 생명에 대해 심하게 소홀한 사례들을 뉴스에서 보게되기도 하잖아. 그럴 때는 또 다른 느낌이 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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