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혹은 절도

제목이 좀 자극적이다.

어제 내 차가 '테러'를 당했다. 멀쩡히 세우둔 차를 누군가 긁고 가거나 차바퀴에 빵꾸를 내거나 하는 일을 일컬어 '테러'라고들 한다. 그런 테러 중에서도 아주 고전적 방식의 테러를 당했다.

어제 오후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전날 밤 아파트 관리사무소 앞길쪽에 세워둔 차를 지하주차장으로 옮겨두고 나서 버스를 타고 나가려고 했다. 차를 지하주차장에 주차하고 나서 보니, 눈이 조금 내려서 이미 앞 유리창에 얼룩이 졌길래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헉!

와이퍼가 굉장히 짧은 팔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와이퍼 블레이드는 어디론가 사라진채, 고정대만 부끄러운 손놀림으로 유리창 앞을 왔다갔다 하는 것이었다. 전날 밤에 멀쩡히 작동되었던 와이퍼였으니, 하루사이에 누군가가 떼어간 것이 틀림 없었다. 그것도 양쪽 다.

오늘 오전엔 다행히 눈비가 내리지 않아서, 할인점에 가서 와이퍼 블레이드를 사다 끼웠다.

아마도 아파트를 오가던 어린 아이들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바이지만, 범인을 잡을 길은 없을테고, 그저 그 정도 '절도'에 그쳤음을 다행으로 여기는 수밖에 없을 듯 싶다.

어린 시절, 내 친구들 중에도 차 와이퍼나 차 뒤쪽의 로고를 떼어 훔치는 것을 자랑삼아 즐기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 시절 도시가 아닌 곳에서는, 혹은 그보다 더 예전에는 '수박서리'를 무용담으로 얘기하는 것이 당연시 되기도 했었다.

문득, 아니 예전부터 든 생각이지만, 흔히 '초딩'이라 불리는 어린 아이들에게 무엇이 '죄'인지를 가르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죄'와 '법'으로 협박하지는 말되, 그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어차피 '법치국가'를 지향하는 바라면. 정말, '겁 없는 아이들', 아니 '해도 되는 일과 안되는 일을 구분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 (사실은 늘 그랬듯) 넘쳐난다. (어디 아이들 뿐이겠는가만.)

오늘 저녁에 뉴스를 보니, 대학 입시 원서접수때 고의적으로 접수 사이트를 다운시켰던 아이들이 입건되었다고 한다. 죄의식 없이 '죄'를 짓는 사람들이 어디 그들 뿐이었겠는가만, 뭔가 씁쓸하고 안타까운 기분이 든다.

아마 오늘(아님 내일이라)도 TV에서는 연예인들이 나와 학창시절 '컨닝'했던 이야기며, 목욕탕 훔쳐봤던 얘기며, 선생님 치맛속 들여다봤던 이야기며, 부모님 지갑 슬쩍 했던 이야기며, 심지어 '패싸움'하거나 '삥' 뜯었(겼)던 이야기 따위를 '추억'이란 이름으로 무용담처럼 히히덕거리며 떠들어댈 것이다.

한가지 더.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주장하던 사람이 자신에게 인터넷 상에서 욕설을 퍼부은 사람들을 고소하자, 오늘 변호사 겸 국회의원 하나는 그 욕쟁이들을 위해 무료 변론을 하겠다고 나섰단다.

by 갈림 | 2006/02/10 20:44 | 日常 ::: 나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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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올빼미 at 2006/02/10 22:35
안타까운 사연이군요.. 설마 "만능키"를 만드려고 떼어가진 않았겠죠?
(요즘 애들도 만능키란걸 만들려나... ㅡ_ㅡ;)
Commented by 아우라 at 2006/02/11 01:03
어이쿠, 그나마 와이퍼쪽이라 불행중 다행이라 할수 있네요.
전동식 사이드 밀러 뿌셔버리거나, 흉하게 긁어놓으면 그 흥분지수가 이루 말할수 없는데 말이죠...^^
Commented by 갈림 at 2006/02/11 02:28
올빼미/ 안그래도 와이퍼에서 떼낸 걸로 오락실 만능키(?) 만들었던 그 시절 친구들이 기억났답니다.

아우라/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지요 ^^
Commented by bindoong at 2006/02/11 19:35
좀 늦었지만 올해 액땜이라고 생각해라...
Commented by 갈림 at 2006/02/12 10:47
bindoong/ 그 정도 액땜이라면 참을만하지, 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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