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스크린쿼터

얼마전 재경부 장관의 발표와 함께 기습적으로 '스크린쿼터' 제도가 축소되게 되었다. 이에 영화인들의 반발이 거세다. 반면 여론은 찬반으로 갈려 비교적 팽팽한 상태인 듯 보인다. '문화주권'을 내세운 스크린쿼터 옹호론이 있는가하면, '한국영화자생력'을 내세운 축소불가피론도 만만치 않다.

1988년.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위험한 정사'가 슈퍼301조를 등에 업고 UIP 직배로 개봉되었을 때, '직배반대투쟁'을 하던 사람들은 그 영화를 상영하던 극장 안에 뱀을 풀어놓는 투쟁을 벌이기도 했었다. 지나친 투쟁 방식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만, '직배영화를 거부하자'는 여론은 어느정도 힘을 얻었고, 태흥영화사가 수입하여 '위험한 정사'와 같은 날 개봉한 '다이하드'는 반사이익을 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1990년 말 당시 서울 극장가의 핵심이었던 '서울극장'에서 '사랑과 영혼'이 UIP 직배로 상영되고 흥행에 크게 성공하면서, '직배' 논쟁은 수면 아래로 잦아드는 듯했다. IMF 직후였던 1998년초 '타이타닉'의 개봉과 함께 극장가에서는 또다시 '애국심' 논쟁이 벌어졌지만, 금세기 들어서 '직배' 여부를 문제 삼는 경우는 좀처럼 보기 어려웠다.

'스크린쿼터' 투쟁은 99년도에도 있었다. 당시 여론의 지지 속에서 영화인들은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국회결의안'을 얻어내는 성과를 거두며 투쟁을 마무리지은 적이 있었다. 7년만의 '기습'에 저항하는 영화인들의 이번 투쟁과 관련해서 몇가지 해프닝들이 벌어지기도 하나보다. 배우 박중훈씨의 1인 시위때는 전경들이 기념촬영을 요구하는 해프닝이 벌어지더니, 장동건씨의 1인 시위 때는 2천명의 취재진과 팬들이 몰려들어 경찰이 출동하고 시위장소를 변경하는 등 난장판이 벌어졌더란다. 경찰이 1인 시위자를 보호하고, 취재진과 몸싸움을 해야하는 상황 속에서, 인근에 있던 비정규직 노동자 1인 시위자가 떠밀려버리기도 했단다. 오늘은 수많은 영화인들이 모여 대규모 집회와 시위를 벌였고, 앞으로도 다양한 방식으로 투쟁이 벌어질 것이라고도 한다.

그 와중에 어제 1인 시위에 나섰던 최민식 씨의 발언이 미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결국 '밥그릇 싸움' 아니냐는 일부의 냉소적 시선을 의식한 듯, "영화계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밥그릇 싸움"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물론 최민식 씨의 발언이 영화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러한 인식과 같은 수준이라면 나는 적어도 이 싸움에 관련하여 그들을 지지하기 어렵다.

내 경우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화계에 몸담고 있는 온/오프라인 지인이 적지 않아서인지 지금의 '스크린쿼터' 싸움을 지지한다 안한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결론은 잠시 유보하고, 현실을 차분히 돌이켜보자.

지금이 한국 영화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으며 충분한 자생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주장을 인정하든 말든, 일단 현재의 상황을 보자. 2005년 한국의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한 총관객수는 1억 4500여만명. 그중 한국영화를 본 관객의 점유율은 59%. 최근 3년간 연속으로 50%를 넘은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대충 계산해보면 우리 국민 1인당 1년에 3편 정도의 영화를 봤고, 그중 절반 이상은 한국영화였다는 얘기다. 대단한 수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극장 관객수가 가장 많았던 것은 1969년으로 무려 1억 7300만명이 극장을 찾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총인구수가 3100만명 남짓이었으니, 국민 1인당 극장을 여섯번 가까이 찾은 셈이라 할 수 있다. 당시의 극장 환경을 고려한다면, 지금의 시기를 '활황기'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운 수준이 아닐 수 없다. 이 정도 수치도 1930-40년대에 비하면 대단하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1927년 260만명이던 '일제치하 조선' 땅의 극장 관객수는 1935년에는 880만명이 되고, 1939년에는 1722만명, 1942년에는 2640만명이 된다. 1940년대 이미, 국민 1인당 1년에 영화 한편은 관람한 셈인데, 당시의 극장 환경과 시스템을 고려한다면, 지금의 극장은 파리 날린다고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자료 : 천정환 "근대의 책읽기" + 이효인 "한국영화역사강의" + 영화진흥위원회 통계 + 통계청 자료실)

하지만 거꾸로, 현재의 TV, 인터넷을 비롯한 매체 환경(특히 불법복제와 다운로드가 판치는 현실)을 다시 고려에 넣는다면, 현재 극장과 영화가 상업적으로 대단히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그만큼 극장은 커다란 이익을 거두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극장이 누리고 있는 이익의 절반 이상은 바로 '한국영화'가 거두어준 수입이다.

흔히 1980년대에 한국 영화는 가장 큰 침체에 빠져 있었다고들 한다. 1969년을 전후로 하여 정점에 올랐던 총관객수는 점차 줄어들어 1980년대에는 4500만명대에 머무른다. 당시 한국영화의 점유율은 대개 30% 수준. 사실 총관객수가 60년대 이후 최저였던 건 1996년으로 4220만명이었고, 한국영화 점유율이 가장 낮았던 건 1993년으로 15.9% 수준이었다. 1985년부터 40%로 상향조치된 '스크린쿼터'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를 극장에서 보면 돈 아깝다"는 생각이 보편화되어있던 시기였고, 극장들은 한국영화 걸기를 꺼려하기 시작한다. 대개 영화제작을 겸업하던 당시의 메이저 극장주들(서울극장, 씨네하우스, 피카디리 등)은 돈 안되는 영화제작에는 서서히 손을 떼고 극장업에 전념하기 시작하였다. 1995년 영화주간지 '씨네21'과 월간지 '키노'가 잇달아 창간되기도 했지만, 관객들은 한국영화를 외면하고 있었다. 1992~1996년의 한국영화 총관객수는 연간 1000만명에도 못미쳤다. 그런데 97년 접속, 98년 쉬리가 소위 '대박'을 치면서 한국영화 관객은 비약적으로 늘어난다. 비슷한 시기, 강변 CGV를 시작으로 멀티플렉스들이 속속들이 생겨났고, '삼성영화사업단'과 같은 대자본도 영화계를 기웃거리면서, 한국영화는 '중흥기'를 맞이했다고 평가받는다. 이번 주말이면, '왕의 남자'가 사상 세번째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하는 한국영화로 등극하게 되는 상황이다.

분명 지금 현 시점만 놓고 보았을 때, 한국영화는 상당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빈수레만 요란한 해외시장은 차치하고라도, 국내 영화팬들은 발전한 '한국영화'에 길들여져가고 있다. 마치 미국 영화팬들이 그러하듯, '자막 읽는 게 싫어서, 혹은 익숙치 않아서 외국 영화는 안본다'는 관객들도 존재한다. 불과 10년전 최악의 시기를 겪었던 것이 사실일까 싶기도 하다. 스크린쿼터 덕분에 그같은 '최악의 시기'를 견뎌낼 수 있었던 건 분명하지만, 지금의 상황 호전이 순전히 '스크린쿼터' 덕분만이 아님도 명백하다.

한국영화의 중흥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우수인력의 유입'이라 생각된다. 가장 암울하던 90년대 이후, 좋은 영화(주로 해외영화)를 많이 즐긴 수많은 '인재'들이 영화계로 진입했고, 국내외에서 정통 영화 교육을 거친 이들중 적지 않은 수가 기존의 '도제시스템' 속에서도 성공적으로 충무로에 자리잡을 수 있었다. '인력'의 재능은 곧 한국 영화의 힘이 되었다. 감독이나 주연 배우를 제외하고, 일반 스탭이나 조연급 배우들의 능력만 놓고 과거와 비교하자면, 그야말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한가지 요인이 있다면, 영화 산업 전반의 변화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씨네21'에서는 매년 영화계 권력 순위를 발표하곤 했는데, 90년대 후반 부동의 1위를 차지했던 것은 바로 '강우석' 당시 시네마서비스 대표였다. '달콤한 신부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나는 날마다 일어선다' 등으로 재능을 보여주긴 했지만 강우석 감독이 일순간 한국 영화계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바로 1993년 '투캅스' 덕분이었다. 앞서 말했지만, 1993년은 '한국영화의 관객점유율'이 최저점을 찍었던 시기였다. 1993년, '한국영화의 최악의 순간'에 '두가닥 희망'으로 등장한 것이 '투캅스'의 강우석 감독과 '서편제'의 임권택 감독이었다. 주지하다시피, 강우석 감독은 그후 '시네마서비스'를 세우고 영화 배급권을 장악해나갔고, 임권택 감독은 평론가들로부터도 '언터처블'의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사실, 그전까지는 서울극장과 합동영화사를 운영하던 곽정환 대표가 전국의 영화 배급권을 장악하였는데, 시네마서비스의 등장으로 인하여 서울의 대형 '극장주'가 아닌 '전문 배급사'가 영화판을 장악하게 된 셈이었다. 곽정환 사장이 전국의 극장을 장악한 것도 사실 '직배영화사'의 공세로 인하여 위기를 겪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사랑과 영혼' 개봉 무렵 '직배영화'를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파트너 관계를 맺은 곽정환 사장의 선택은, 그를 영화계의 큰 손으로 자리매김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곽 사장은 오랜만에 직접 제작에 나선 '애니깽'이 1996년 대종상 작품상을 수상하는 데에 무리한 영향력을 행사하다가 '비토세력'의 공세에 시달리기도 했는데, 그 와중에 강우석 감독은 영화계 권력 1인자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1천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둔 '왕의 남자'는 사실 개봉 무렵 홍보도 제대로 못하고, 스크린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었다. CJ가 배급을 맡은 '태풍'과 '쇼박스'가 배급을 맡은 '작업의 정석', 그리고 UIP 직배의 '킹콩'에 밀린 탓이었다. '왕의 남자'의 배급사는 강우석 감독마저 떠난 '시네마서비스'. '왕의 남자'에도 밀린 코리아픽쳐스의 '청연'은 더 비참한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지금의 한국 영화계의 권력은 배급과 극장을 동시에 장악한 대기업의 손아귀에 들어있다. 그들이 주도한 '경쟁의 논리'는 몇몇 한국 영화의 상업적 성공에 보탬이 된 것이 사실이다. '태풍'과 '킹콩'의 대결이 보여주듯, 그들은 해외직배사보다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직영 극장 체인 CGV(참고로 강변과 명동 CGV는 직영이라 보기 힘들다)를 갖고 있는 'CJ 엔터테인먼트'와 메가박스를 갖고 있는 동양오리온 그룹 산하 '쇼박스'가 현실적인 양강체제를 이루고 있다. 막강한 자금 동원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롯데시네마'와 충무로 자존심을 내세우는 '시네마서비스'도 이들에는 많이 밀리는 형국이다. 롯데와 CJ의 대결은 최근 '홀리데이'의 상영을 둘러싼 다툼으로 표면화되기도 하였다. 현재 CJ와 동양오리온이라는 대기업을 배후에 둔 이들 '양강'은 제작에도 직간접으로 간여하며, 영화계를 사실상 장악한 상황이다. 불과 4,5년 전만해도 영화계의 '권력'으로 군림하던 신씨네, 싸이더스(舊 우노필름), 명필름, 강제규필름 등 '제작사'들도 작년을 계기로 이들 '양강'의 파워에 비하면 '약자'로 보이는 상황이다. 전혀 다른 영화관(映畵觀)을 보여주었던 명필름과 강제규 필름은 이미 'MK픽처스'로 합병하면서 생존의 길을 모색했고, 강우석 감독은 '시네마서비스'와 CJ의 합병이 무산되자 대기업 배급사와의 경쟁을 포기하고 '감독'의 길로 돌아왔다. 천하의 임권택 감독도 강우석 감독의 지원이 사라지자, 롯데시네마에 '뒤통수'를 얻어맞으며 100번째 영화의 제작 포기 일보 직전까지 내몰렸었다. (임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의 제작을 새롭게 맡은 '키노2'의 김종원 대표는 바로 영화전문월간지 '키노'의 대표였던 사람이며, 그를 임권택 감독 영화 제작에 나서도록 등 떠민 사람은 다름 아닌 임감독의 열혈팬인 평론가 정성일 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CJ와 쇼박스는 현재 영화 제작에도 손을 대고 있으나, 이것은 '한국영화'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진 것일 뿐, 이들이 영화 제작을 '주업'으로 삼으리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2005년 쇼박스의 예에서 보듯, '말아톤'이나 '웰컴투동막골' 같은 '의외'의 대박 영화를 내놓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이들은 헐리웃 메이저들만큼의 '특성화'된 제작 전략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CJ'가 예술영화전용관을 도입한 것이나 '디지털 상영'을 발빠르게 시작한 것을 볼 때, 이들의 자금력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도 만만치 않음을 엿볼 수도 있다. 어쨌든 이들은 현재 한국 영화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헐리웃 영화' 보다도 '한국영화'(제작이든 배급/상영이든)가 그들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 싶다.

그들에게 수입을 안겨주는 관객들의 영화관람요금은 극장과 제작-배급사가 나누어 가져간다. 현재, 극장 대 제작-배급사의 수입비율, 즉 '부율'은 한국영화의 경우 5 대 5인데, 외국영화는 4 대 6이다. 쉽게 말해서, 극장요금 6000원을 내고 한국 영화를 보면 제작사가 3000원을 가져가는데, 외국 영화를 보면 배급사가 3600원을 가져간다는 것이다. 똑같이 관객이 들어온다고 보았을때, 극장측 입장에서는 '한국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보다 이익이다. 어쩌면, 현재 한국 영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는 바로 이 점일지도 모른다. 이런 부율은 과거, 극장에서 한국영화를 걸기를 기피할 때 생겨난 것이다. 당연히 지금의 제작사들은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 CGV와 메가박스의 '권력'에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제작자는 아무도 없기에, 이 문제는 크게 공론화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제작자들은 올해 들어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기로 했었으나, 지금 스크린쿼터 논쟁에 파묻힌 상황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 영화가 아무리 점유율을 높여가더라도, 대기업 극장측의 눈치를 보는 가운데, '도박'과도 같은 '흥행' 전쟁을 벌여나가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한국영화계' 전반, 즉 제작자-감독-스탭-배우들이 함께 발전하며 '성공의 과실'을 나눠먹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영화의 제작자들은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대개가 최근까지 빚더미에서 지낸 사람들이다. '왕의 남자'를 제작하고 직접 감독한 씨네월드 이준익 대표도 '왕의 남자'가 목표를 크게 상회하는 700만명을 돌파하고서야 '빚더미'에서 해방되었다고 한다. 다수의 제작자들은 한국영화가 점유율 20%선 아래로 떨어졌던 경험을 갖고 있으며, 그런 '최악의 시기'가 도래했을 때 '스크린쿼터'만이 그들을 지켜줄 최후의 보루라고 믿고 있다. 그것만이 '도박'과 같은 영화 흥행판에서 그들이 판돈을 잃고도 대반전을 노리며 게임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기 때문이라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도박심리'가 정상적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자본이 넘쳐나는 헐리웃이 아니라면 그래서는 안되는 것 아닐까. 한국 영화의 안정적 발전은 '도박'과도 같은 '흥행 전쟁'에서 제작사와 감독들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환경에서 출발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수십억, 아니 백억도 넘는 돈을 쏟아부어가며, '한번의 대박'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 믿는 제작 환경이 유지되는 한, 자금력이 압도하는 대기업의 놀음에 영화계가 놀아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스크린쿼터 투쟁에서, 한국 영화계의 핵심인 대기업 배급사-극장은 찾아볼 수 없다. 어차피 이들의 관심사는 한국영화가 걸리느냐, 외국영화가 걸리느냐가 아니라, '극장에 관객이 오느냐, 안 오느냐'일 뿐이다. 당연하게도 '스크린쿼터'의 핵심은 '한국영화가 걸리느냐, 외국영화가 걸리느냐'이지만, 현재의 영화권력과 시스템이 유지되는 한, 한국영화의 발전은 이 문제만으로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영화계에서는 '한국영화의 안정적 제작 환경'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스크린 쿼터'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한국영화의 안정적 제작 환경'을 위해서는 부율 문제의 개선이 필요하며, '흥행도박'의 마인드가 뒤바뀌어야만 한다.

한국 영화가 '중흥기'를 맞이한 최근 3-4년간, 한국 영화의 연간 총제작편수는 7,80편에 불과하였다. 이는 1970년 무렵 2백여편은 물론, 90년 전후 1백편 선에 비해서도 크게 줄어든 수치이다. 1990년대 초반과 비교하자면, 한국영화의 총관객수는 10배 가량이 늘어났는데, 영화 제작 편수는 오히려 줄어든 상황이다. 지금 한국 영화는 '규모의 경제' 논리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상대적으로 적은 편수의 영화에 집중적으로 거액을 투자하고, 그 중의 일부가 '대박' 나기를 기대하는 논리말이다. 그 결과 양질의 영화가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스탭들의 처우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감독의 수명은 더욱 짧아지고 있다는 점이며, 그로 인해 '흥행에 대한 강박'은 더욱 극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자연스럽게 저예산 영화가 설 자리는 더욱 줄어들고 있기 마련이다. 분명히, '국산 저예산 영화'의 생존 문제는 '스크린쿼터' 문제와는 거의 관련이 없어보인다. 조금 미안한 얘기지만, '빈익빈 부익부'의 이념이 영화판을 장악한 상황은 영화인 스스로가 조장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러한 '판'이라면 '스크린쿼터' 폐지를 요구하는 미국측의 요구를 반박할 논리가 딸리는 것도 사실이다. 연휴 극장가를 장악했다는 이유만으로 수백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가 양산되는 한, 작고 소중한 영화들이 관객을 만날 기회조차 상실당하는 한, '스크린쿼터 지키기 투쟁'에 대한 여론이 좋아질리 없다.

한국 영화의 안정적 제작 환경이 유지되기 위해서, 아니 영화인들 '모두'의 '밥그릇'을 위해서라도, 영화계 내부의 치열한 투쟁과 반성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길게 이야기 했지만, '스크린쿼터' 문제에 대한 결론은 이제부터이다.'스크린쿼터'의 문제는 영화의 문제로, 영화의 논리로 접근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생각이다. '애국심'이나 '국가/민족'의 문제와는 더더욱 결별해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금, '스크린쿼터' 투쟁이 며칠간 이어지면서, 다행히도 전체적 방향은 올바르게 흘러가는 듯하다. '스크린쿼터' 투쟁은 '대한민국 국민의 밥그릇'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 대한 문제 제기로 향해야만 한다. '문화주권'이란 표현은 몰라도, 적어도 '한국 영화의 발전'이란 표현은 '스크린쿼터' 문제 해결이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스크린쿼터에 전세계가 주목한 것은 '그 덕에 발전한 한국영화' 때문이라기보다는, '신자유주의 무역 체제'에서 '문화예술' 장르만이라도 예외적으로 다뤄질 수 있다는 '담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투쟁을 위해서는, '농민들 시위할때 영화인들은 무엇을 했는가'라는 때늦은 비난보다는 이제부터라도 '농민들과 영화인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스크린쿼터' 제도를 유지해야한다는 명제 자체는 지지한다. '영화인들의 현재 투쟁'에 대해서도 일단 지지한다. 다만, 그들이 지금까지 쌓아올린 대중적 힘을 바탕으로 '연대'의 손길을 어떻게 구성하고 형성하는가를 반드시, 그리고 지속적으로 주목할 것이다.

p.s. 그런데 김규항씨의 에 살짝 나도 아프다.

p.p.s. 그러나 무엇보다 문제는, '나' 자신은 무엇을 하고, 또 할 것인가를 묻는다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는 점이다.

by 갈림 | 2006/02/08 23:08 | 談話 ::: 기고/생각들 | 트랙백(1)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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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판타스틱 청년백서 at 2006/02/09 11:27

제목 : 알아서 기는 것.
스크린쿼터를 축소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나오고 난 뒤에 벌어진 흙탕물 게임에서 이제는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혀가는 느낌이 든다. 스크린쿼터라는 문제에서 결국 그 본질인 FTA의 문제로, 그래서 연대가 확장되어 가는 중이다. 물론 일반 사회에서야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 없다는 게 정답이기도 하다. 개방과 발전은 국익이라는 우상숭배의 전위이기 때문이고. ‘경제가 발전한다면 스크린쿼터 없앨 수도 있다(이 부분은 편집된 기사로 인한 오해였다)’는 ......more

Commented by bindoong at 2006/02/09 08:05
김규항 씨의 의견에는 나도 동감이오........나머지 것들은 개인적으로 의견을 표출하기에는 그곳에서 직접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보다 더 잘 알고 있는 문제일 것이므로 패스...글 잘 썼다고 칭찬은 해주지 푸하하하하, 논문도 이렇게 잘 쓰거라.
Commented by dakdoo at 2006/02/09 11:26
이번 집회에서 가장 보기 좋았던 게 농민대표가 참석해서 지지 및 연대를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막아내고 영화 현장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진짜 밥그릇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뤄졌으면 합니다.
Commented by 아우라 at 2006/02/09 12:16
싸움의 본질에 대한 접근은 백프로 동감합니다. (그렇잖아도 그것에 관한 포스팅을 오늘 하려고 했습니다.) 또한 내부적인 문제(공정분배, 시스템의 개선등) 인식에 대해서 역시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기때문에 더더욱 쿼터는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등가죽과 뱃가죽이 붙어있을땐 나외에 어느누구 쳐다보기 힘듭니다. 영화산업노조가 지금 시기에 설립된 이유도 어찌보면 어느정도 산업적인 여유가 생겼기때문이겠죠. 이제 겨우 올라왔는데 추락하라니요. 유지가 되어야 합니다.
Commented by 갈림 at 2006/02/09 15:29
bindoong/ 하하하.. 칭찬은 고맙소. 논문 팽겨쳐두고 쓴 글이니... ㅡㅡ;;

dakdoo/ 정말 그런다면 좋겠네요.

아우라/ 내부적인 문제에 대해서야 우라님이 더 잘 아실테지요. 우라님의 새포스트도 잘 읽어봤습니다. ^^
다만, 영화계 내부에서 '연대'의 의미에 대해서 정말 진지하게 토론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좀 더 이번 투쟁에 잘 반영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힘내시고, 힘차게 싸우십시오. ^^
Commented by 자작나무 at 2006/02/13 04:23
긴글이지만 쉽게 잘 읽힌다. 고민 많이 하고 쓴 흔적이 보이는구먼... 나도 스크린쿼터 제도 자체를 다시 한번 제고해봐야 한다고 봐. 예전처럼 민족주의나 애국심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풀기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야. 결국 자본의 문제인거 같다. 스크린쿼터를 반대하는 입장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지. 문화주권, 문화민주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독립영화나 소수영화들의 문제가 적극적으로 다뤄져야 하고, 기존의 대기업투자 영화의 권리를 대변하는 방식은 적합하지 않다고 봐.

이제 논문쓰기 시작했나봐~ 좋은 논문 써거라~
Commented by 갈림 at 2006/02/14 01:02
자작나무/ 고마워요, 형~ ^^;
저도 궁극적으로는, 스크린쿼터를 좀 더 세밀하고 면밀하게 다듬어 유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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