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두 분 대통령의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학기말의 이모저모

나도 대학을 다녔지만 성적에 크게 연연했던 기억은 별로 없다. 물론 성적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나온 성적에 대해 불만을 표하거나 항의를 해본 적은 없다는 얘기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알지만, 성적은 그리 좋다고 할 수도 없고 아주 나쁘다고 할 수도 없는, 그런 정도였다.

요즘은 수능 시험을 봐도 '이의 신청 기간'이 있고, 중고등학교 시험에서도 비슷한 절차가 있나보다. 대학에서도 '성적 정정 기간'이 있다. '수강 신청 변경 기간'이나 '수강 취소 기간'에는 관심을 둔 적 있지만, '성적 정정 기간'이 예전에도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암튼 그런 게 지금은 있다.

기말이 되면 강의가 끝나서, 멀리까지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참으로 좋다. 문제는 두가지인데, 하나는 강의가 없으므로 수입도 없다는 것. (실질적 백수가 되었단 얘기다.) 둘째는 기말 성적과 관련하여 학생들과 실랑이를 벌여야한다는 점이다.

물론 성적 처리 과정이나 입력 과정에서 오류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런 것에 대해 수정을 요구하고 정정해주어야함은 마땅하다. 그런데, 문제는 오류에 의한 수정이나 정정이 아니다. 성적 입력이 끝나면 어이없는 항의 공세들로 상당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곤 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이하의 여러 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렇다. : 요즘은 '개념'을 프루나에서 다운받나보다. 문제는 이 프로그램이 '스파이웨어'랑 같이 인스톨되다는 점이며, 나날이 본분을 망각한다는 점이다. '초딩'들 욕하지만, '대딩'들도 만만치 않다.) (그러는 너는?)

밤 늦은 시간이고 아침이고 없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서
"저기요, 이번 학기 수업 들은 아무개인데요, 제 성적이 왜 그것밖에 안나왔나 궁금해서요." 라고 묻는 학생.
(식당에서 사람 부르나, 저기요라니. 하긴 수업 시간 중에도 대놓고 이렇게 부르는 학생들 많다. 근데, 이름만 대면 솔직히 난 자네의 성적은 물론이고, 어느 학교 학생인지조차 알 수 없단 말이다. 보따리 장수 체면에, 근데 어느 학교죠라고 묻기도 쑥스럽다.)

학기 초 잠깐 보이다 한번도 안보여서 휴학한 줄 알고 있었는데, 기말고사에 나타나 시험 답안 대신 편지쓰는 학생.
(사실 기말고사 때 나타나기라도 하면 다행. 성적처리 기간 막판에 전화해서 졸업은 꼭 해야한다고 조르는 4학년 학생. 취업 유지되려면 C 이상 나와야한다고 자기가 받을 성적까지 지정해주기도 한다. 이 정도면 거의 협박수준.)

장학금을 받아야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내세우면서 자신은 A를 받아야겠다고 주장하는 메일을 보내는 B 받은 학생.
(리포트 한 두개 안내고 결석 두어번한 거밖에 없는데, 왜 B밖에 안주는 거죠라고 따지기도 한다. 더 문제는 상대평가가 적용되는 교양과목이라 설령, 이 학생을 B에서 A로 올려주고 싶더라도, 다른 학생 하나를 A에서 B로 깎아내려야만 가능한 일이란 점이다. 사실 별 문제는 아니다. 한번도 이런 요구에 응한 적 없으니.)

아직은 성적 처리를 하는 중이라, 성적을 확인한 학생들의 공세에 시달리기 이전이지만, 성적 입력이 완료되고 학생들이 성적을 확인할 연말 연시가 벌써 조금은 두렵다.

그런데, 며칠전엔 메일 하나를 받았다. 비교적 출석도 열심히 한 편이고, 4학년이어서 어렴풋이 기억은 있는 학생 하나가 메일을 보내왔다. (간혹 자신의 학번과 이름도 밝히지 않고 메일을 보내와서 이런 저런 사정을 하소연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나마 이 학생은 이름과 학번은 밝혔다.)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고서, 집안 사정 때문에 부득이하게 기말고사를 치르지 못했으며, 그로 인해 성적을 못받으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요"라며 하소연을 해온 내용이었다. 요컨대, 시험을 못봤으니 다른 방법으로 시험을 대체할 수 있는 안을 제시해달라는 요구였다. 정황상 약간은 융통성은 발휘해줄 수 있는 경우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학생의 메일 자체에 있었다. 메일에는 제목이 없었고, (그걸 휴지통으로 버리지 않고 내가 열어본 것은 그 학생에겐 크나큰 행운이었을텐데.) 메일을 보내온 사람의 '닉네임'만 '보낸 사람 이름'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물론 메일을 열어보았을 때는, 학번, 이름과 사연이 담겨 있었지만 말이다.)

'메일 보낸 사람'의 이름, 즉 닉네임은 무려!


'뻥쟁이'였다.


대학생들이여, 아니 또 다른 그 누구이든!
격식을 차려야 할 메일을 보낼 때는 자신의 메일 '닉네임'이 무엇이라 되어 있는지 정도는 확인해주길 바란다.

by 갈림 | 2005/12/19 12:42 | 日常 ::: 나 | 트랙백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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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요연 at 2005/12/19 12:55
하하 결국 그 뻥쟁이 학생한테 재시험을 보게 해주셨나요?
저도 교수님들께 정정기간에 했던 만행;(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갈림님 글을 읽고 생각해보니깐 좀 버릇없는 행동이었을 것 같아요) 들이 생각나서 좀 뜨끔하네요
Commented by 사막여우 at 2005/12/19 13:43
성의를 보이라구 해요. 짜식들이 날로 먹을려구 해! 그거 간단하게 성의만 좀 보이면 오빠 수입도 유지되고... 응...? 그럼 잡혀갈려나.
Commented by 갈림 at 2005/12/19 17:01
요연/ 대체 리포트를 내주었지요. ^^;

사막여우/ 응, 잡혀가. ㅡㅡ;
Commented by bindoong at 2005/12/19 18:07
역시 닉네임은 잘 생각해서 지어야 하는 것이로군....그럼 나도 닉네임을 다른 것으로 바꿔 볼까나 이미지 개선 용으로 ^ ^a
Commented by 갈림 at 2005/12/20 00:19
bindoong/ 외국인들만 상대한다면 별 문제가 있겠소. 흐흐
Commented by seal at 2005/12/20 10:59
심지어 이력서 보낼 때도 저런 닉 그대로 보낸다 하니, 세상 참 말세요-_-
(학교 교무부장 선생님의 증언임)
Commented by 갈림 at 2005/12/21 00:52
seal/ 말세랄거까지야 있겠냐만은 거참... ㅡㅡ;
Commented by 年末膳物 at 2005/12/22 12:20
< 갈림 양치기 소년 vol.16>

"늑대가 나타났다"
마을 사람들이 목장이 있는 고원에 올라가려면 궤도열차를 타야만 했다.
그런데 양치기의 외침은 열차로부터 점점 아득히 멀어지고 있었다.
양치기는 이때, 궤도가 양쪽으로 갈라지던 지점에서 방향조작기를 잡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 by 肋帶
Commented by 갈림 at 2005/12/22 13:15
연말선물 or 늑대/ 고마워요, 선물. (근데 좀 난해하군요.)
Commented at 2005/12/22 13:3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갈림 at 2005/12/22 14:33
비공개/ 아, 뉘신지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잘 지내시죠? ^^;
Commented by 재도리 at 2005/12/22 22:22
같은 보따리 장수로서 절대 동감이요..-_-+ 그래도 저는 어느 학교죠는 안물어도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저 역시 얼마전 겪은 황당 일화가 있죠..성적 올려달라며 불나게 전화질 하소연하던 여자애..하도 귀찮아서 올려줬더니 제딴엔 감동받아서 끝판에 친한 척이라도 하고 싶었던지, 용케 제 싸이로 찾아와서는 방명록에다 기껏 한다는 소리가 이제보니 자기랑 나이가 비슷하다면서 앞으로 언니라 부르면 안 되겠느냐, 종종 놀러오겠다...이러고 사라진 거 있죠? 우씨, 이 재도릴 물로 보는거야 뭐야...-_-+
Commented by 갈림 at 2005/12/22 23:53
재도리/ 그 아이도 '개념'을 프루나에서 다운받았나보구나..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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