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14일
[리뷰] 킹콩 (King Kong 2005)
<고무인간의 최후>, <데드 얼라이브>, <천상의 피조물들>을 만들던 피터 잭슨이 '반지의 제왕' 프로젝트를 맡았다는 얘기가 흘러나왔을 때, 그의 팬들조차도 성공을 의심하기 마련이었다. 피터 잭슨이 '킹콩' 리메이크 프로젝트를 구상중이라는 얘기에 제작사들이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던 것도 당연할 일이었다. 그러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대성공 이후, 그의 <킹콩> 프로젝트는 어느 제작사라도 달려들만한 '황금알'이 되어 있었다. 2005년 피터 잭슨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 '킹콩'은 감독에게 연출비만 200억원을 건넸고, 총 제작비 2000억원을 넘는 엄청난 규모가 되어버렸다. 같이 개봉한 국내 최대의 대작 <태풍>이 제작비 150억원을 들였다고 하니, 왠지 초라해보일 지경이다.피터 잭슨의 <킹콩>에 대해 개봉 전부터 흘러나온 평들은 워낙 대단한 것이었다. '리메이크 영화의 모범'이란 말부터 '피터 잭슨은 오손 웰즈 이후 최고의 천재 감독', '영화가 사라지는 미래에도 이 영화는 살아남아 있을 것'이라는 찬사까지 온갖 수사가 다 동원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찬사에 대해 '한마디로 공감'이라는 것이다.
천편일률적인 '찬사'의 러시는 일단 의심하고 보는 게 타당할 때가 더 많은 터, 일단 <킹콩>을 비난하거나 비판할 거리부터 찾아보자. (억지스럽게) 꼽아보자면 첫째, '뻔한 스토리'다. 둘째, '마초적'이다. 셋째, '원시와 문명에 대한 태도가 불분명'하다. 뭐, 대략 이 정도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1933년 원작 <킹콩>은 1976년 제시카 랭 주연으로 리메이크 되었고, 이번에 다시 리메이크되었다. (1960년대 일본에서는 '킹콩 對 고질라'라는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 점을 특히 주목하라.) 이번 작품 역시 그다지 새로운 내용은 없다. 아니, '엔딩'까지 고스란히 '다시 만들기'를 했다고 보면 된다. 팀 버튼이 2001년 리메이크했던 <혹성탈출>과 같은 '반전'도 없다. 사실, <킹콩>의 스토리는 워낙 널리 알려져 있고, <고질라>, <쥬라기공원>, <딥블루씨>와 같은 영화들 모두가 그 스토리 라인과 캐릭터들을 차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뻔한 스토리'라는 비난은 애초에 <킹콩>에겐 가당치 않은 공격이다.

(이하 스포일러 약간 포함)
이 영화가 '마초'적이라는 것은 터무니없지는 않은 얘기다. 콩이 앤(나오미 왓츠)에게 접근하는 태도, 그의 사랑의 방식은 전형적인 '마초'의 그것이다. 그러나 거대한 공룡과 함께 정글에서 생존 경쟁을 벌여야 하는 콩에게 그런 비난을 가하는 것이 합당해보이지는 않는다. 콩에게 'King'이란 이름을 붙이고 공연 무대에 올린 '문명인(?)들'이나 초식동물인 콩에게 '살아있는 인간 제물'을 바치는 '원주민(?)'들이 마초적이라는 비판이라면 그것은 합당하다고 할 수 있겠다. 더욱이 이 영화 속의 '앤'은 과거의 <킹콩> 영화 속 여주인공들에 "비해" '콩'에게 비교적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고 교감하고 있다.

피터 잭슨의 <킹콩>에서 전작들과 비교되는 지점은 역시 실감나는 '그래픽'이다. 이 점에 대해선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다. 그저 좋은 영화관에서 관람하시란 말밖에 전할 길이 없다. 아울러 이 영화를 스필버그나 루카스, 심지어 버호벤이나 카메론이 본다면, 그들 각자가 엄청나게 자존심 상해할 것이 틀림이 없다는 말만 보태놓겠다.

사실 피터 잭슨이 만든 <킹콩>의 화면에 시종 압도당하면서, 세시간의 런닝타임이 어떻게 지나갔나 모르게 손에 땀을 쥐며 빠져들면서도, 이 영화의 내러티브가 애초에 담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지적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원작인 <킹콩> 이외에도 <구니스>, <인디애나 존스>, <쥬라기 공원>, <지옥의 묵시록>, <타이타닉>, <스타쉽 트루퍼스>, 심지어 자신의 전작 <반지의 제왕>까지, 거의 모든 헐리웃 대작 영화들을 하나하나씩 능가하는 장면들을 보여줄 때에도, '돈과 기술'이 영화의 전부가 아님을 역설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센트럴파크의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펼쳐지는 '로맨스'를 바라보면서, 그 모든 게 무의미해지는 느낌이었다. 분명한 것은 피터 잭슨의 <킹콩>은 '환타지'라는, 영화란 장르의 진면목을 가장 스펙터클하게 보여준, 한마디로 '엄청난 영화'라는 점이었다. 그리곤, 조용히 '감탄'하는 일만 남았다. 물론, 타르고프스키나 피터 그리너웨이와 같은 이들이 이 영화의 정반대쪽 정점에 여전히 서있게 되겠지만, <킹콩>이 보여준 스펙터클하고 환상적인 스릴과 로맨스도 또 한쪽의 정점에 서게 될 것이란 점을 의심하긴 힘들 것이다.
p.s.1. 이 영화를 보는 동안, 지난 가을 출몰했던 굶주린 '멧돼지 떼'들이 떠올랐다. 미안하다, 야생의 동물들이여. 모든 것이 인간의 욕심이 가져다 준 재앙일지니.
p.s.2. 뉴질랜드에 재현된 1930년대 뉴욕의 모습이나 '해골섬'의 모습이나 모든 것이 환상적이었다. 다만 해골섬에서 쫓겨다니는 장면과 후반 비행기 장면에선 다소간의 어색함이 엿보인다. 물론, 괜한 트집이다.
p.s.3. 킹콩에겐 허리 디스크가 있을까? 디스크닥터는 필요 없나?
+추가 p.s.4. rumic71님의 트랙백을 보고 추가.
초반부에 나오는 칼 덴험 감독의 대사를 놓치지 말 것.
"페이 레이를 불러보면 어때?" "RKO에서 영화 찍고 있어요." "쿠퍼꺼?"
(1933년판 감독이 메리안 C. 쿠퍼, 제작은 당시의 공룡제작사 RKO, 여자주연은 페이 레이.)

# by | 2005/12/14 19:55 | 談話 ::: 기고/생각들 | 트랙백(9)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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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Fish/ 가끔 올라와요.
저는 묘하게도 영화리뷰만 이오공감에 세차례 올랐네요. ^^
요연/ 정말 잭블랙이라서 좀 귀엽게 보이긴 하더군요. ^^;
휘빗/ 저도 딱 그런 기분으로 영화를 봐서 그런가봐요. 하핫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