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10일
[리뷰 아닌 잡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나 오늘 OO극장에서 영화봤다"고 하면, 곧 "아, 그 영화 봤구나"하고 알아챌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특정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서울 시내의 특정 극장을 찾아야만 하던 시절이었다. 가령 한국영화 100만 서울 관객 시절을 처음 열었던 <서편제>는 오직 단성사에서만 장기 상영되었었다. 그 시절, 극장과 영화는 나름의 상관 관계가 있었다. 가령 임권택 감독의 영화는 단성사에서, 트랜디한 분위기의 한국 영화는 피카디리에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영화는 국제극장에서, 헐리웃 액션물은 대한극장에서, 영화제 수상한 외국 영화들은 명보극장에서, 한국 영화 청춘물은 아세아/연흥 극장에서, 외국 멜러 영화는 중앙극장에서, 에로틱한 외국 영화들은 파고다 극장에서 주로 볼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한극장에서 흥행에 성공한 헐리웃 영화의 신문 광고에는 대한극장 앞을 가득 메운 인파를 찍은 사진을 실는 것이 '관행'처럼 되었고, 청춘 영화 보러 갔던 청소년들은 아세아 극장 주변의 무서운(?) 아저씨들 때문에 잔뜩 긴장하곤 했었고, 파고다 극장에서는 영화보다 더 X등급에 가까운 장면들이 극장 안에서 라이브로 벌어지곤 했었다.
물론 그 시절이 그립다는 얘긴 아니다. 당시 곽정환 사장을 비롯한 몇몇 극장주들의 파워는 지나치게 막강하여, 영화 감독의 생사여탈권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고, 그로 인하여 (일부) 감독과 배우들은 극장주들에게 로비를 해야만 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 때는 특정 극장 앞에는 오직 그 영화를 보기 위해 서울 각지, 아니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었다. 아무 영화나 보자는 심정이 아니라, 특정 영화에 대한 자그마한 애정이라도 있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것이었다.
강변 CGV11을 시작으로 대기업 멀티플렉스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질 것으로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다. 한 두 영화가 수백개의 스크린을 점령하게 되면서, 그리고 90년대 말 이후 '영화광'이 '대중 영화팬'들 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져가면서, 영화 선택의 폭은 오히려 줄어든 느낌이다.
미국 영화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이하 안내서)>는 국내에선 필름포럼 극장에서 단관 개봉을 했다. 흥행적 요소가 상당히 많은 작품이고, 미국과 영국에서 인기를 모은 작품이었지만, '영국식 유머 코드'에 대한 지나친 우려가 이 영화를 '필름포럼' 한 극장으로만 몰아 넣어버리고 말았다. '타월이벤트' 같은 컬트적 현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건 '단관개봉'의 장점이었지만, 그래도 이 영화가 외면받은 상황이 꽤 안타까울 정도로, 이 영화는 한마디로 '재밌다(!)'.
원작 소설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영화에도 그 재기발랄한 상상력은 충분히 나타나 있다. '돌고래와의 이별' 장면으로 시작되는 오프닝부터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우주 고속도로 건설'로 인한 '팡당 시츄에이션'은 그 정점에 서 있다. 놀라운 점은 그것이 영화 초반 15분 내에 이뤄진다는 것. (15분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구!) 그 이후에도 놀랄만한 상상력과 풍자는 계속 이어진다. 알타비스타의 '바벨 피쉬'를 연상케하는 '외계어 통역 물고기'나 별 도움 안되는 첨단 '안내서', 너무나 어설픈 (무려) '은하계 대통령' 등등 설정 하나하나가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줄 서는 건 자신 있는 영국인'의 모습이나, 머리가 너무 좋아 '우울증'에 빠진 로봇의 대사들, '깊은 생각' 컴퓨터의 '허무한 결론' 등등은 마구 웃다가도 찌릿한 느낌을 주는 대목들이다.
사실, 너무나 영국적인 코드들 때문에 내 스스로도 놓친 부분이 적지는 않았을 듯 싶다. 하지만 고리타분한 공무원들의 행정 관행을 비꼬는 '풍자'야 연암의 소설이나 판소리 문학들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접해왔던 '코드'라고도 할 수 있다. 거기에 '범우주적 상상력'을 살짝 보태기만 한다면 이 영화를 어렵게 느낄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된다.
몇가지 언급은 했으나 설정 하나 하나가 '재미'를 줄 것이기 때문에 자세한 언급은 안 하는 게 상책일 듯 싶다. (솔직히 본 지가 좀 오래되어 자세한 기억이 안 나는 관계로 리뷰를 하려다 포기했다) 필름포럼 상영이 끝난다면, DVD를 통해서도 꼭 한번 보기를 추천한다. 현재 우울하다면 더욱 더!
[또다른 잡설들]
1. 단관개봉임에도 불구하고 편집상 '실수' 때문에 삭제된 장면이 있다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
2. 동물원 가면 괜히 비싸고 불쌍하다는 이유로 보지 않았던 돌고래 쇼. 앞으로는 봐야겠다.

3. 이 사람, 범인(凡人)이 아닌 것은 알았지만, 앞으로 특히 주목해서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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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CGV11을 시작으로 대기업 멀티플렉스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질 것으로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다. 한 두 영화가 수백개의 스크린을 점령하게 되면서, 그리고 90년대 말 이후 '영화광'이 '대중 영화팬'들 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져가면서, 영화 선택의 폭은 오히려 줄어든 느낌이다.



몇가지 언급은 했으나 설정 하나 하나가 '재미'를 줄 것이기 때문에 자세한 언급은 안 하는 게 상책일 듯 싶다. (솔직히 본 지가 좀 오래되어 자세한 기억이 안 나는 관계로 리뷰를 하려다 포기했다) 필름포럼 상영이 끝난다면, DVD를 통해서도 꼭 한번 보기를 추천한다. 현재 우울하다면 더욱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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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관개봉임에도 불구하고 편집상 '실수' 때문에 삭제된 장면이 있다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
2. 동물원 가면 괜히 비싸고 불쌍하다는 이유로 보지 않았던 돌고래 쇼. 앞으로는 봐야겠다.

3. 이 사람, 범인(凡人)이 아닌 것은 알았지만, 앞으로 특히 주목해서 살펴봐야겠다.

# by | 2005/10/10 16:44 | 談話 ::: 기고/생각들 | 트랙백(4)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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