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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외출 (April Snow)
사랑은 교통사고와 같은 거야.
길가다 교통사고처럼 아무랑이나 부딪칠 수 있는게, 사랑이야.
사고나는데, 유부남이, 할아버지가, 홀아비가 무슨 상관이돼.
나면 나는 거지.
- 노희경, <거짓말> 中 영희(윤여정)의 대사

<8월의 크리스마스>. 유영길 촬영감독의 유작이 된 이 영화는 적지 않은 사람들 가슴 깊이 남겨질 영화가 되었다. 이 영화를 감독한 사람이 바로 허진호 감독이었고, 그 작품은 그의 장편 데뷔작이었다.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허진호 감독의 차기작에는 늘 관심을 보여왔고, 그는 때마다 최고의 (흥행성 있는) 배우들을 만나 작업을 하는 행운을 누려왔다. 사실 데뷔작의 한석규, 심은하도 그랬고, 두번째 작품의 이영애, 유지태도 그랬으며, 세번째 작품에 만난 욘사마 배용준, 손예진의 경우는 그야말로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만난 행운만큼이나 그에게 주어진 부담 역시 적지 않았으리라는 짐작은 충분히 할 만하다.
허진호 감독의 세번째 영화 <외출>이 공개되자 마자, "허진호는 사라지고 '욘사마'만 남았다", "감독이 어떻게 변하니?" 등등의 비아냥 섞인 비판이 이어졌다. 당초의 우려대로 이 영화는 '욘사마 마케팅'에만 열중한 그런 '허섭스레기'같은 영화가 되고 만 것일까.

사실 <외출>은 허진호 감독의 전작에 나타나는 멜러적 감성을 '여전히(!)' 잇고 있는 작품이다. 그의 장점은 사실적인 상황 설정과 그에 따른 인물의 감정의 기복을 아주 자연스럽게 노출하는 데에 있었다. 그리 많지 않은 대사가 전달될 뿐이지만, 관객들은 그 인물들의 감정의 기복을 '감각'하며 영화에 몰입해갈 수 있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는 다림(심은하)의 첫사랑 감정이 그랬다. 정원(한석규)이 "어, 화장했네~."하며 너털 웃음을 웃을 때, 부끄러워하던 다림의 모습, 그 작은 에피소드에서 '첫사랑 감정'을 추억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봄날은 간다>에선 너무 쉽게 사랑에 빠져든 상우(유지태)와 은수(이영애)가 '뜨거운 사랑', 그 이후에 감정을 어떻게 추스려나갈 것인가를 지켜보며 관객은 나름의 공감을 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혼의 상처가 있는 은수의 태도에 동의하지 못했던 사람일지라도, 상우의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란 대사에라도 공감하고 극장문을 나설 수가 있었을 것이다. <외출>은 불륜의 상황이다. <랜덤 하트>나 <화양연화>에서 설정을 빌려온 흔적이 역력하지만, 20대에서 30대를 거쳐가면서 느낄 수 있는 '사랑'의 감정의 폭을 허진호 감독이 꾸준하고도 세심히 관찰해나가고 있음은 충분히 느낄 수가 있었다. '사랑이 배신당한 감정', 그리고 '극단적인 절망과 좌절의 순간에 다시 피어난 사랑의 감정', 그리고 다시 '사회적 장벽이 가로막힌 사랑'의 흐름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음은 여전한 허진호 감독의 장기이다.
일단 뜻밖의 수확(?)은 '서영'역을 맡은 손예진의 연기였다. 인수(배용준)에게 "우리 사귈래요? 두 사람 기절하게."라고 던지는 대사의 처리나 인수의 장인이 들이닥쳐 화장실에 숨어 있던 순간의 표정은, 저 역할을 대신할 배우가 있었을까 싶은 면모를 보여준다. <맛있는 청혼>이나 <취화선> 때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일취월장'한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한계는 상당부분, '배우'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배용준 덕분에 이 영화는 결코 흥행에 실패할 리가 없는 '보장'을 받게 되었고, 덤으로 촬영지마다 벌써 일본인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지만(관련기사), 그건 역시 '파르마콘'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 영화의 두 주연배우는 상황에 몰입함으로써 즉흥적인 대사를 날릴만한 배우가 아니었다. 이건 배우가 못났다기보다는, 배우의 특성이 그러하지 못했다는 측면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만할 것이다. 특히 배용준 쪽이 그랬다. 배용준은 몇차례의 인터뷰에서 영화의 상황 설정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을만큼, 영화 속 인수가 되지 못했다. 그런만큼 스크린 속 그를 바라보며, 특히 '복수'를 위한 사랑-혹은 섹스-를 꿈꾸는 그를 보며, 여전히 '준상이'를 떠올리는 것은 관객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가 날린 "내가 라면으로 보여?",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와 같은 즉흥 대사의 묘미는 이 영화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가 없다. 굳이 떠올리자면, 서영이 날리는 "운동하세요?"란 대사 정도?
아마도, 과거 영화사 조명스탭이었던 경력을 떠올리자면, 그나마 공연장 스탭으로 움직이는 배용준이 제일 자연스러워보일 법도 했지만, 그마저도 몰려든 일본인 관광객들에 대한 부담이 고스란히 연기에서 느껴질 뿐이었다. 허진호 감독은 사실 '의외'이다 싶을 정도로, 배용준과 손예진이란 '상업적 재료'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다. <봄날은 간다>에 비해서도 헌팅된 촬영지를 적극적으로 '관광지'로 만들고자하는 의도가 약해보이는 편이다. 그럼에도, 평론가를 비롯한 모든 관객들은 '배용준'이란 배우의 그늘 속에서 이 영화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관객의 잘못도, 배우의 잘못도, 감독의 잘못도 아니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엄마는 해결사>에 나와도 그는 '람보'로 보이고,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유치원에 간 사나이>에 나와도 그는 '터미네이터'로 보이는데, 어찌 그것이 그 누구의 잘못만이겠는가. 다만, 분명한 것은 적어도 2005년의 '배용준'이란 배우는 '허진호의 영화'에 적절한 재료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 점은 역시, 감독의 잘못일까, 배우의 착각일까, 제작사의 과욕일까.
실제로 술을 마셨다던데, 두 배우 얼굴이 발그레하다.
그러나, 홍상수 영화는 달리, 영화가 끝나도 '술 생각'이 나지는 않는다.

또 한가지 이 영화가 허 감독의 전작들과 차별되는 지점은 '가족의 부재'란 부분이다. 한 명의 남자(윤경호/류승수 분)와 한 명의 여자(강수진/임상효 분)가 사경을 헤맬만큼의 큰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병원을 찾아온 사람은 각각의 배우자들일 뿐이었다. 그나마 여자의 아버지(전국환 분)가 등장하는 몇 장면이 거의 유일하게 '사고자'의 혈육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상대편 피해차량의 운전자의 상가(喪家)에 모여든 그의 가족들과는 더욱 상반되는 지점이다.
생각해보면,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정원(한석규)이 아버지(신구)에게 VTR과 사진 인화기계 사용법을 알려주는 장면이었으며, <봄날은 간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상우(유지태)가 혼자 소줏잔 기울이는 아버지(박인환)를 바라보는 장면, 그리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고모(신신애)의 모습들에서였다. 어쩌면, 바로 이런 장면들에서 허진호 감독은 가장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는지도 모른다.
반면, <외출>엔 두쌍의 부부 외에는, 거의 주변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두쌍의 부부 사이엔 자녀도 없다. 글쎄, 어떤 이유였을까? '스타'에 치중하느라 캐스팅 여력이 안남았을까. 아니면, 두 사람의 심리변화에 집중하기 위해 다른 인물들로 인하여 산만함을 주고 싶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 주변 가족과 주변 인물이 사라지면서, 허진호 감독의 '재능' 한가지가 사장(死藏)되고 말았으며, 인수와 서영의 불륜이 '처절할 정도로 극단적인 사랑의 느낌'을 주는 데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어쩌면 <해피엔드>와 달리 이 영화는 '의외로'(?) 해피엔딩이니까...)

이 영화와 관련하여 한가지 덧붙여 생각할 문제가 있다. 이 영화 개봉과 거의 동시에 출간된 김형경의 소설 <외출>에 대한 문제이다. 허진호 감독을 비롯한 이들의 공동작업으로 만들어진 '시나리오'를 '원작'으로 삼아, 소위 '본격문학 작가'인 김형경이 쓴 소설 <외출>은 특이한 점이 적지 않다. 그간 인기 영화 시나리오를 '소설화'하여 상업적으로 판매한 전례는 수없이 많이 있지만, 이번 소설은 그 작가가 80년대 등단 이래, 문단에서 어느정도의 입지를 갖춘 '작가'라는 점, 그리고 그 소설을 펴낸 곳이 '문학과지성사'라는 점, 소설가 오정희, 평론가 우찬제를 비롯한 이들이 일반 소설을 대하듯이 이 작품에 대한 '평'을 내놓았다는 점 등에서 그러했다. 영화 시나리오를 베낀 '상업적 소설'이 아니라, 영화와 함께 동시에 탄생한 이종 장르 예술로서의 '소설 문학'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 틀림없다. 영화에 비해 적지 않은 에피소드가 가미되고, 심리묘사가 치밀해진 이 소설을 그 자체로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이번 김형경의 소설을 '본격문학'으로 대접받고 싶어하는 '문학과지성사'의 태도에는, 기존의 '통속(상업)문학'과 '본격문학'의 구분 자체를 파괴하려는 시도가 보이기보다는, "그 구분 자체는 '문지'란 브랜드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 여기는 듯한 '오만함'이 느껴져서 불쾌하다. 차라리 솔직히 말해보자. 배용준이란 '한류브랜드'에 기대어 '한국문학'도 '일본진출'을 꿈꾸고 싶었다고. 안타깝게도 소설가 김형경은 <외출>의 상황설정이 <랜덤 하트>나 <화양연화>에서 차용된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듯 싶다. 이 걸 '그녀의 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

p.s. 이 영화 보고 '삼척'을 가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안드는데, '리쌍', '클래지콰이' 콘서트를 보고 싶어지긴 했다.

p.p.s. 아주 오랜만에 영화로 돌아온 '임상효'씨. 불행히도 연기력은 그때 그시절 그대로였다.

별점 : ★★☆

극장에서의 키스신.
스틸사진은 돌아다니는데, 영화에선 볼 수 없는 장면이다.
bindoong의 요구로 추가한 사진.
별로 좋아하진 않았는데, 이 영화에선 손예진, 역할 이상으로 예뻐보이더라.
근데, 예쁘게 잘나온 스틸 사진은 별로 없군.
by 갈림 | 2005/09/10 13:18 | 談話 ::: 기고/생각들 | 트랙백(1)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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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at 2005/09/17 15:09

제목 : 외출 - 전형적인 허진호 식 멜러
8월의 크리스마스 - 담담함과 절제의 미학 인수(배용준 분)와 서영(손예진 분)은 각각 아내와 남편이 불륜을 벌이다 교통사고를 내 삼척에서 만나게 됩니다. 동병상련의 두 사람은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서다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의 세 번째 작품 ‘외출’에 배용준과 손예진이 낙점되자 우려가 불거졌습니다. 영화배우의 이미지가 확고하지 못한 두 연기자가 캐스팅된 것은 스타에 의존했으며 일본 시장을 지나치게 의식했다는 것이 중평이었습니다. 그리고 개봉 2주차를 맞은 현재 관......more

Commented by ssct at 2005/09/10 20:46
문지도 돈 벌어서 먹고 살아야죠...
전 <외출> 소설 보면서 문지 위원들이 이거 내게 둔 거 보면 정말 문학판이 어렵긴 어렵구나 그런 생각 들던데요.
Commented by 이올로 at 2005/09/10 21:10
좋은감상평, 잘읽었습니다. :)
저도 대략적인 스토리를 알고난 뒤, 바로 '화양연화'가 생각나던데말이죠. 흠...
Commented by bindoong at 2005/09/10 23:46
이봐 배용준 얼굴이 잘 나오는 사진을 올리면 어떻게 해 (버럭).....손예진 얼굴이 잘 나오는 걸로 하나 더 찾아봐...
Commented by 갈림 at 2005/09/11 01:34
ssct/ 돈 벌어 먹고 살아야하는 건 당연한데, '본격문학'이라고 우기진 말든가, 아니면 기존의 '통속문학'을 무시하진 말든가 해야하는데, 오만하게 돈벌이에 나서는 모습이 별로 보긴 안좋아.

이올로/ 뭐, 허진호 감독의 전작들이 생각나는 걸 보면 아주 후진 작품이 아닌 건 분명한데요, 그래도 많이 모자라요. ㅡㅡ;

bindoong/ 하나 추가했소.
Commented by 참치공주 at 2005/09/11 01:58
엄마랑 동막골 보러 영화관에 갔는데..외출 포스터가 있더라구요. 엄마한테 이거 좀 야할거 같다고 했더니 옆에 아줌마 두 분이서 별루 안 야하다구..약간은 실망하신듯한 눈치..ㅋㅋ
그래서 안보기로 결정;
Commented by 갈림 at 2005/09/11 12:03
참치공주/ 응, 별로 야하진 않는데, 욘사마의 착한 복근은 서비스되지...
Commented by b at 2005/09/11 14:03
차라리 통속문학이나 대중문학은 코드나 장르규칙이라도 있지, 본격문학은 뭐가 '본격'이라는 건지...(지루함과 난해함이 본격적이다 뭐 이런 건가요? --;;)
Commented by 갈림 at 2005/09/11 22:44
b/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결국은 '브랜드'가 중요하다, 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이미 192,30년대 문학인들은 '문학'의 '대중성'에 있어서 항복 선언을 했었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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