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베트남여행] 제3일 씨엠립 주변

여행기를 올리다보니, 업로드한 사진 용량이 한달치를 초과할 지경이 되었다. 지난 중국 여행기를 처음 올릴 때만해도 한 포스트에 사진을 하나씩밖에 못 올렸는데, 그때보단 사정이 나아졌지만, 월 10M 용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물론 평소엔 여유가 남아 있지만, 이럴때는 부족하기 마련. 결국 고심끝에 이글루스 플러스를 신청했다. 3개월에 8500원.

덕분에 용량에 부담 없이 사진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독당근'군의 카메라에 담겨 있던 파일도 넘겨 받았으니, 사진은 충분하고 용량도 충분하다.

이전 포스트들에도 사진을 꽤 여러개 추가했으니 한번씩 더 살펴보아주시면 고맙겠다.

[캄보디아/베트남여행] 제1일 씨엠립 입국
[캄보디아/베트남여행] 제2일 앙코르 유적 (上)
[캄보디아/베트남여행] 제2일 앙코르 유적 (下)

어쨌든 이번 여행의 3일차이자 캄보디아에서의 마지막날.
앙코르 유적지 인근의 소도시 씨엠립 주변의 몇몇 군데를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그 중에는 패키지 여행의 특성상 끼어들 수밖에 없는 쓸데 없는 쇼핑 일정도 있었으나, 그저 휴식 시간으로 생각하고 견뎌냈다.
톤레삽 호수로 가는 길가의 캄보디아 전통 가옥.

어쨌든 이날, 우리가 찾은 곳은 씨엠립 시내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톤레삽호수였다. 톤레삽 호수는 '거대한 호수'라는 뜻으로, 우기때 메콩강이 바다에서 역류하여 만들어진 자연호수다. 최대로 넓어지면 수심이 최고 10m, 면적은 서울 면적의 10배 정도 된다고 한다. 캄보디아 전체 면적이 남한의 두배 정도 되는 크기니, 국토 전체에서 톤레삽 호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한 수준이다. 우기가 끝나는 11월이 되면 톤레삽 호수는 다시 바다로 흘러나가기 시작한다. 이때 지역에서는 축제가 벌어지고, 고기잡이가 시작된다.

인근의 주민들은 이곳에서 잡히는 물고기를 잡으며 생활한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민물고기들이 사는 곳이라고도 하는 이 호수 주변의 주민들은 캄보디아와 베트남 등지에서 온 난민들이 많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는 물이 차는 정도가 항상 달라지기 때문에 늘 이동할 준비를 갖추고 살아가거나, 아예 배 위에서 생활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곳으로 가는 길은 씨엠립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비포장 도로를 한참 가야하는데다가, 물이 빠진 지역은 강 바닥 위 울퉁불퉁한 길로 차가 들어가야하니, 시간이 꽤 걸린다. 비가 많이 온 직후에는, 일반 차량은 들어갈 수도 없단다. 들어가는 길 한곳에서는 통행료를 징수한다. 군에서 제대한 장교 하나가 비포장 도로 한쪽을 불도저로 밀더니, 어느날부터 자신의 노고에 대한 대가를 받아야겠다며 통행료를 징수하기 시작했단다. 비포장 도로에서 통행료를 받는 것은 전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일 것이다. 한국 단체 관광객들은 가이드들이 사전에 협상하여 버스 한 대당 일정 금액을 지불하는 것으로 합의해 두었다는데, 자유 관광객들, 특히 서구 관광객들과는 수시로 실랑이가 벌어지곤 한단다.

선착장으로 가는 길
한국 교회는 여기까지 손을 뻗쳤다.


앙코르 유적을 돌아보는 어제의 일정이 내내 감동의 시간이었다면, 이날(제3일)의 일정은 착찹함의 연속이었다. 여행이 끝난 지금까지 사실 마음에 제일 남는 것은 이날의 기억들이었다. 캄보디아의 아이들, 그리고 주민들. 이미 나와 같은 관광객들로 인해서, 혹은 다른 이유로 인해서 '돈'의 유혹에 노출되기 시작하였겠지만, 그래도 아직은 순박해보이는 그 사람들. 그러나 그들의 순박한 눈빛을 바로 쳐다보기 힘들었다. 구걸을 하는 그들에게 돈 몇푼을 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저 사람들을 어떻게 하여야 할까, 하는 고민이 아픔으로 다가왔다. 근대 문명(?)의 세례를 받은 준-서구인의 눈으로 보노라면, 그들은 그저 불쌍하고 미개한 원주민들. 그러나 그들은 얼마전까지 프랑스와 베트남 등 강국들과 싸워 이겨낸 사람들이었고, 또 치열한 사상 투쟁의 과정을 통해 '내전'까지 겪은 전사(戰士)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눈빛에는 분명, 어떠한 방식이든 '도움'을 원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 1950년대, 전쟁으로 초토화된 이 땅의 부모님들 눈빛이 바로 저러했으리라. 이미,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게 된 전쟁의 뒷편.

그러나 이미 1인당 GNP 20만원이 채 안되는 이 나라, 씨엠립 중심가에는 이미 천만원을 넘는 땅과 집들이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수도 프놈펜에는 아마 그 이상 가겠지.

프랑스와 일본을 대표로 하는 자본과 기술이 이들의 유적 복원과 경제 개발을 위해 캄보디아로 들어오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미미하나마 진출이 본격화되고 있다. 과연, 이들의 눈빛이 보다 아름답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톤레삽 호수의 수상가옥들.
배를 타고 이동하며, 때로는 고기를 잡는다.
수상가옥들이 수없이 많다. 톤레삽 호수 주변에만 수만명이 살아가고 있다.
수상가옥과 배 위에는 없는 것이 없다. 학교, 경찰서, 주유소, 가게 등등.
남자들은 모여서 배구 놀이를 하고 있다.


이곳의 물은 얼핏 매우 더러워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단다. 바닥의 황토가 올라와서 흙탕물처럼 보일 뿐, 물결이 칠 때 간혹 드러나는 물의 색깔은 꽤나 맑아보인다. 하지만 물론, 이 주변 가옥들의 생활하수 등을 따로 처리하는 시설은 보이지 않는다. 전염병에 너무 쉽게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 그들의 모습은 전체적으로는 꽤나 활기차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탄 배 주위로 다가와 구걸하는 아이.


세숫대야를 타고 묘기처럼 다가온 아이들을 보며 괜시리 부끄러웠다. 우리가 탄 버스를 쫓아 몇km쯤은 맨발로 쫓아오며 돈을 요구하는 아이들의 모습에도 부끄러웠다. 그들에게 몇 달러를 쥐어주면, 아이들은 앞으로도 매일 구걸을 하러 관광객을 쫓아다닐 것이다. 어떠한 감정이 들어야하는지 혼란스러운 채로, 씨엠립 시내로 돌아왔다.

이날, 가이드는 이곳을 관광하고 돌아간 한국 관광객들이 톤레삽 호수의 아이들을 위해 보내준 옷가지들을 모아 이 아이들에게 전달해준 기억을 떠올리며 잠시 울먹였다. 가이드답지 않은 돌발행동에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이곳에 온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은 젊은 가이드의 마음은 이해하고도 남았다.

오후의 일정에도 계속 마음은 착찹해져갔다. 먼저 찾아간 곳은 씨엠립 주변의 한 사원.
이 사원 옆에는 크메르 루즈 시대에 학살당한 사람들의 유골들이 탑 속에 보관되어 있다.
여기 보관된 유골들은 이들에게 역사의 교훈이다.

프놈펜에 흔히 '킬링 필드'라 불리는 곳이 있지만, 이곳도 그와 유사한 곳. 사실 '킬링 필드'란 이름은 '미션', '시티 오브 조이' 등을 만든 롤랑 조페 감독의 영화로 유명해졌을 뿐, 이곳의 역사와 현실과는 그다지 관련 있는 이름이 아니다. 이 영화 이후로,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폴 포트'는 끔찍한 학살자로 기억되게 되었지만, 역사는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전세계 어떤 나라의 현대사보다도 극적이라 할만한 캄보디아의 역사를 살펴보자면, 폴 포트의 분노는 미국이 이 나라에 '론놀'이란 우파 군인을 통해 친미 쿠데타를 일으키도록 만들었던 데에서 시작되었다. 베트남에서는 전쟁이 한창 진행중이고, 캄보디아의 시아누크 국왕은 소련을 방문하는 사이에, 미국의 지원 아래 쿠데타를 감행한 론놀 정권은 '크메르 루즈(루즈는 빨간색, 곧 빨갱이)'로 불리는 게릴라 군과 시아누크 국왕의 연합 세력에 의해 결국 5년만에 붕괴된다. 그후, 권력을 장악한 폴 포트는 캄보디아의 도시민들을 농촌으로 내려보내어 농업 개혁을 중심으로 하는 혁명적 변화를 꾀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론놀 정권과 미국에 동조했던 자들, 그리고 자신의 개혁을 거부하는 기득권자들을 모조리 숙청하고 처형하는 강권을 휘둘렀다. 물론, 폴 포트의 만행이 정당화될 수는 없겠지만, 프랑스 유학파 출신으로 인기 있는 젊은 교육자였던 그가 꿈꾸던 '유토피아'의 이상과 그의 분노의 배경을 덮어둔채, 그의 '학살'만을 과장되게 말하는 것도 정당하지 않다. 실제로 폴 포트 정권이 학살했다고 알려진 대다수의 캄보디아 국민들은, 사실 베트남 전 막판에 쏟아부은 미군의 포탄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캄보디아의 아픔은 그때로 끝나지 않았다. 베트남이 전쟁에서 미국을 이겨낸 이후, 베트남은 곧바로 캄보디아를 침공하여 프놈펜을 장악했다. 시아누크 국왕과 폴 포트 등이 힘을 합쳐 저항한지 10여년 뒤, 베트남은 캄보디아에서 철수하였다. 그러나 그후, 각 저항세력들, 그리고 라나리드 왕자 세력, 훈센 총리 세력들 간에 치고받는 내전이 끊이지 않고 벌어졌다.

90년대 후반들어 내전은 잦아들었고, 2000년대 이후로는 반군 활동이 단 한건도 보고되지 않고 있다. 캄보디아 여행이 본격화 된 것도 바로 그 무렵부터였다. 현재는 훈센 총리가 사실상 실권을 장악하고 있지만, 그도 과거에 비하면 힘이 다소 빠졌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캄보디아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인 노르돔 시아누크 국왕은 수많은 내전 끝에 실권을 상실한 상태였는데, 훈센 총리가 '군주제'를 계속 위협하자 2004년 초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들어간 후, '양위'를 선언하고 '귀국'을 거부한 상태이다. 현재는 북한과 중국을 오가며 사실상 '망명객'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위' 선언 후, 캄보디아 국왕 선출 위원회는 라나리드 왕자의 이복동생인 노로돔 시아모니 왕자를 왕위에 올렸으나, 상징적 존재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수백년 이어온 전쟁으로 캄보디아는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졌다. 특히, 최근 수십년간 내전이 지속되면서, 캄보디아 곳곳에는 엄청난 양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어 내전이 끝난 지금까지도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크메르 루즈 군에 속하여 소년병으로 지뢰매설 작업에 참여했던 '아키라'라는 사람은 내전이 끝난 이후, 지뢰 매설에 대한 자신의 과오를 스스로 씻겠다며, 직접 지뢰 제거 작업에 나섰다. 처음에 사람들은 이 사람의 진심을 의심했지만, 그의 작업은 수년간 계속 되어오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그는 그 작업을 계속 중이다. 그는 자신이 제거한 지뢰들을 자신의 집에 전시하여 두는 한편, 지뢰로 인해 다친 아이들이나 지뢰 사고로 인한 고아들을 데려다가 직접 돌보기도 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 전세계에서 가장 지뢰가 많이 매설된 지역은? 정답은 캄보디아가 아니다. 진짜 정답은 한반도. 휴전선 부근은 거대한 폭탄이라고 보아도 틀리지 않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지뢰 피해자들의 모습이 그저 남 일 같지가 않다.
17번 유니폼을 입은 아이는 우리 여행 일행이었던 가족 가운데 꼬마 아이. 그 옆의 웃통 벗은 아이는 오른쪽 팔이 없는 지뢰 피해자. 이 아이들의 생김새나 미소,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처한 현실은 크게 다르다.


이곳을 마지막으로 캄보디아에서의 일정은 끝이 났다. 이제는 베트남으로 이동할 차례였다. 씨엠립 공항에서 출발하는 캄보디아 항공(U4 231편)으로 베트남 수도 하노이로 날아간다. 그런데, 씨엠립 공항에는 현지 가이드가 들어갈 수가 없다. 애초에 한국부터 인솔자가 동행한 여행팀은 상관 없겠지만, 우리는 그렇지가 않았다. 여행객들 가운데 가장 젊은 나와 '독당근'군이 일행들을 대신하여 출국 수속을 하기로 했다. 사실,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 있을까. 그런데, 의외의 상황들이 이어졌다.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부치면서 보딩패스를 받아보니, 좌석 번호가 없는 것이었다. 설마 입석? 이 비행기는 그저 앉는 곳이 자기 자리였다. 국내 최대 여행사라고 자랑하는 H여행사의 팀 인솔자가 있길래 몇가지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고객만을 위해 봉사해야한다는 듯,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중국이나 러시아쪽 국내선들 가운데 그런 비행기가 있다는 얘길 들어봤지만, 이건 그래도 명색이 국제선인데.
우리가 탄 비행기. 프로펠러가 달린 수송기. 엄청난 소음은 이미 각오한 상태. 군대 시절 CN-235도 몇번 타봤는데 뭘.


비행기의 출발 예정 시간은 현지 시간으로 오후 6시 정각. 5시 30분이 좀 넘어 게이트가 열렸고, 뒷쪽이 비교적 조용하다는 정보를 들은 H여행사 여행객이 일제히 달려나가기 시작하자, 우리 일행도 곧 비행기에 올랐다. 구소련제 50인승 프로펠러 비행기는 역시나 아주 작고 소란한 비행기였다. (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미 대부분 국가에서는 폐기되거나 창고에 틀어박혀 있는 기종이라고 한다.) 우리는 맨 앞에서 두번째 자리에 앉았다. 시끄럽기는 해도 앞뒷자리에 사람이 없어서 비교적 편하게 갈 수 있을 듯 했다. 승객 대부분은 한국인 관광객들이었는데, 이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마다 불안해하였는지, 좌석 뒤에는 이런 게 붙어 있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저 안내문에도 불구하고, 의자 밑에는 어떠한 안전 장치도 없었더라는 것. 뿐만 아니라 비상시 비상용 호흡기가 내려와야할 머리 위의 선반은 나사로 단단히 잠겨 있었다. 이런 것들에 황당해하고 있는 사이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곧 이륙했다. 시간을 보니 5시 45분이 채 안된 시간. 이 비행기는 승객이 다 탄 듯하자, 그냥 출발해버린 거다. 예정 출발 시간이고 뭐고 상관 없다는 듯이. 원래 비행 예정시간은 2시간 반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실제 비행시간은 세시간이 훨씬 넘게 걸렸다. 그나마 다행히 중간에 기내식이 나오긴 했다. 좀 부실했지만, 맛은 괜찮은 편.
아무런 안내 없이 불쑥 전달된 기내식.
비행기 좌석은 앞으로 완전히 접혀졌다. 고로 앞자리에 사람이 없으면 다리 뻗고 누을 수도 있다.


비행기 운항 중, 안내방송은 단 한차례도 없었다. 베트남에 들어가기 위한 출입국 카드도 승무원에게 내가 직접 가서 달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한 뭉치를 받아올 수 있었다. 우리 일행들에게도 내가 일일이 한장씩 나누어줬다.

그래도 비교적 낮게 나는 비행기여서인지, 창밖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안녕, 캄보디아.
아마도 메콩강 줄기.
아마도 베트남 다낭시의 야경(?).


베트남 수도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한 것은 밤 9시가 넘은 시각. 하노이의 국제컨벤션센터 바로 옆, 호치민 영묘와도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ICC 호텔이 숙소였다. 늦은 시간에 도착한 탓에 하노이의 밤거리를 구경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이동하는 동안에도 이전 캄보디아의 잔상과 대비되어 베트남 도시의 모든 것이 낯설었다. 베트남의 국민소득은 공식적으로는 캄보디아의 두배 정도이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차이가 날 듯 싶었다. 하노이에서 묵게 되었지만, 다음날 아침에 바로 하롱으로 이동하는 일정이었다. 잠시 산책을 다녀와서 비교적 일찍 잠이 들었다.
밤에 슬쩍 나가 본 바딘 광장. 숙소와 가까웠다.

by 갈림 | 2005/07/13 21:50 | 柬/越國旅行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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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bindoong at 2005/07/14 16:57
오호호, 비행기 앞에서 찍은 사진은 나름 잘 나왔구려.
Commented by 갈림 at 2005/07/14 17:29
bindoong/ 얼굴이 어둡게 나온 덕분인가? ㅡㅡ;
Commented by 키위 at 2005/07/14 22:32
크메르 루즈와 폴 포트의 숙청 과정이 충격을 준 것은 이들이 단지 많은 이들을 학살했다는 것에만 있지 않습니다. 히틀러의 이상이 망상이 되고 횡포가 되었던 것처럼 폴 포트의 이상은 그의 동지들을 오염시키고 망상에 빠지게 했지요. 그들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정신 개조"를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실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지요. 모아 놓은 사람들에게 전 일생을 반성하게 하고, 혁명의 적을 밀고하게 했지요. 이 과정이 몹시 아이러니 하고 섬칫합니다. 어린이들조차 자신들의 반혁명성을 자책하고 가족을 밀고해야 했으니까요.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 자신들의 "순수성"을 입증하려 애쓰는 과정이었을까요. 이런면에서 히틀러는 손 쉬운 표적을 가졌던 셈이지요.
이성과 광기가 통하는 이런 역사의 현장을 볼 때면 정말 암담해요.
Commented by 갈림 at 2005/07/15 00:09
키위/ 예, 암담하고도 참담한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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