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베트남여행] 제2일 앙코르 유적 (下)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쉬움이 남는 것이 있다면, 앙코르까지 가고도 반데이스레이를 보지 못한 것. 사진과 주변의 여행담으로만도 얼마나 아름다운 사원일지 짐작이 가는데, 무척 아쉽게도 이번 여행의 일정에 포함되지 못했다. 가이드를 들쑤셔서 어떻게든 다녀와보려 했으나, 씨엠립에서 반데이스레이까지의 거리도 만만치 않아서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이날 점심시간을 좀 줄이고, 휴식시간을 활용하면 가능할 법도 했지만, 단체 패키지 여행을 떠난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아쉬움을 남겨두어야 나중에 다시 이곳을 찾아오리라. 그때는 꼭 자유여행을. 점심을 먹고 호텔로 돌아와 휴식시간에 1시간 정도 호텔 수영장에서 '앙코르 비어'와 함께 수영을 했는데, 그것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오전에 앙코르 톰에서 내리쬐는 햇볕에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내다가 시간을 확인해보았더니, 시계는 고작 아침 8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침 시간에도 그럴 정도니 한낮의 무더위는 만만치가 않다. 캄보디아 지역에서 제일 더운 때는 건기의 막바지인 4월쯤이라고 하지만, 7월초의 더위도 꽤나 대단하다. 다만 비교적 날씨가 도와주는 편이었는지, 그늘만 찾아들어가면 바람도 느낄 수 있고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오후 일정의 핵심은 앙코르왓(Angkor Wat). 영화 "화양연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그곳이고, 이번 여행을 내게 충동질했던 바로 그곳이었다. 앙코르시대의 중기 무렵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가장 강력했던 시기였다고 하는 수리야바르만2세에 의해 약 30여년간 건축되어 힌두교의 최고신 비슈누에게 봉헌되었다고 하는 바로 그곳이다. 규모에 있어서는 이집트의 피라밋에, 아름다운 건축미학에 있어서는 인도 타지마할에 비교되는 그 사원이다.
앙코르왓으로 향한 길.


프놈바켕에 올라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앙코르 유적지 주변에는 돌을 채취할만한 장소가 보이지 않는다. 앙코르왓 주변에서 라테라이트라고 하는 앙코르 유적지 돌들의 주재료는 채취되었다지만, 그 엄청난 규모의 사암(沙巖)들은 다 어디에서 왔을까.

해자에 둘러싸인 앙코르왓. 처음 도착했을 때 날씨가 흐려져서 걱정했으나, 다행히도 비가 오지 않은채 날은 다시 개기 시작했다.

앙코르 왓은 대부분 동향(東向)인 다른 앙코르 유적지 사원들과 달리 서향(西向)이다. 아마도 당연히 '죽음'의 의미와 관련 깊었을 사원. 서향인 특성상 오후에 특히 많은 관광객이 몰린다고 한다. 앙코르왓으로 가려면 그 둘레의 해자를 건너가야 한다. 나가 형상의 난간을 따라 해자를 건너가면 비로소 사원에 들어서게 된다. 중앙 성소를 향해 난 길을 따라가다가 '도서관'이라 불리는 좌우의 건물을 지나 왼쪽편(북쪽)으로 내려오면 폭이 50m 정도 되는 연못을 만나게 된다. 오른쪽(남쪽)에도 연못이 있다는데, 우기 끝무렵이 아니면 물이 거의 없다고 한다. 어쨌든, 이 연못 앞이 앙코르 왓의 전경을 바라보기에 가장 아름다운 장소다. 앙코르 왓을 찍은 유명한 사진들은 바로 이곳에서 촬영된다.
바로 이곳.
'독당근'군과 함께 찍은 증명사진.

앙코르 왓 감상의 핵심은 역시 끝없이 펼쳐진 1층 회랑의 부조 감상. 펼쳐놓으면 800m에 달한다는 부조는 섬세하고도 장엄하다. 중앙 입구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면서 관람하는 게 원칙. 인도의 2대 서사시 가운데 하나인 '마하바라타'의 전투장면에서부터 시작하여 앙코르 왓 사방을 감싸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회랑.
회랑들 둘레로는 이런 모양의 창틀이 있다. 햇빛을 조절하고 바람을 사방으로 퍼지게하는 기능을 한다고.
반질반질한 곳은 대개 관광객의 손길을 받은 곳.
구석에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것들도.

이제는 1층 '미물계'를 지나, 2층 인간계와 3층 천상계를 향하여.
햇빛을 받고 있는 앙코르왓 중앙탑 부근
2층 인간계 바깥쪽 모습.
저기로 올라가야한다는 말이지!
열심히 천상계로 기어오르고 있는 '독당근'군.
위에서 내려다보면, 까마득하고 가파르다.

3층 신들의 세상, 천상계로 오르기 위해서는 그저 인간은 네 발로 기어올라가야만 한다. 계단의 높이는 무릎 높이, 폭은 성인남자의 발길이보다 좁다. 경사도는 평균 70도 이상. 올라갈때는 경사가 완만한 서쪽 계단이, 내려올때는 다소 부실하긴 하지만 난간이 있는 남쪽이 낫다. 이곳에서는 서로 손을 잡아주거나 하면, 특히나 위험하다. 오직 자신의 힘으로 오르내려야 한다. 천상계 중앙탑에는 16세기 이후로 부처님이 모셔져 있지만, 본래는 비슈누 상이 있었을 것이다. 20세기 초, 프랑스인들이 이곳에 남겨진 비슈누상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루브르 지하 창고에 있을까?
3층에서 올려다 본 중앙탑은 아직도 높아.
3층에서 내려다본 앙코르왓의 모습.
천상계에서 서양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오렌지색 승복의 승려.
내려오는 게 더 힘들어.
아쉬움을 뒤로 하고, 앙코르왓이여 안녕~!

앙코르왓 유적 가운데 기둥들 아래쪽에 부식된 흔적이 많이 발견된다. 이것은 전쟁 와중에 한동안 방치되어있던 앙코르 유적을 발견한 서구인들이 유적지로 향하는 길을 낸 후, 나무와 풀이 자라지 못하도록 도로 주변에 '산(酸)'을 뿌려두었던 것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입은 피해라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다. 천년의 세월과 전쟁마저 견뎌온 유적이건만, 그 운명에 앞으로 수십년이 가장 큰 고비가 될 듯한 예감이다.

앙코르왓을 빠져나와서 향한 곳은 프놈 바켕 사원이었다. 천문학적 구조를 하고 있다는 이 사원은 주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조망이 뛰어나다. 특히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장관이라고 한다.
프놈 바켕으로 향한 길.
그 위에 나타난 프놈 바켕 사원.
프놈 바켕 주변에선 코끼리 트래킹을 할 수 있으나, 코끼리들이 불쌍해 보이기만 했다.
잠시 쉬어야지. 앉아있는 돌 하나하나가 다 유적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일몰을 기다렸으나, 천둥번개가 치는 광경만 목격했을 뿐이다.
끝없이 펼쳐진 정글의 모습을 바라본 것만으로 감격적.


이날 저녁에는 캄보디아의 전통춤이라는 '압살라 민속춤'을 관람하면서 현지식 부페를 먹었다.
그리고 밤이 되자 비가 흩뿌리는 가운데, 씨엠립 재래시장 부근에 몰려있는 '노상 카페'들을 찾아갔다. 가이드를 꼬드겨 다른 일행들 몰래, 맥주를 마시러 나섰는데, 가이드가 최근의 현지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겁을 주는 바람에 카메라는 들고 가지 않았다. 우연히도 우리가 들른 곳은 안젤리나 졸리가 방문했다는 '레드 피아노 카페'. 여기저기 안젤리나 졸리의 사인과 사진이 놓여 있는 것만 아니면, 분위기는 괜찮은 곳이었다. 안주는 없이 앙코르 비어 한병씩을 비우고 돌아왔다. 캄보디아를 떠날때까지 앙코르 비어를 자주 마셨는데, 소감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리나라 맥주 산업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 평범한 라거 계열 맥주였지만 우리나라 맥주들보다 훌륭한 맛이었다. 노점에선 한병에 대략 1$ 정도이고, 호텔에선 1.7$, 카페에선 2.5$를 받았다.
아참, 우리가 한밤중에 이용한 교통수단은 '뚝뚝'이라 불리는 삼륜차였다. 최대 4명까지 탑승 가능.
이것이 바로 뚝뚝.

우리는 왕복 4$를 주었는데, 레드 피아노에서 맥주를 마시는 동안 기사는 1시간 반 가량을 길가에서 기다렸다.

by 갈림 | 2005/07/11 19:44 | 柬/越國旅行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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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bindoong at 2005/07/11 23:23
오호 곰팅도 갔었군.......
Commented by 갈림 at 2005/07/11 23:44
bindoong/ 바로 곰이 신으로 올라서기 위해 고행하는 장면이지...
Commented by seal at 2005/07/12 00:14
그 엄청난 사암들이 어디서 왔겠어. 엄청난 노동력 착취의 결과물이겠지. 이런 유적들 보면 나는 그런 생각밖에 안 들어-_-;;;(별다른 의식도 주의도 없는 주제에 배배꼬인 인간의 투정이라오)
Commented by 니야 at 2005/07/12 11:46
반데이스레이를 놓치셨다니 제가 안타깝습니다;; (앙코르왓은 사람 없는 오전에 다시 가도 좋습니다)
Commented by 갈림 at 2005/07/12 17:33
seal/ 여행가지 못한 자의 투정이라 생각하겠소.
(아마도 그건 사실일테지. 근데, 과연 꼭 반드시 그럴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 고대문명에 착취된 노동력을 물리적으로 계산한 것은 서구학자들이 시작한 짓이었을거야. 비교할 대상은 아니지만, 수천년 뒤에 후손들이 2002년 월드컵때 시청앞에 모여든 수십만 인파의 사진을 본다면, 그 당시 '착취되거나 동원된 군중'이라 설명하게 되지 않을까? 정말 혹시 어쩌면, '신화'의 힘으로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 물론, 서구문명의 입장에선 제3세계의 고대문명들이 도덕적으로도 훌륭했다는 것을 인정하긴 힘들었겠지.)

니야/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까요? ㅡㅡ;)
Commented by fowy at 2005/07/12 21:13
타즈마할 꼭 가봐요.(위에 '타지마할' 보는 순간, 와락..) 나 앙코르왓 갈 때 조언 좀 해주시고.
Commented by 갈림 at 2005/07/12 22:45
fowy/ 타지마할 가본거야? 우와 ~
Commented by seal at 2005/07/13 16:09
엇, 앙코르왓 여행은 절대 안 부러운데-_-a 혜경언니 여행이 열라 부럽소ㅠ_ㅠ
(신화의 힘으로 자발적으로 참여한 공사로 보기에는 너무 유적이 거대하지 않나? 게다가 먹고 살려면 자신의 육체 노동력밖에 의존할 게 없던 시절인데... 어차피 정확히 알기는 힘든 일이지만.)
Commented by 갈림 at 2005/07/13 18:34
seal/ 역시 휴양형 여행을 부러워하는 거로군..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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