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6월 03일
[단상] 우즈벡
25년전 5월 광주(관련포스트 1/2/3)에서는, 200명이 넘는 사람이 도심 한복판에서 '아군'에 의해 살해당했다. 부상자는 5000명이 넘는다. 지금까지 시신조차 찾지 못한 실종자는 400명에 가깝다. 시신을 도시 외곽에 몰래 집단 매장했다는 설이 파다하지만, 아직까지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400명 가까운 실종자는 어디로 갔을까.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보듯, 놀라운 카리스마와 상황판단력, 그리고 결단력으로 군권(과 전리품으로서의 국가)을 순식간에 완전히 장악한 전장군과 그 똘마니들은 아직까지도 '발포명령자'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말 안해도 다들 알만한데 말이다. 사실 진퇴양난일게다. 실탄 발포도 통제 못한 '무능한 장군'이 될 것인가, 무자비한 살육을 명령한 '또라이 살인마'가 될 것인가,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닐게다.
한국시간으로 바로 오늘(3일) 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는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이 우즈베키스탄팀과 월드컵 최종예선경기를 벌인다. 이 경기를 앞두고, 우즈벡에서 "소요 사태"가 있어 경기가 안전하게 열릴지 걱정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결론적으로, 현지의 안전과 치안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단다.
링크기사 : 스투-파란 뉴스
위에 링크된 기사에는 “우즈벡 내에서는 안디잔 상황에 대해 방송이 되지 않아요. 주류 신문도 별로 안디잔 소식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수백㎞ 떨어진 타슈켄트에서는 안디잔 사태의 내용을 쉽게 알 수 없죠”라는 현지 한국인 유학생의 말이 포함되어 있다.
안디잔(Andizhan).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로부터는 260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다소 건조한 대륙성 기후지대로 석유가 많이 매장되어 있으며, 목화, 포도, 과일 등을 많이 재배한다. 지난 5월 13일을 전후로, 안디잔에서는 반정부 시위대를 향한 무자비한 발포가 있었다. 현재 사망자수가 1000명이 넘는다는 보도도 있고, 외곽의 학교 운동장에 시신 500구 이상이 놓여 있다는 제보도 전해지고 있다. 국경을 넘어 도망치려는 사람들에게 무자비한 총격이 가해졌다는 얘기도 있고, 시신의 암매장이 진행중이라는 얘기도 있다. 우즈베키스탄 당국은 서방 외교관과 방송에 안디잔 현지의 모습을 공개했지만, 방문지는 시위대의 "습격"을 받은 '관공서'로 제한되었다.
25년전 5월. 당시 조선일보에는 【光州 화정동에서=金大中 기자】라는 표지(標識)로 시작하는 르포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 속에는 "무정부 상태의 광주"에는 "쓰러진 전주, 각목, 벽돌 등으로 쳐진 바리케이드 뒤에는 총을 든 난동자들이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고 적혀 있다. 이것이 이른바 "광주사태"에 대해 그후 10년 넘게 유지된, '당시의 진상'이었다. 그외의 모든 '사실'은 "대공삐라"로 간주되어 국가보안법에 의해 차단되었다.
우리가 뒤늦게 '진짜' 진상에 접근하게 된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독일인 기자 '힌츠 펜터'가 찍은 사진이 서방 언론을 통해 공개함으로써, 그리고 광주의 참혹한 현장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던 당시 서강대생 김의기군이 80년 5월 30일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남기고 투신 자살을 함으로써, 그리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그 참혹한 '사실'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광주'는 "난동자"와 "폭도"의 도시가 아닌, '민주화의 성지'가 될 수 있었다.
“'우리는 아무런 무기가 없다'는 외침에도 계속 총을 쐈다. 우리는 계속 도망쳤다. 하루종일 도망가다가 한 곳에 도착했는데 거기서도 군인들이 주민들을 둘러싸고 총을 쐈다. 일부는 바로 그 곳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 우리는 죽은 사람의 시체를 밟고 도망쳤다.”
위의 내용은 오늘(2일밤) KBS 시사투나잇에 보도된 '우즈베키스탄 생존자의 증언'이다. 과연, 언제쯤 우즈베키스탄의 국민들, 타슈켄트의 국민들은 2005년 5월 안디잔의 '진실'을 알게 될 것인가. 타슈켄트의 시민들은 오늘밤, '대~한민국'에 맞서 자신들의 위대한 조국의 국호를 외치며 그들 팀의 승리를 기원할 것이다. 260km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일은 전혀 알지 못한 채.
이건 분명 끔찍한 비극이다.
우리도 비극인지 희극인지 모를 시대를 살아왔다. 1980년대 전장군이 해외를 들락거릴때마다 장군을 영접/환송하기 위해 양화동 인공폭포 앞길에서 태극기를 흔들어댔고, 그때마다 발행되었던 기념우표를 사재기하였던 '추억'을 갖고 있다. 전장군이 "영도"하시는 조국이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개최하게 된 것에 대해 '무한한 영광'을 느끼며, 9시마다 "오늘" 전장군과 "한편" 이여사가 누구랑 밥먹었는지를 궁금해했었더랬다.
아니, 우리에게 비극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부산'에서 여당이 30% 득표하는데,'광주'에서 한나라당이 10% 득표하는 게 서운하다고 지껄이는 이들은 이미 '광주'를 잊었을지 몰라도, 그래도 비극은 계속된다. 아직 찾지 못한 실종자의 원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터넷과 각종 통신망이 발달한 우리 시대에 '광주의 고립과 비극', 그리고 철저히 봉쇄되고 조작된 언론이 다시 재현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으리라 믿는다. 아니, 가정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2001년 부평의 예나 2005년 울산의 예를 보면, 꼭 믿음직스럽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오늘 밤. 대한민국의 국가대표 축구팀은, 의도와 상관 없이, '우즈베키스탄'의 질서와 정의를 전세계에 홍보해주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잘못 걸려도 되게 잘못 걸렸다. 뭐, 그와는 전혀 상관없이 나는 한국팀을 응원하며 축구을 볼테지만 말이다.
한국시간으로 바로 오늘(3일) 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는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이 우즈베키스탄팀과 월드컵 최종예선경기를 벌인다. 이 경기를 앞두고, 우즈벡에서 "소요 사태"가 있어 경기가 안전하게 열릴지 걱정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결론적으로, 현지의 안전과 치안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단다.
위에 링크된 기사에는 “우즈벡 내에서는 안디잔 상황에 대해 방송이 되지 않아요. 주류 신문도 별로 안디잔 소식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수백㎞ 떨어진 타슈켄트에서는 안디잔 사태의 내용을 쉽게 알 수 없죠”라는 현지 한국인 유학생의 말이 포함되어 있다.
안디잔(Andizhan).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로부터는 260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다소 건조한 대륙성 기후지대로 석유가 많이 매장되어 있으며, 목화, 포도, 과일 등을 많이 재배한다. 지난 5월 13일을 전후로, 안디잔에서는 반정부 시위대를 향한 무자비한 발포가 있었다. 현재 사망자수가 1000명이 넘는다는 보도도 있고, 외곽의 학교 운동장에 시신 500구 이상이 놓여 있다는 제보도 전해지고 있다. 국경을 넘어 도망치려는 사람들에게 무자비한 총격이 가해졌다는 얘기도 있고, 시신의 암매장이 진행중이라는 얘기도 있다. 우즈베키스탄 당국은 서방 외교관과 방송에 안디잔 현지의 모습을 공개했지만, 방문지는 시위대의 "습격"을 받은 '관공서'로 제한되었다.
25년전 5월. 당시 조선일보에는 【光州 화정동에서=金大中 기자】라는 표지(標識)로 시작하는 르포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 속에는 "무정부 상태의 광주"에는 "쓰러진 전주, 각목, 벽돌 등으로 쳐진 바리케이드 뒤에는 총을 든 난동자들이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고 적혀 있다. 이것이 이른바 "광주사태"에 대해 그후 10년 넘게 유지된, '당시의 진상'이었다. 그외의 모든 '사실'은 "대공삐라"로 간주되어 국가보안법에 의해 차단되었다.
우리가 뒤늦게 '진짜' 진상에 접근하게 된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독일인 기자 '힌츠 펜터'가 찍은 사진이 서방 언론을 통해 공개함으로써, 그리고 광주의 참혹한 현장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던 당시 서강대생 김의기군이 80년 5월 30일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남기고 투신 자살을 함으로써, 그리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그 참혹한 '사실'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광주'는 "난동자"와 "폭도"의 도시가 아닌, '민주화의 성지'가 될 수 있었다.
위의 내용은 오늘(2일밤) KBS 시사투나잇에 보도된 '우즈베키스탄 생존자의 증언'이다. 과연, 언제쯤 우즈베키스탄의 국민들, 타슈켄트의 국민들은 2005년 5월 안디잔의 '진실'을 알게 될 것인가. 타슈켄트의 시민들은 오늘밤, '대~한민국'에 맞서 자신들의 위대한 조국의 국호를 외치며 그들 팀의 승리를 기원할 것이다. 260km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일은 전혀 알지 못한 채.
이건 분명 끔찍한 비극이다.
우리도 비극인지 희극인지 모를 시대를 살아왔다. 1980년대 전장군이 해외를 들락거릴때마다 장군을 영접/환송하기 위해 양화동 인공폭포 앞길에서 태극기를 흔들어댔고, 그때마다 발행되었던 기념우표를 사재기하였던 '추억'을 갖고 있다. 전장군이 "영도"하시는 조국이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개최하게 된 것에 대해 '무한한 영광'을 느끼며, 9시마다 "오늘" 전장군과 "한편" 이여사가 누구랑 밥먹었는지를 궁금해했었더랬다.
아니, 우리에게 비극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부산'에서 여당이 30% 득표하는데,'광주'에서 한나라당이 10% 득표하는 게 서운하다고 지껄이는 이들은 이미 '광주'를 잊었을지 몰라도, 그래도 비극은 계속된다. 아직 찾지 못한 실종자의 원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터넷과 각종 통신망이 발달한 우리 시대에 '광주의 고립과 비극', 그리고 철저히 봉쇄되고 조작된 언론이 다시 재현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으리라 믿는다. 아니, 가정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2001년 부평의 예나 2005년 울산의 예를 보면, 꼭 믿음직스럽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오늘 밤. 대한민국의 국가대표 축구팀은, 의도와 상관 없이, '우즈베키스탄'의 질서와 정의를 전세계에 홍보해주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잘못 걸려도 되게 잘못 걸렸다. 뭐, 그와는 전혀 상관없이 나는 한국팀을 응원하며 축구을 볼테지만 말이다.
# by | 2005/06/03 01:04 | 談話 ::: 기고/생각들 | 트랙백(1)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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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우즈벡 어제 사무실에 놀러온 우즈베키스탄 사람 카밀전씨(본인은 꼬밀젼이 맞는 이름이라고 말하지만, 여권에는 카밀젼이라고 써있다.) 80년대 광주에서 수녀견습생이던 우리 수녀님은 검일정(우리는 이렇게 부른다) 씨에게 묻는다. 안디잔 사건은 어떻게 되었나요. 몰라요. 사람 많이 죽었어요. 1000명? 2000명?. 몰라요. 검퓨터로 모스크바 테레비전봤어요. 잘 안나왔어요. 뉴스 잘 안해요. 우리 대통령 나쁜 사람이에요. 대통령 20년 했어요. 대부분의 구소련연방 출신 노동자들은 소련연방시절을 그리......more
(새벽에 담배 태우며)
키위/ 맞아요. 한국 언론이 미국, 일본만 편향되게 다보고 있는 게 문제겠지요. 그나마 KBS 시사투나잇이 좀 관심을 보이고 있더군요.
피나 눈물없는 역사를 가진 나라는 없나요?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b/ 나도 몇 시트 있다우... ㅡㅡ;